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운명, 뉴라이트가 좌우?
  • 고제규·차형석 기자 ()
  • 승인 2004.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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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계파와 대권 예비 주자들의 ‘정체성 논쟁’ 화두로 떠올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외풍이 거세다. 당 안팎에서 부는 바람의 실체는 개혁 돌풍과 뉴라이트(New Right) 바람이다. 양당 모두 잡탕이라는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정체성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거센 외풍을 맞고 있는 양 당의 속사정을 살펴보았다.

지난 11월25일 오후 1시30분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통상 본회의에 앞서 열리는 총회인데, 이 날은 이색 풍경이 목격되었다. 이재오 의원이 “오늘은 오른쪽에 앉아 볼까”라며 들어섰다. 주로 왼쪽 자리에 앉았던 이의원은 이 날만은 오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빈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이의원은 왼쪽 자리로 되돌아갔다.

당내 개혁파 이론가인 박형준 의원도 이 날만은 오른쪽 한 자리를 차지했다. 박의원이 “오늘은 오른쪽에 앉았습니다”라고 말하자, 동료 의원들이 “그럼 우파네”라며 농담을 건넸다. 곧이어 의총장 한가운데 통로로 김정훈 의원이 등장하자, 의원들은 일제히 “어이, 뉴라이트”라며 인사말을 건넸다. 김의원이 주도해 이 날 발족한 ‘행동하는 중도 우파’ 모임을 두고 의원들이 인사말을 건넨 것이다.

한나라당에 뉴라이트 바람이 거세다. 의총장에서 오른쪽 자리다툼이 벌어질 만큼 유행이다. 지난 11월23일 자유주의연대(16쪽 상자 기사 참조)가 출범하면서다. 한 시민단체의 나비 날갯짓이 한나라당 안에서는 정체성 폭풍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비주류 “반갑다 뉴라이트 운동”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쪽은 당내 비주류이다. 지난 11월23일 홍준표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뉴라이트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홍의원은 ‘부패한 보수, 수구 보수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뉴라이트 운동을 주목한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국가발전전략연구회(국발연) 소속인 그는 김문수·이재오 의원과 비주류 3인방이다. 박근혜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을 쓰고 있는데도 30% 지지율을 넘지 못한 채 반사적 이익만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홍의원은 “뉴라이트는 한나라당에 맹성을 촉구하는 운동이다.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면 한나라당에 미래는 없다”라고 말했다. 홍의원은 국발연 차원에서 뉴라이트 운동을 화두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당내 비주류는 뉴라이트에 거는 기대가 크다. 연합군이자 지원군으로 분류한다. 자신들로서는 불리할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운동과 연계한다면 주류를 압박하는 당내 쇄신 운동을 주도할 수 있다는 복심도 깔려 있다. 비주류는 지난 여름 연찬회 때 박대표의 출당 발언 이후 움츠러들었다가, 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한 헌재 심판 이후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런 비주류에게 당 밖의 뉴라이트 바람은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은 뉴라이트 운동을 위기이자 기회로 본다. 수요모임은 당 내에서 가장 뉴라이트에 가깝다. 수요모임 간사인 이성권 의원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정치권을 통틀어 수요모임이야말로 뉴라이트이다. 기득권을 버리고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자고 줄기차게 주장한 게 우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는 위기감이 높다. 수요모임 소속 한 의원은 “정치는 이미지인데, 조중동이 띄워주면서 뉴라이트 하면 국민들이 자유주의연대를 떠올린다. 수요모임마저 올드라이트로 몰릴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새로운 기회로도 여긴다. 역할분담론이 그것이다. “수요모임은 정치권 안에서, 자유주의연대는 정치권 밖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면 큰 흐름을 만들 수 있다. 한나라당이 나아갈 방향과도 일치한다”라고 이성권 의원은 말했다. 수요모임도 조만간 자유주의연대와 포럼을 가질 예정이다.

11월25일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이 만든 ‘행동하는 중도 우파’는 출범부터 뉴라이트를 표방했다. 김정훈·유승민·나경원·정두언 의원 등 초선 17명이 뜻을 함께했다. 이들은 당내 가장 왼쪽인 수요모임과 가장 오른쪽인 자유포럼 사이에서 중심을 잡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모임을 두고, 무늬만 뉴라이트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당내 목소리도 높다. 한 의원은 “이념을 공유해서 뭉친 게 아니라, 어느쪽에도 치우지지 않겠다는 정치적 스탠스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행동하는중도우파 모임에 참여한 한 초선 의원도 “솔직히 좌파니 우파니 잘 모른다. 내 스스로 우파는 맞는데 왠지 주춤거려진다. 우파 하면 자유포럼으로 오해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 우파가 뜬다니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뉴라이트 운동을 벌이고 있는 자유주의연대로부터 수구 우파로 찍힌 자유포럼의 움직임이다. 김용갑·이방호 의원 등이 주축이 된 자유포럼은 당 내에서 가장 빠르게 뉴라이트에 대응하고 있다. 지난 11월 초, 자유포럼은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를 초청해 한 차례 강의를 들었다. 당내 어느 계파보다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박근혜는 손해, 이명박은 본전, 손학규는 이익

