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때문에 금배지 떨어질라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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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원 46명 재판…당선 무효 가능성 10명 선
지난 11월19일 인천지방법원.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검찰이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1백50만원 벌금을 구형했는데, 법원이 ‘다행히’ 벌금 70만원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선거법상 의원이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거나 배우자·사무장·직계 존비속이 3백만원 이상 벌금을 선고받는 경우 의원 직을 상실하도록 되어 있다.

송의원은 2월 중순 발간한 의정보고서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 송의원이 정치자금 문제로 인해 낙선운동 대상이 된 것에 대해 정동영·김근태·임종석 의원 등이 대신 해명하는 언론 인터뷰를 보고서에 실은 것이 화근이었다. 송의원측은 애초 선관위에 유권 해석을 의뢰한 후 의정보고서를 만든 터라 검찰이 이를 문제 삼아 기소하자 매우 당황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보고서를 제작하면서 선관위에 자문하는 등 조심스럽게 자료를 제작한 경위가 인정되고, 자료 배부 행위 자체가 그다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점 등을 참작했다”라고 했다.

반면 같은 당 장경수 의원은 같은 날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열린 재판 결과에 크게 낙담했다. 검찰이 구형한 것보다 50만원이 더 많은 벌금 2백만원이 선고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지구당 후보 경선을 앞두고 지지를 호소하는 서신 6백여장을 돌리고, ‘박사과정 수료’를 ‘박사과정 졸업’이라고 표기한 것이 장의원의 발목을 잡았다. 시민대학에서 강사로 강의한 것을 ‘외래 교수’라고 명함에 표기한 것도 사유였다.

우리당 의원들, ‘사법부 반감’ 걱정하기도

장의원측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장의원의 한 보좌관은 학위 체계에 어두운 고졸 자원봉사자가 수료와 졸업 차이를 잘 몰라 ‘박사과정 졸업’이라고 썼다고 해명했다. 전문대에서는 강사를 외래 교수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대 50여 군데 자료까지 소명 자료로 제출했는데 허사가 되었다.

선거법으로 기소된 여·야 의원은 46명(도표 참조).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재판이 줄을 잇고 있는 데는 까닭이 있다. 선거법 때문이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270조에 따르면, 1심 선고는 공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2심과 3심은 선고가 있은 날로부터 각각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해야 한다. 법원도 과거에 비해 재판을 속전 속결로 치른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선거법으로 기소된 의원들이 많다. 치열한 경선 과정 탓도 있다. 또한 비교적 젊은 초선 의원들이 많이 기소되었다. 복기왕 의원은 회비를 1만원씩 걷어 청와대 관광을 추진한 것 때문에 기소되었다. 복의원측은 “검찰측 증인 7명 가운데 4명이 인사말을 통해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는 말을 부인했고, 1만원으로 관광이 가능하다는 공인회계사의 의견을 제출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복의원은 1심에서 벌금 5백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 유지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유시민 의원의 경우 ‘서울대 프락치 사건’과 관련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홍보물에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쓴 것과, 그 사건을 설명하면서 ‘다른 관련자들이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았다’고 적은 부분 때문이다. 검찰은 허위사실 유포라고 기소했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덕모 의원이 2심에서 벌금 1천5백만원을 선고받아 의원 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본인은 아니지만 김정부 의원은 부인 정 아무개씨가 총선 때 2억여원을 뿌린 혐의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정씨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종적을 감추고 도주했기 때문에 궐석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은 1심에서 1백5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고 2심에서 다투고 있는 중이다. 지역 종친회에 찬조금 10만원을 낸 것과 의정보고서에 기사를 복사해서 올린 것, 그리고 안동 시의원이 해외 여행을 갈 때 찬조금 100만원을 낸 것이 기소 내용이다. 권의원측은 종친회 찬조금은 관례였고, 의정보고서 건은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은 데 그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한 보좌관은 “해외 여행 가는 시의원들 중에는 한나라당 소속이 아닌 시의원이 더 많았다. 다른 뜻이 있었다면 왜 상대편 후보와 가까운 시의원들에게 찬조금을 주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여·야를 떠나 선거법에 발목이 잡힌 의원들은 냉가슴을 앓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기소된 인원이 많은 데다 보궐 선거를 치를 경우 과반수 의석을 유지하기가 힘들 수도 있어 고민이 더 깊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에 대한 사법부의 반감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헌재가 행정수도 건설에 대해 위헌 판결을 했을 때도 사법부에 감정적으로 비칠까 봐 행동을 조심했다”라고 말했다.

지역구 예비 주자들 벌써부터 ‘들썩’

의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이 나서서 특별히 엄호 사격을 해주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회계 처리가 투명해져 소송 비용을 지원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은 당선 무효 가능성이 있는 의원이 2~3명 선이다. 열린우리당은 벌써 7~8명 선이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다른 당과 달리 민주노동당은 적극 지원하고 있다. 조승수 의원이 기소되자 이덕우 당 인권위원장(변호사)을 중심으로 18명이 나서서 공동 변호인단을 꾸렸다.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판결이 나올 경우 법안을 독자 발의할 수 있는 인원(10명)에서 1명이 모자라 원내 전략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조의원은 공식 선거운동일 직전인 4월1일, 음식물 자원화 시설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불러 그 자리에서 ‘주민들 동의하에 일을 처리하겠다’는 요지의 서약서를 작성한 것이 사전 선거운동으로 걸렸다. 조의원측은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로 서명했다. 민원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은 통상적 정당 활동이다”라고 주장했다. 민노당은 조의원이 선관위에 문의하고 나서 참석했는데 뒤늦게 기소한 것은 진보 세력에 대한 견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기소된 의원들의 지역구에는 벌써부터 예비 주자들이 움직인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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