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건설, 건교부 · 청와대 · 민주당의 동상3몽
  • 소성민 기자 (smso@e-sisa.co.kr)
  • 승인 200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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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건설 계획 유보…청와대·민주당과 국토 개발 계획 따로 진행
지난 10월10일 건설교통부가 신도시 건설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야당과 시민단체 등 각계의 저항에 직면하고 여당과도 충돌한 일은 건설교통 행정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10월18일 건교부와 민주당이 당정회의를 열어 신도시 건설 계획을 보류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린 후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신도시 논란은 10월10일 국토연구원이 주최한 ‘수도권 도시 성장 관리와 신도시 개발’이라는 세미나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우선 개발 후보지 3개와 중·장기 개발 후보지 4개가 제안되었는데, 건교부가 이를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밝혀 문제가 불거졌던 것이다. 특히 관심의 표적이 된 판교 지역은 1주일 넘게 투기 열풍에 휩싸였다(상자 기사 참조).

이번 사건을 놓고 정부와 여당은 물론 주변 관계자들을 접촉해 본 결과, 신도시 건설에 관한 정부와 여당의 시각 차이는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두 주체가 따로 국토개발계획을 추진하며 서로 손발을 맞추지 못하는 난맥상을 드러낸 것이다. 1차 책임은 신도시 같은 중대 사안을 당·정 협의조차 생략한 채 일방으로 추진하려 했던 건교부에 있다.

건교부가 신도시 건설 의사를 밝히자 이해찬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수도권 과밀화 해소책이 먼저다”라며 발끈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당이 전국적인 국토 개발 및 정비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건교부가 난데없이 먹물을 튀긴 격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와 민주당은 수도권 과밀과 지역간 불균형 문제를 동시에 해소할 만한 종합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 쪽에서는 올해 2월 대통령 비서실 산하 기구로 발족한 지역균형발전기획단이, 민주당 쪽에서는 수도권과밀해소정책기획단이 그와 같은 임무를 맡고 있다.

민주당의 김요왕 건설전문위원은 “종합 청사진이 언제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올해 안에 나올 수도, 못 나올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적 국토 이용 계획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신도시라는 변수 때문에 차질을 빚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건교부는 건교부대로 지난해부터 ‘광역 도시 계획’이라는 과제를 추진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뒤 추진해 온 그린벨트 해제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건교부가 영국도시농촌계획학회에 연구 용역을 맡겨 도출한 과제이다. 건교부는 도시계획법이 규정한 절차에 따라 올해 말까지 광역도시계획 작업을 마쳐야만 한다.

건교부와 청와대·민주당의 양대 기획단이 추진하고 있는 작업이 서로 중복되고 있는 점은 정책 혼선을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최근 건교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는 전국을 수도권·부산권·마창진권(마산·창원·진해)·대구권·광주권·대전권으로 구분하는 데까지 작업을 마친 것으로 확인되었다.

광역도시계획을 맡고 있는 건교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는 먼저 건교부 수뇌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인 권영우 교수(성신여대·지리학)는 “올 연말까지 광역도시계획이 서면, 내년부터는 이를 근거로 수도권 정비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렇게 큰 틀이 짜이면 그 안에서 신도시든 택지개발지구이든 산업용지든 조성할 계획이었다”라고 밝혔다. 당초 계획대로 진행하면 되는데 왜 굳이 신도시 문제를 미리 꺼냈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는 건교부 내에서도 한 부서가 서로 모순되는 정책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신도시 건설 계획을 담당하는 주택도시국은 광역도시계획을 주관해 온 부서이기도 하다. 이같은 모순에 대해 주택도시국 김경식 주거환경 과장은 “판교·화성 등은 개발될 가능성이 워낙 높은 지역이어서 광역도시계획과 상충할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건교부는 광역도시계획 완성을 불과 두어 달 앞둔 시점에서 ‘도발적으로’ 신도시를 건설할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건교부가 신도시를 건설해야 하는 이유로 제기한 △주택난 해소 △건설 경기 부양에 대해, 지난 8월까지만 해도 건교부는 신도시가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건교부가 수용할 의사를 밝힌 국토연구원 보고서에는 ‘신도시 개발이 과거의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계획하고 개발을 준비해야 하며, 가능한 범위에서 공개적인 합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담겨 있다. 건교부의 경솔한 행정을 예견한 듯한 구절인데, 건교부는 이같은 충고만 빠뜨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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