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코스닥 시장, 투자자 ‘화상’ 입을라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9.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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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구조 부실·주주 보호 장치 허술 ‘고위험 게임’
코스닥 지수(96년 7월1일=100)는 지난 5월7일 천장(140.82)을 친 뒤 최근 120 포인트대에서 게걸음을 치지만, 코스닥 시장의 열기는 사그러들 줄 모른다. 지수 등락에 영향력이 큰 몇몇 대형주가 약세를 보일 뿐 코스닥 시장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벤처 및 인터넷 관련 종목은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벤처 지수(98년 1월4일=100)는 4월 이후 거의 오르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이다.

주식 시장 하면 증권거래소가 운영하는 시장에 익숙한 일반 투자자들은 코스닥 시장이 생소할 것이다. ‘코스닥 (KOSDAQ) ’은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중소기업과 벤처 기업을 위한 주식 거래 시장이다. 제1 시장인 거래소 시장에 빗대 제2 주식 시장 혹은 장외 시장이라고도 부른다. 코스닥 시장의 모델은 벤처 신화를 만들어낸 미국의 나스닥(NASDAQ) 시장이다.

정부, 코스닥 시장에 7백50개 사 유치 계획

현재 코스닥 시장에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이지만, 현대중공업·하나로통신·평화은행·중소기업은행·쌍용건설 같은 대형 업체도 있다. 이 5개 기업은 코스닥 지수를 좌지우지한다. 코스닥 시장은 거래소 시장에 비해 참여 기업이 4월 말 현재 절반(3백35개)이지만, 시가 총액(13조원)은 6.3%에 그친다. 하루 평균 거래량과 거래 대금도 거래소 시장의 각각 2.0%와 1.3%에 불과하다.

이처럼 코스닥 시장은 거래소 시장과 비교할 때 아직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될 수준이지만, 올 4월 이후의 활기는 범상치 않다. 96년 7월 개설된 코스닥 시장은 올 2월까지만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죽은’ 시장이었다. 그런데 3월부터 거래량이 늘기 시작하더니 4월 들어서는 3월보다 2배 이상 늘어나는 이상 징후를 보였다. 4월 들어 하루 평균 거래량이 7백41만주로 98년에 비해 무려 10배나 껑충 뛴 것이다. IMF 체제를 전후해 70 포인트까지 곤두박질쳐 회생 불능 상태에 빠졌던 코스닥 시장이 최근 한두 달 사이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초 여건이 좋다. 실물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는 데다 저금리 때문에 증시를 기웃거리는 돈이 시중에 철철 넘치기 때문이다. 5월10일 이후 큰 폭의 조정을 받고 있지만, 거래소 시장 주가가 상승한 것과 맥락이 같다. 이른바 ‘묻지마 투자’열풍이 미지의 시장인 코스닥에도 상륙한 것이다. 코스닥 지수가 4월 이전만 해도 거의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거래소 시장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다는 분석도 일반 투자자들의 코스닥행을 재촉했다. 코스닥증권 유시왕 전무는 “그동안은 흘러 넘친 거래소 시장의 물(투자 자금)이 코스닥에 스며들었는데, 이제는 투자자들의 참여가 높아져 독자적인 주가 움직임을 갖게 되었다”라고 지적한다.

일부 인터넷 관련 주식이 ‘거품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도 코스닥 시장을 상승세로 끌어간 주요 요인이다. 코스닥의 ‘ㅋ자’도 모르던 사람들에게 최근 코스닥 바람을 불러일으킨 데는 서울방송(SBS)의 공로도 컸다. 서울방송이 4월26∼27일 공모주 청약을 받기 전 자사 관련 뉴스를 취급하면서 코스닥 시장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서울방송 외에도 올해 들어 매일유업·보양산업·세인전자·신세계건설·동국산업·소예·인터파크 같은 ‘쓸 만한’ 업체들이 공모 바람을 일으키며 코스닥 시장에 진입했거나 곧 진입할 예정이라는 점도 열기를 부추겼다.

여기에 화룡점정이라고 해야 할까. 5월4일 정부가 코스닥 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 후끈 단 코스닥 시장에 기름을 부었다. 코스닥 등록 기업에 5년간 내야 할 법인세의 50%를 유예해 주고, 자본금이 천억원 이상인 기업은 자본 잠식 상태에서도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이 활성화 대책의 골자였다. 이규성 재정경제부장관은 “코스닥 시장을 첨단 벤처 기업의 주요 자금 조달 시장으로 육성하겠다”라고 밝혀, 거래소 시장에 이어 코스닥에서도 ‘이장관 주가’를 만들어냈다. 정부는 앞으로 정보통신업체 1백56개를 비롯해 7백50개 사를 유치해 코스닥을 미국의 나스닥처럼 첨단 기업의 주식 시장으로 키워갈 계획이다.

