‘행정 분업’의 핵 국무조정실이 뜬다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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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 직제 개편 예정…정책상황실 신설 ‘눈길’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안에 있는 국무총리실, 연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8월19일 차관회의를 거쳐 8월24일 국무회의에 국무조정실직제개편안이 상정되면서 국무조정실 공무원들은 곧 몰아닥칠 변화의 바람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조직 변화는 필연적으로 인사를 동반한다. 이미 6월30일 역대 총리와 사뭇 다르다는 ‘실세 총리’가 취임하면서 8월 말 직제 개편과 함께 인사 칼바람을 예고한 터였다

국무조정실 조직 개편은 이해찬 총리가 ‘일하는 총리실’을 구현하기 위해 내세운 대전제였다. 정책상황실과 인적자원개발·연구개발기획단, 규제개혁기획단을 신설하는 것이 개편의 골자다. 규제개혁기획단은 다른 부처 공무원 외에도 민간 전문가를 다수 참여시켜 50명 내외로 구성하고 2년 한시 조직으로 운영하며, 규제개혁조정관(1급)이 기획단장 직을 겸한다. 7천8백 개에 이르는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이번에야말로 불합리한 규제를 덩어리째 없애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인적자원개발·연구개발 기획단은 노무현 정부의 간판 정책 과제인 인적자원과 연구개발을 뒷받침한다. 교육부와 과학기술부 등 관련 부처가 뭔가 엇박자를 보여왔다고 판단해 기획단을 출범시키는 것이다.

이번 개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책상황실 신설이다. 국무조정실장 직속 기구로 설치될 정책상황실은 실장(1급) 아래 16명이 전부인 미니 기구이지만, 국무조정실의 ‘머리’이자 정책을 컨트롤하는 관제탑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상황실 설치에 대해 유종상 조직개편 태스크포스팀장(주한미군대책기획단 부단장·1급)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총리는 국무조정실이 사후 처리에는 열심이었지만 사전 예방 기능이 미약했고 국가 전략 의제를 발굴하는 데 소홀했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연계되는 총리실 창구가 없다는 점도 정책상황실을 발족하게 한 또 다른 이유다.” 정책상황실 설치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존 조직의 숨통을 죄는 ‘옥상옥’이 되리라는 시각도 나오지만, 반대 기류는 미미하다. 결국 청와대 국정상황실과의 조화로운 연계가 선순환이냐 아니냐를 좌우하게 되리라는 지적이다. 국무조정실 혁신담당관실은 현재 다른 부처 공무원을 대상으로 정책상황실과 규제개혁기획단 전입 희망자를 받고 있다.

국무총리실의 양대 축은 국무조정실과 총리 비서실이지만, 이총리가 구현하려는 ‘일하는 총리실’의 핵심은 국무조정실이 될 수밖에 없다. 국무조정실의 한 국장은 “국무조정실 31년 역사에서 요즘처럼 국무조정실이 주목된 때가 있었던가 싶다”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이총리가 취임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조직 안팎에서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고 했다. 조직 내부에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이 생긴 것은 물론, 국무조정실을 보는 다른 부처의 시각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자료를 제출하라면 늑장을 부리던 부처들이 신속히 자료를 가져오고, 요구하지 않은 자료까지 제 발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국무조정실의 핵심 업무는 크게 세 가지다. 조정 업무와 심사 평가 업무 그리고 규제 개혁 업무다. 심사 평가와 규제 개혁 업무는 법령에 의해 구체적 권한이 명시되어 있어 다른 부처와 시비가 붙을 소지가 없지만 종합 조정 업무는 다르다. 1963년 기획조정실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국무조정실은 행정의 종합 조정 기능이 중요해지면서 1972년 행정조정실로 확대 개편되었다. 1994년 행정조정실장에게 수석 차관 직위를 부여했고 급기야 1999년 장관급이 지휘하는 국무조정실로 격상되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여러 부처에 관련되지 않는 정책이 거의 없는 것은 물론, 한 부처의 고유 업무가 없어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행정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기 때문이다.

수장이 차관회의를 주재하는 장관급이고, 인원도 다른 부처 파견 공무원(1백64명)까지 포함해 3백65명에 달하는 매머드 조직으로 변화했지만, 국무조정실의 입지는 흔들리기 일쑤였다. 대통령 비서실 때문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정책실)은 조정 업무의 강력한 경쟁자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조직이 득세하면 총리가 관장하는 국무조정실은 쪼그라들었다.

재정경제부의 한 국장은 “어차피 결론이 청와대에서 나기 때문에 국무조정실을 통과 의례로 여겼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를 의식하는 것은 국무조정실도 마찬가지였다. 시급한 국정을 나름으로 해결해 왔지만, 늘 너무 나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주춤거려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헌법 규정이 대통령 중심제에다 총리를 두는 내각제 성격을 가미한 데서 비롯한다. 헌법상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내각을 통할하고 각료를 제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지만, 현실적으로 총리의 힘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왔다. 1980년대 행정조정실에서 7년 가까이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찬진 변호사는 “국무총리는 헌법 규정과 관계없이 대통령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가에 따라 역할이 결정되었다. 국무조정실의 업무량도 대통령이 총리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크게 달라졌다”라고 회고했다. 대통령이 총리를 얼마나 신뢰하고 지원하느냐에 따라 국무조정실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용덕 교수(서울대 ·행정학)는 “대통령과 총리의 ‘상호 변동성’에 따라 행정조정 업무가 부침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순수 권력 형태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기왕에 국무조정실이 있으므로 선용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행정조정실장을 지낸 열린우리당 강봉균 의원도 “노무현 정부의 국정 불안 요소 가운데 하나가 내각과 총리실 간의 역할 분담이 모호한 것이다. 또 청와대가 중심이 되면 관료 조직이 수동적이 된다. 총리가 중심이 되어 국정을 챙기면 행정의 안정감이 높아진다”라고 말했다.

8월10일 노무현 대통령은 총리 중심의 내각 운영을 ‘확실하게’ 못박았다. 노대통령은 “앞으로 총리실에 보고를 집중하고 청와대에는 대통령 관심 사항과 특별 사안을 보고하기 바란다. 특별히 대통령한테만 보고할 사안 외에는 총리실에 공유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총리가 각 부처 장관을 지휘할 수 있는 보고·지시 시스템을 구축해준 것이다.

8월17일 국무회의는 대통령이 참석하기는 했지만, 이총리가 주재했다. 일하는 총리가 되겠다는 이총리의 희망을 현실화할 추진 주체는 국무조정실이다. 국무조정실이 대통령과 총리가 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는 ‘행정 분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키를 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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