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직계, ‘쿠데타’ 실패하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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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대표에 ‘문희상 옹립’ 추진, 문의원 반대로 좌절…“친노 그룹 분화 시작”
지난 1월14일 밤, 이광재·서갑원 의원이 문희상 의원을 찾았다. 문의원은 이들이 방문한 이유를 직감했다. 청와대 참모 출신이 중심인 의정연구센터 소속 두 의원은 문의원에게 원내대표 출마를 제안했다. 두 의원은 의정연구센터 의원들의 이심전심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문의원은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정세균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는 것에 일찌감치 찬성한 터에, 자신이 뒤늦게 뛰어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유력한 당의장감으로 언론에 오르내린 그에게 원내대표로 선회하라는 제안 또한 ‘생뚱맞았다’.

이렇게 의정연구센터의 ‘중국발 쿠데타’는 7일 천하로 끝났다. 그동안 의정연구센터는 당내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지난해 말 4대 입법안을 두고 여야 각 당에서 첨예하게 논쟁이 가열될 때도 이들은 거리를 두고 경제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저 ‘노무현 동업자’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이들이 처음으로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은 중국을 방문한 뒤였다.

‘중국발 쿠데타’ 배후는 김혁규 의원?

지난 1월6일 의정연구센터 소속인 김혁규 강봉균 이광재 서갑원 조정식 이화영 윤호중 한병도 김재윤 김종률 김태년 의원이 6박7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의정연구센터 김종민 소장, 권병현 전 주중대사도 동행했다. 의원들은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과 교류하며 상하이·칭다오·베이징 등을 방문했다.

6박7일간 함께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내 현안에 대해서도 마음이 서로 통했다. 현안은 원내대표 선출. 이들은 단일 후보 추대론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했다. 이화영 의원은 “당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원내대표는 경선을 치러야 한다. 중진들이 모여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당의 중심을 잡는 데 누가 적절한지를 두고 논의했다. 그 결론이 몸무게만큼이나 중량감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 문희상 의원이었다.

1월13일 이들이 귀국하면서 문희상 원내대표 카드가 당내에 급속히 퍼졌다. 단일 후보라며 느긋해 있던 정세균 의원이 문희상 의원에게 확인 전화를 할 정도였다. 친노 직계 그룹인 의정연구센터가 진원지여서, 노심(盧心)이라는 소문까지 더해졌다.
원내대표로 문희상 카드가 확산된 데는 김혁규 의원과 강봉균 의원의 ‘복심’도 한몫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장을 발판 삼아 당내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김혁규 의원은 문희상 의원과 함께 유력한 당의장 후보로 꼽힌다. 그런 김의원에게 문희상 의원의 원내대표 선회는 자연스런 ‘교통 정리’다. 그래서 중국발 쿠데타 배후로 김혁규 의원을 지목하는 시선이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한·일 의원연맹 부회장인 김혁규 의원은 당초 일본에 가야 했다. 1월10일부터 12일까지 민단 신년 하례식을 포함한 일정이 있었는데 의정연구센터 일원으로 중국을 간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강봉균 의원은 정책위원회 의장이 되려는 의욕이 강하다. 지난해 이해찬 총리와 러닝메이트로 나갔다가, 천정배 원내대표-홍재형 정책위원회 의장 후보에 밀린 강의원은 절치부심했다. 그러나 강의원은 정세균 원내대표와 짝을 이룰 수 없다. 넘을 수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정세균 의원과 강봉균 의원은 둘 다 전북 출신이다. 김원기 의장까지 전북 출신이어서 정세균-강봉균 러닝메이트는 조합 불가능하다. 수도권인 문희상 의원이 원내대표로 나서면 그와 자연스럽게 짝을 이룰 수 있었다.

의정연구센터 의원들은 사람을 두고 고민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김혁규 당의장, 문희상 원내대표, 강봉균 정책위원회 의장이라는 그림을 그린 채 귀국했다. 그런데 강봉균 의원이 이틀 먼저 귀국하면서 중국발 쿠데타의 서막이 올랐다. 강의원은 이해찬 총리를 만나 이같은 구상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강의원은 또 문희상 의원도 직접 만나 원내대표 출마 의사를 타진했다. 하지만 문의원은 거부했다. 그러자 이광재·서갑원 의원까지 나선 것이다.

친노 직계 그룹의 중국발 쿠데타는 문의원의 반대로 촌극으로 끝났다. 문희상 의원의 입장은 확고하다. “문제 인식은 이해하지만, 원내대표 단일 추대는 밀실 합의가 아니다. 지도부가 공백에 빠지자 원내대표 후보자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합의한 것이다. 후배들이 합의한 것을 나중에 내가 끼어들어 깰 수는 없지 않느냐. 그건 정치가 아니다.”

김혁규·문희상, 당권 경쟁 불붙다

대신 문희상 의원은 상임중앙위원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상임중앙위원으로 뽑히려면 전당대회에서 5위 안에 들어야 한다. 상임중앙위원 중 최다 득표자가 당의장이 된다. 그는 “이왕 나가면 당연히 1등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당의장을 분명한 목표로 한 것이다. 문의원은 김혁규 의원과 동반 출마 역시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수도권(문희상)과 경남(김혁규)으로 지역도 나뉘고 성향도 달라 지지 기반이 겹치지 않는다고 본다.

문의원은 지난 1월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개혁-민생 동반 성장론’을 신년 화두로 제시했다. 1월13일 노무현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성장과 분배가 따로 갈 수 없다며 동반 성장을 강조했다. ‘얼굴은 장비, 머리는 조조’인 그가 노심을 얼마나 잘 읽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재야파와 구 당권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데다가, 노심을 읽는 친노 그룹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당권 도전을 공식화하면 쉽게 대세론이 형성될 것으로 본다.

물론 이견도 있다. 이번 일을 두고 당 내에서는 친노 그룹이 제 갈 길을 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한 당직자는 “DJ 정부 때도 그랬듯이 집권 3년차가 되면 직계 그룹은 분화해서 본격적으로 자기 정치를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문희상 대세론이 형성되더라도 검증되지 않는 ‘안방 대세론’이라는 지적도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우리당 자체가 변한 마당에, 여의도에서 형성된 대세론이 전당대회가 치러지는 잠실까지 이어진다는 시각 자체가 낡았다”라고 말했다. 기간 당원으로 환골 탈태한 당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뚜껑을 열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희상 의원은 1월24일 국회 정보위원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그리고 귀국해서 설을 지낸 뒤 당권 도전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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