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마케팅’이 효자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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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때 공격 경영 감행한 기업들 ‘대박’…대대적 광고에 경품 내놓기도
네이버는 ‘청개구리’다. 다른 인터넷 검색 포털들이 숨죽이고 있던 지난 겨울, 네이버는 돌격하기 시작했다. ‘닷컴 거품론’으로 인터넷 기업들이 호된 곤욕을 치른 데다 경기까지 나빠지고 있던 때여서 공격적인 마케팅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 그러나 네이버는 새로운 검색 서비스 ‘지식인’을 내놓고, 광고 공세를 퍼부었다. ‘야한 생각 하면 정말 머리가 빨리 자랄까’와 같은 기발한 카피를 담은 광고를 잡지나 지하철에 집중적으로 뿌렸다. 텔레비전 광고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거품이 가신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는 반응이었지만, 네이버는 ‘지금이야말로 기회’라고 판단했다. 모두가 숨죽일 때야말로 공격할 때라고 계산한 것이다. 판단은 적중했다. ‘만년 2등’이던 네이버는 올 상반기 인터넷 검색 포털 시장에서 야후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선 것이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한 지 겨우 서너달 만의 일이었다. NHN 채선주 팀장은 “우리도 그렇게 빨리 효과가 나타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먼저 치고 나간 덕에 3억~4억 원에 불과한 광고비로 큰 효과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독자 브랜드를 출시한 지 1년 만에 시장 1위 자리를 석권한 쿠쿠전자 역시 숨죽이는 것이 대세일 때 먼저 치고 나가는 ‘청개구리 전략’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LG전자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였던 쿠쿠전자는 외환 위기 때 주문이 뚝 떨어져 위기를 맞았다.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들까지 몸집을 줄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쿠쿠전자는 몸집을 줄이는 대신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고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1998년 첫해에만 20억원이 넘는 광고비를 썼으니, 엄청난 도박이었다. 업계에서는 무모한 짓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이 회사는 3년 동안 광고비를 50억원이나 투입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년 동안 매출이 3배로 뛰었고, 이익은 20배나 늘었다.

밀폐 용기 ‘락앤락’으로 유명한 (주)하나코비 역시 위기를 공격 기회로 삼았다. 이 회사는 1997년 첫 제품을 출시했지만, 외환 위기로 인해 내수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하나코비는 해외 시장부터 두들겨 보자고 결정했다. 국내 시장마저 세계적 밀폐 용기인 ‘타파웨어’나 ‘러버메이드’가 휩쓸던 상황에서 무명 중소기업 제품이 세계 무대에 진출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나 미국 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으며 홈쇼핑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이어 일본·캐나다 등지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자신감을 얻은 하나코비는 지난해 초부터 국내 시장도 적극 공략했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엄두를 못 내는 텔레비전 광고까지 하면서 브랜드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2%나 증가한 2백20억원을 기록했다.

쌍용자동차가 올 1/4분기 영업·경상 이익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 올릴 수 있었던 데에도 ‘청개구리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2001년보다 마케팅 비용을 28% 정도 더 쓴 데 비해 쌍용자동차는 106%나 늘렸다. 이런 성과에 자신감을 얻은 쌍용자동차는 올해에도 문화 마케팅 비용 등을 25% 가량 더 늘리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몇몇 기업의 청개구리 전략이 알려지면서, 최근 불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특히 선두 업체보다는 후발 업체들이 정상을 노리며 돌격하고 있다. 예컨대, OB맥주·현대오일뱅크·씨티카드·모토로라코리아를 꼽을 수 있다.

OB맥주는 1996년 빼앗긴 맥주 시장 1위를 탈환하기 위해 ‘전쟁’에 돌입했다. OB맥주 경영진은 신제품 성공을 기원하는 직원 워크숍에서 OB 점유율이 전체 시장에서 40%를 넘지 못하면 브랜드를 접겠다는 폭탄 선언까지 했다. 8년 만에 새로운 ‘OB맥주’를 내놓고, 광고비만 5백억원을 잡아놓고 있다. 이는 지난해 광고 비용인 2백30억원보다 배가 넘는 액수이다. 올해 내내 소비자들은 눈만 돌리면 OB 광고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해 말 현재 시장 점유율은 OB 43.6%, 하이트 56.4%였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정유업계 정상을 노리고 최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SK가 그룹 문제에 발목이 잡혀 주춤하고 있고, LG칼텍스 정유가 내실 위주 경영 전략을 펴는 지금이야말로 도약할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현대오일뱅크는 가장 주가를 올리고 있는 탤런트 송혜교씨를 모델로 등장시킨 텔레비전 광고를 얼마 전부터 내보내고, ‘웰컴 오일뱅크’라는 마케팅 슬로건을 내걸고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현대오일뱅크가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낸 것은 6년 만의 일이다.

외국계 카드사인 씨티카드는 국내 카드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려 각종 서비스를 축소하는 이 때를 노려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무기’는 파격적인 포인트 적립과 영화관 할인 같은 서비스를 대폭 보강한 씨티은행리볼빙카드플러스. 국내 카드사들은 현금 서비스 수수료를 인상하고 있지만, 이 회사는 오히려 수수료를 내렸다.
보수적인 마케팅을 고집해 온 모토로라코리아 역시 최근 달라졌다. 정우성씨를 모델로 기용한 텔레비전 광고를 선보이는가 하면, 고가 승용차까지 경품으로 내걸고 대규모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 회사가 한국에서 ‘빅모델’을 기용한 텔레비전 광고를 기획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경제 침체기일수록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고 고민하지만, 전문가들은 처진 기업일수록 불황 때 모험을 걸어볼 만하다고 말한다. 문달주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장은 “호황기에는 시장 점유율을 1%도 올리기 힘들지만, 불황기에 광고에 투자하면 호황기보다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시장 조사 기관 PIMS가 영국의 1백83개 기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불황기에 광고비 지출을 늘린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수익률이 높았다. 불황기에 광고비를 축소한 기업은 0.8%의 이익을 낸 반면 광고비를 늘린 기업은 4.3% 이익을 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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