이렇게 정부가 코스닥 시장을 키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임에 따라 코스닥 시장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우선 그동안 코스닥 시장을 철저히 외면해온 기관투자가들이 코스닥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 첫 신호다. 발 빠른 일부 증권·투신사는 코스닥 전용 펀드를 만들어 코스닥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신설 투신사들도 속속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기존 대형사 역시 코스닥 시장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꿀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근 주식 유통 시장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좋은 조짐이라면, 발행 시장에서는 조금 일찍 청신호가 켜졌다. 코스닥에 등록시킬 기업을 찾아다니는 증권사의 인수 영업 부문이 올 들어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9개 대형 증권사가 올해 코스닥 등록을 타진하는 업체만 1백4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스닥 종목 발굴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대신증권 인수영업팀 최성용 차장은 “올해 안에 괜찮은 기업 70∼80개가 코스닥 시장의 새로운 얼굴로 등장할 것 같다”라고 내다보았다.

PCS 3사 같은 잘 알려진 통신 기업이 코스닥에 상륙할지도 관심거리다. 자본금이 천억원이 넘는 기업인 경우 자본 잠식 상태로도 등록이 가능하다는 등록 요건 완화책도 코스닥증권이 PCS 3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끈질기게 정부에 요구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현대중공업 외에는 인지도가 높은 간판 스타가 거의 없어 투자자들이 코스닥 시장을 외면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미국 나스닥 시장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인텔·오라클·델 컴퓨터·야후·아마존 같은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정보통신·인터넷 업체가 버티고 있다.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 코스닥에 들어가고 정부가 지원을 계속한다면, 코스닥 시장이 뜰 충분 조건은 갖추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투자자 처지에서는 섣불리 나서기 어렵다. 코스닥 시장은 ‘고위험·고수익 시장’이어서 거래소 시장에 비해 곱절의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가다가는 낭패 보기 딱 좋다.
1년 내내 한 주도 거래 안되는 종목 60%

우선 상당수 코스닥 등록 기업들은 재무 구조가 극히 좋지 않다. 등록 요건 자체가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채권 시장의 정크본드 같은 불량 주식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중소기업청이 벤처 기업이라고 인정한 기업은 지분 분산 비율 20%만 충족하면 그만이다. 현재 실적보다는 미래 성장성을 중시하는 시장의 특성을 감안해 등록 요건을 완화한 것이지만, 투자자로서는 기본적인 재무제표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부도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원경제연구소 전우종 책임연구원은 “최소한 영업 활동으로 인한 현금 흐름 항목이 플러스(+)인지는 확인해 보아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대부분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 등록된 탓에 정보도 매우 부족하다. 증권업계에서는 투자 정보나 추천 종목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지만, 코스닥 기업과 관련한 정보는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거의 없다. 바이코리아 코스닥 전용 펀드를 운용하는 현대투신운용 김영일 펀드매니저는 “드러난 정보가 별로 없어 일일이 기업을 방문해 정보를 구한다. 열 군데 가서 투자할 기업을 하나라도 건지면 성공이다”라고 말한다.

프로도 이럴진대 아마추어인 일반 투자자들은 최소한 코스닥증권이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과 인터넷 사이트(www.kosdaq.or.kr) 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또 언론 등에서 정보를 찾으려는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여야 한다. 코스닥 시장에는 투자에 조심해야 하는 이른바 ‘투자 유의 종목’이 절반 가까이 된다. 투자설명회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투자설명회 실시 기업은 기본적으로 성장성이나 재무 구조가 탄탄하고 설명회 이후 주가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정보 부족 못지 않게 코스닥 시장의 치명적 약점은 거래 물량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우량 종목이라도 매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림의 떡’일 뿐이다. 코스닥 시장에는 1년 내내 단 한 주도 거래되지 않는 종목이 60%나 된다. 호가 주문만으로도 연속 상한가 혹은 하한가라는 시세 조정이 가능한 것도 시중에 유동 물량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새로 상장하는 대형주에 투자할 만

금융감독원이 3백27개 코스닥 등록 기업을 대상으로 임원과 주요 주주의 주식 소유 상황을 들여다본 결과 이들의 합산 평균 지분율은 61.3%나 되었다. 심지어 이들의 지분율이 80% 이상인 기업도 63개 사나 되었다. 이런 기업은 아예 손대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주식이 전체의 20%밖에 안된다는 사실은, 주식을 사기도 쉽지 않지만 떨어질 때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증권업협회는 지난 2월 의무 분산 비율 20%를 충족하지 못한 81개 사에 공문을 보내 5월 말까지 지분을 분산하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되면 상당수 회사의 등록이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코스닥 시장은 공시 의무 같은 투자자 보호 장치가 거래소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허술하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코스닥 시장은 지뢰밭이다. 곳곳에 위험이 널려 있다. 위험이 큰 대신 기대 수익이 크다는 점이 코스닥 시장의 묘미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 시장에서 진주를 캐기란 결코 녹록치 않다. 전문가들은 △특화한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실적이 늘고 있는 벤처 기업 △평상시 거래량이 만 주 이상인 기업 △새로 상장하는 대형주 등에 투자하면 실패율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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