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복권설’ 뭉게뭉게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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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박지원·김영일 등 거론…연내 성사는 힘들 듯
서울 신촌 세브란스 심장혈관병동에 부쩍 방문객이 늘었다. 이 병동 12층에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가 나란히 입원해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 전 실장은 현대 비자금 1백50억원 수수 사건의 상고심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1월11일 녹내장 증세가 급격히 악화해 이 병원에 입원했다. 안압을 내리는 응급처치를 한 후 대법원에 출두한 그는 재판부가 징역 12년에 추징금 1백48억5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이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열렸다. 11월16일 두 달 간의 구속집행정지 판결을 받은 박씨는 현재 파기환송심을 준비하고 있다.

정대철 전 대표가 그런 박씨의 이웃 병실에 입원한 것은 지난 12월1일. 뇌물 4억원과 불법 대선 자금 25억원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은 정씨는 고혈압과 체중 감소 때문에 지난 8월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박씨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주로 박 전실장이 정 전대표 입원실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실상 무죄 선고를 받은 박씨는 병실에 교도관도 없고 비교적 자유롭게 방문객을 만날 수 있는 데 반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정씨는 교도관들이 방문을 지키고 서서 일일이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물론 정씨측 병실의 분위기도 그 어느 때보다 고무되어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사면복권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공론화를 시도한 사람은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다. 박의원은 10월28일 대정부 질문에서 ‘대선 자금 관련자들을 이젠 풀어줘도 될 때’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뜬금없는 소리라는 비난을 샀지만, 한 달 후인 11월25일 똑같은 얘기가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대표, 3부 요인이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과거 문제로 일부 기업인과 정치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묵은 찌꺼기를 털고 가야 한다”라며 사면 복권을 건의한 것이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사면복권론이 힘을 얻는 이유는 관련 정치인이 여야 모두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정대철·이상수·이재정 전 의원이 대상으로 꼽히고, 한나라당에서는 김영일·최돈웅 전 의원과 서정우 변호사, 민주당 출신으로는 권노갑·박지원 씨가 거론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군불을 땐다고 실제로 사면 복권이 추진될지는 불투명하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인 데다, 청와대 역시 부담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청와대 참모는 “사면복권을 추진할 경우 노대통령 측근들만 예외로 할 수는 없다. 그럴 경우 여론이 가만히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미 형이 확정된 안희정·강금원·최도술·여택수 씨도 사면 복권 대상인데, 함께 풀었다가는 여론에 된통 당할 것이고, 제외하면 형평성 시비에 시달리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이래저래 연내 사면 복권은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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