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압박하는 소버린의 반격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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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소액주주여 함께 궐기하자” 소버린, 최태원 등 ‘이사 3인 내쫓기’ 강공
모나코에 본부를 둔 소버린자산운용(소버린)이 11월20일 기자회견을 연 서울 조선호텔에는 100여 명에 달하는 내외신 기자가 몰려들었다. 소버린이 (주)SK의 2대 주주로서 경영권 향방에 최대 변수로 기능하는 데다가, 베일에 가려 있던 제임스 피터 대표(CEO)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는 소버린의 100% 자회사로 지분 매집 주체였던 크레스트시큐러티즈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서 매집 과정을 진두 지휘한 인물. 그는 얼마전 소버린의 대표가 되었다.

피터 대표는 적어도 세 번 한국 기자들을 자극했다. 우선, 지난 4월 지분 매집 사실을 늑장 신고해 산업자원부로부터 고발을 당한 것이 법을 몰랐기 때문이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기자들로 하여금 ‘헉’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소버린은 한국의 증권 관련 법을 모두 준수했으며 주식 매입 경로도 투명했다며, 한국 정부의 고발이 ‘근거 없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소버린이 늑장 신고한 것은 사실이다. 10월 말 서울지검 외사부도 기소 유예 처분을 내렸다. 고의성이 보이지 않아 처벌은 하지 않았지만 위반 행위 자체는 인정한 것이다.

“부당 행위 저지른 범법자들은 물러나라”

11월20일 피터 대표는 예상대로 SK 경영진을 압박했다. 이사회의 일원인 최태원 회장·손길승 회장·김창근 사장이 왜 사임하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재차 사퇴를 촉구했다. 소버린이 세 사람을 ‘찍어’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이들이 SK네트웍스 지원이라는 부당 행위를 해왔고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범법자라는 것이다. 세 이사가 물러나지 않을 경우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교체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둘째, 피터 대표는 지분이 많든 적든 똑같이 주주로서의 권리가 있으며 동일한 이해 관계를 갖는다며, SK 소액 주주의 동참을 촉구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 날 소버린의 최대 목적이 ‘소액 주주여 총궐기하라’ 아니냐고 반응했다.

소버린은 지난 9월 1대 주주 자리를 빼앗겼다.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 등 오너 일가와 SK건설·SK케미칼 등 계열사들이 SK네트웍스가 해외에 보관했다가 채권단에 넘긴 SK(주) 1천만 주 가운데 3백만 주 이상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회장측 지분은 15.93%(의결권 지분율은 17.78%)로 늘어났다. 소버린(지분 14.99%, 의결권 16.73%)을 누르고 1대 주주 자리로 복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버린은 ‘누가 SK의 주인인가?’라는 자료를 내고 최회장측의 소유 지분이 6.05%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른바 실질 소유권 개념을 적용하면 소버린이 주장하는 대로 최회장측 지분은 6.05%가 맞다. 문제는 표 대결에서는 의결권 있는 주식을 누가, 어떤 세력이 얼마나 가졌느냐가 결정한다. 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소버린이 실질 소유권을 내세운 것은, 소유 지분은 적으면서도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는 도덕성 시비를 불러일으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내년 3월 이사진 교체를 위한 표 대결은 불가피해 보인다. 최회장측은 일단 우위에 서 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소버린이 얼마나 많은 외국인 투자자와 소액 주주들을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판세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사시에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10.41%를 우호 세력에 팔아 의결권을 추가 확보하는 전형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강구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난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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