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권 핵심들 옥죄는 '조동만 게이트'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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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만 게이트’ 연루자 대부분 호남 출신…한솔엠닷컴 ‘뻥튀기 매각’ 주도 의혹
왕년의 ‘황태자’ 김현철씨가 지난 9월11일 구속되었다.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조동만 한솔그룹 전 부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다. 김씨는 1997년 5월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된 뒤 7년 만에 다시 옥에 갇혔다.

그러나 김현철씨 구속은 이른바 ‘조동만 게이트’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김씨는 끈 떨어진 신세가 된 지 오래다. 조동만 게이트를 수사하는 검찰의 칼은 곁가지인 김현철씨를 쳐내고 몸통을 향해 점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김현철씨의 한 측근은 “검찰이 상당히 방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상당한 정보를 확보하고 전면화할 시기를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이미 지난 8월17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주철현 부장검사)가 조씨를 구속하면서부터 감지되었다. 조씨는 1999년 한솔엠닷컴이 발행한 신주인수권을 4백억원에 사들인 뒤 KT에 2천3백50억원을 받고 되팔아 1천9백억원대 차익을 남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조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애초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한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국세청은 지난 2월 조씨가 한솔엠닷컴을 KT에 매각하면서 수백억원을 탈세한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작 국세청이 고발한 내용은 범죄 사실에 포함하지 않은 대신 훨씬 파괴력 있는 부분에 주목한 것이다.

한나라당 1명·열린우리당 3명 위험하다?

다가올 폭풍을 예감이라도 하듯 정치권에서는 벌써 ‘조동만 리스트’가 나돈다. 한나라당 의원 1명과 열린우리당 의원 3명인데 대부분 호남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2002년 대선과 지난 4월 총선을 거치며 조씨가 이들에게 수억원대 돈을 건넸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조씨가 이미 돈을 준 일부 의원의 이름을 진술했다고 보도했으나, 검찰은 아직 공식으로 이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서초동 주변에서는 ‘말’ 외의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검찰이 뜸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재계 인사들은 검찰이 이번에는 제대로 조씨를 손볼 것인지 눈여겨 보고 있다. 사실 그는 김대중 정권 때부터 사정 당국의 주목 대상이었다. DJ 정권 초반에는 ‘김영삼 정권 때 김현철씨와 유착해 한솔PCS 사업권을 따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고, 후반에는 KT의 한솔엠닷컴 인수와 관련해 구설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그는 용케 법망을 피해 살아 남았다. 하지만 통신업계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지금 검찰과 과거의 검찰은 다르다. 김대중 정권 당시의 핵심 인사들이 수사선상에 오를 날이 멀지 않았다는 말이 업계에 파다하다”라고 관측했다.

이같은 관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8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검찰이 첫 번째 타깃으로 삼은 것이 바로 조씨가 관련된 ‘PCS 사업자 선정 의혹’이었다. 김현철 인맥이라고 소문 났던 이석채씨가 정보통신부장관으로 있던 시절에 ‘김현철 자금 관리인’으로 통했던 조씨가 PCS 사업권을 따낸 과정에는 상당한 의혹이 있다는 말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이 등장한 2개월 뒤인 1998년 4월 대검 중수부는 조씨의 집을 압수 수색하고 조씨는 물론 형과 동생까지 출국 금지시켰다. 당시 ‘사상 초유의 일로 검찰이 얼마나 한솔그룹의 비리를 캐기 위해 집착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보도가 나오고, 조사를 받던 한솔 상무가 자살을 기도했을 정도로 검찰의 수사 강도는 셌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조씨는 그 해 10월13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다. 10월29일에는 ‘구조조정 모범 기업’으로 선정되어 청와대 초청까지 받았다. 불과 6개월 만에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당시 이 사건의 배경을 추적했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1998년 9월 한솔PCS에 1억5천9백만 달러를 투자한 캐나다 BCI 사 데릭 버니 회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친분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외자 유치에 사활을 걸던 상황을 이용해 조씨가 DJ와 친분이 있는 데릭 버니 씨를 끌어들여 자신에 대한 사법 처리를 무산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980년 당시 주한 캐나다 대사였던 데릭 버니 씨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던 DJ를 구명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1998년 미셀 페로 캐나다 대사 또한 당시 배순훈 정보통신부장관을 방문해 “한솔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장기화하면 투자를 취소할 수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 윤영탁 전 의원은 2000년 국정감사 때 이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늘어졌다. 그는 “BCI 사가 한솔PCS에 투자한 대부분의 자금이 말레이시아 라부안 섬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 4개로부터 들어왔다”라며, 이 자금의 진짜 주인이 BCI 사가 아니라 조씨나 ‘제3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조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이 자금의 실체와 조씨에 대한 사법 처리가 흐지부지된 과정 등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통신업계에서는 조씨에 대한 검찰 수사의 핵심이 2000년 6월 KT가 한솔엠닷컴을 인수한 과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KT가 두 배 이상의 고가에 한솔엠닷컴을 인수한 이유, 그리고 이 과정에서 1조3천억원에 달하는 국부가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외국으로 흘러간 배경 등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한솔에 3천4백억원을 투자했던 BCI와 AIG 사는 불과 1년6개월 만에 4배 가까운 수익을 챙기고 한국을 빠져나갔다.

KT는 2000년 6월 당시 1만4천원에서 1만6천원을 오가던 한솔엠닷컴 주식을 3만2천원에 인수했다. 인수하려는 경쟁사도 없었는데 불과 10여 일 간의 협상을 거쳐 전격적으로 성사되었고, 정통부도 초고속으로 이 거래를 승인했다. 당시 KT 핵심 인사들은 공교롭게도 호남 출신이 많았다. 그때 사정에 밝은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권 실세-정통부-한국통신으로 이어지는 호남 라인이 움직여 ‘작품’을 만든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 조씨가 조성한 1천9백억원대 자금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크게 보아 두 갈래이다. 하나는 KT에 대한 조씨측의 로비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조씨가 정치권에 건넨 돈의 실체이다. ‘김현철 사건’은 조씨가 정치권에 건넨 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는 현단계에서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동만 게이트’가 제대로 파헤쳐진다면 전·현직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된서리를 맞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돌아선 호남 민심을 달래야 하는 노무현 정권 처지에서 조동만 게이트는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 반가운 사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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