이방호 의원은 “논쟁을 벌인 것은 아니고, 신대표 주장을 듣기만 했다.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들을 올드라이트·냉전 수구 세력으로 비난하는 것은 못마땅해 했다. “북한과 대결하는 냉전 구도가 남아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국가 안보를 주장한다고 무조건 냉전 수구 세력이라고 비판해서는 안된다.”

이의원은 국민운동 차원에서 뉴라이트 운동은 필요하고 성공하겠지만, 정치 세력화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정당까지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 안에서 헤게모니 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의원은 당내에 불고 있는 뉴라이트 바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밖에서 뜨니까 젊은 의원들이 뉴라이트, 뉴라이트 하는데 정치는 이벤트가 아니다. 정치인들이 아류나 만들어 유행을 타려 해서는 안된다.”

한나라당 잠룡들도 뉴라이트 바람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박근혜 대표 진영에는 일단 빨간불이 켜졌다. 박대표는 국가보안법 개폐 등 4대 법을 두고 자유포럼 등 당 안팎의 보수 진영과 보조를 맞추는 우향우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뉴라이트 진영이 보기에 이는 전형적인 수구 우파와의 타협일 뿐이다. 자유주의연대 최홍재 운영위원은 “박근혜 대표 행보를 보면 이념 자체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당 안팎에서 뉴라이트 바람이 거세면, 박대표 스스로 제기한 정체성 논쟁에 휘말려 올드라이트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서울시장 쪽은 관망하고 있다. 한 측근은 “뉴라이트 바람이 이명박 시장에게 딱히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다. 다만 뉴라이트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중요 덕목으로 꼽는데, 월급 한푼 받지 않고 시장 직을 수행하는 이명박 시장이야말로 뉴라이트의 표상이다”라고 말했다. 당내 최대 경쟁자로 여기는 손학규 경기도지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정작 손학규 지사 쪽은 파란불로 보고 있다. 손지사야말로 인생 자체가 뉴라이트의 원조라는 것이다. 과거 재야운동가에서 신보수 우파로 거듭났고, 경기도 CEO로 화려하게 변신했기 때문에 뉴라이트에 맞는 대권 후보는 당연히 손학규 지사라는 주장이다.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는 닮은꼴?

이처럼 한나라당 각 계파와 잠룡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제 논에 물 대기식 해석을 두고, 자유주의연대는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한나라당의 어떤 세력과도 정치적 연대를 하지 않겠다.”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는 기존 정치 세력 가운데 뉴라이트는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어떤 투자도 하지 않고 무임 승차하려는 얌체 보수와는 함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신대표는 나아가 “차떼기나 일삼고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우파가 아니라 수구 기득권층이다”라고 한나라당을 겨냥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홍재 운영위원은 “우리는 뉴라이트라기보다, 원라이트(One Right)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우파가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우파라는 것이다.

자유주의연대는 가치 공동체를 목표로 사상운동을 벌일 작정이다. 그렇다고 정치 세력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신지호 대표는 “자유주의연대가 만든 뉴라이트라는 브랜드를 국민들이 얼마나 소비하느냐에 따라 정치 세력화 시기가 결정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시간표를 짜놓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다만 자유주의연대는 정치 세력화를 하더라도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대안 정당을 상정하고 있다. 최홍재 운영위원은 “적어도 자유주의연대를 발판 삼아 개별적으로 정치권에 입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자유주의연대 회원은 60여 명이다.

그러나 이들이 상정한 10대 강령을 두고 올드라이트와 별 차이점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시장주도형 경제 시스템 전환이나 자유무역협정 능동적 추진을 통한 열린 통상 대국 추진, 법치주의에 기초한 다원주의 등은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과 차별점이 없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유주의연대를 ‘자기 성찰 기득권 집단’이라고 비판한다. 386세대인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자신들이 과거를 성찰했으니, 열린우리당의 386 의원이나 한나라당 보수 의원에 대해서도 자기 성찰을 하라고 한다. 자기 성찰 기득권으로 차별화를 시도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자유주의연대 출범으로 뉴라이트 운동은 주목되고 있다. 한나라당도 요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새로운 우파 운동을 이끌 주역이 되느냐, 한나라당만 주목하다 사라지는 뉴라이트(new light)로 그칠 것이냐는 미지수이다. 그들 말대로 포장지를 벗겨내고 드러날 상품의 질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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