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코드’ 맞춰 훨훨 나는 브랜드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3.05.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던힐·발렌타인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코리안 드림’ 일궈
뉴욕에 사는 스티브는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남기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소니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기록한다. 식사 후에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고, 말보로 담배를 한 대 피운다. 술자리에서 그가 가장 즐겨 찾는 위스키 브랜드는 조니 워커이다. 스티브가 애용하는 이 제품들은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브랜드이다. 세계 시장에서 판매율과 인지도가 가장 높은 제품들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벤츠보다 BMW 자동차가 더 많이 팔리고, 소니 디지털 카메라보다는 올림푸스 제품이 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고급 아이스크림 시장에서는 하겐다즈 대신에 배스킨라빈스가, 수입 담배 시장에서는 말보로보다 던힐이, 프리미엄 위스키 시장에서는 조니 워커보다 발렌타인이 더 잘 나간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는데, 이들은 오히려 한국 땅을 밟으면서 탱자에서 귤로 탈바꿈한 셈이다. 세계 시장에서는 ‘탱자’였던 이들이 한국에서 ‘귤’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올림푸스한국 방일석 사장은 2000년 9월 올림푸스한국을 설립할 때 본사에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올림푸스한국의 경영권을 본사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킬 것과 한국 법인에서의 이익금은 100% 한국에 재투자한다는 것이었다. 독립 경영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방사장의 전략은 적중했다. 방사장은 외국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등 뒤에 감춘 채, 시장 파이를 넓히면서 디지털 카메라 업체로서의 올림푸스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브랜드 컨셉트도 본사와는 다르게 잡았다. 국내 카메라 회사로서는 처음으로 텔레비전 광고를 해 젊은 네티즌 세대를 공략함으로써 단숨에 시장을 석권했다.

또 애프터 서비스에 취약한 외국 기업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기발한 A/S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올림푸스한국은 ‘도어 투 도어’라는 이름의 A/S 무상 택배 서비스를 도입했다. 소비자가 A/S센터를 찾아 다리품을 팔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택배를 이용해 쉽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금도 방사장은 직원들에게 일본 기업의 해외 법인이지만, 완벽한 한국 기업으로 탈바꿈하지 않고서는 한국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만이 한국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길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브랜드라는 파워만을 믿고 토착화를 게을리하다가 한국에서 참패한 외국 기업들이 적지 않다(64쪽 상자 기사 참조). BMW코리아도 A/S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BMW코리아는 수입차 업체 중 서비스센터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서비스센터에는 컴퓨터와 DVD플레이어, 골프 연습장까지 갖추고 고객이 문화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독일의 전문 서비스맨을 초청해 판매 지사에 배치하기도 했다.

단지 물건을 수입해 파는 현지 법인의 성격을 탈피한 것도 ‘귤’로 탈바꿈한 외국 법인들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생산 시설이나 연구 시설을 한국에 들여온 것이다. 올림푸스한국은 전세계 법인 중 유일하게 한국에 연구·개발 자회사(올림푸스디지털네트워크코리아)를 설립했다. 한국을 디지털 카메라 개발 기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이다. 또 도시바에서 생산하던 차세대 저장 매체의 핵심 기술을 삼성전자에 이전해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생산해 5월부터는 세계로 수출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