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사자’ 만난 리스 회사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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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부채 엄청나고 신용 추락해 ‘존망’ 기로에… “25개 중 5~6개 살아 남을 것”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이다.’ 햄릿의 절규가 리스업계에서도 흘러 나오고 있다. 25개 리스사가 너나없이 존망의 위기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리스업은 본래 기업체에 시설을 빌려 주고 대여료를 받는 업종. 하지만 실제로는 시설 자금과 운영 자금을 대출하고 수수료를 받는 금융업처럼 운영되어 왔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은행·종금사·투신사·증권사로부터 조달하거나, 해외에서 직접 외채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에 들어서면서 이들의 영업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감축해 신규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데다, 이미 나간 대출금마저 부실 채권으로 변해 버렸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막대한 환차손까지 덮쳤다.

“리스사, 정상 회복하는 데 10년 걸릴 것”

이로 인해 98 회계 연도(98년 4월∼99년 3월)에 소폭이라도 흑자를 낸 회사는 상은·신한·외환 리스밖에 없다. 가교 리스에 자산과 부채를 넘긴 5개 리스사는 물론이고, 나머지 17개 사도 적게는 백억원에서 많게는 4천5백억원에 이르는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동성 부족이다. 수신 기능이 없는 리스사는 다른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다 대출하는데, 신용도가 추락하는 바람에 신규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 차입한 자금의 만기 연장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각광받던 리스업계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1차 원인은 IMF 사태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89∼91년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전업 리스사의 양적 팽창을 들 수 있다. 72년 12월 한국산업리스가 출범한 이후 88년까지는 8개 사가 영업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17개가 늘어나 총 25개 사가 되었다. 경쟁이 극심해지면서 마진 폭이 줄자, 리스사들은 경쟁적으로 양적 확장 경쟁을 벌였다. 해외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 외화 자금을 끌어들였고, 현지 법인에 대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은, 해마다 기업의 설비 투자가 30% 이상 증가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96년을 고비로 설비 투자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줄어들고, IMF 사태가 닥치면서 모든 부담이 한꺼번에 리스업계를 덮친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25개 리스사가 안고 있는 부채는 35조5천억원이다. 은행·종금 등에서 빌려온 부채가 9조6천억원이고, 리스채를 발행해 조달한 부채가 10조6천억원, 국내 금융기관들의 지급 보증을 통해 외국에서 빌려온 외화 부채도 약 15조3천억원에 이른다. 이 빚을 제때 갚을 수 있는 리스사는 거의 없다. 25개 리스사 가운데 신용관리기금이 출자한 신보리스를 제외한 나머지 24개 사는 모두 은행의 자회사인데, 모은행이 자금 지원을 중단한데다 리스채 발행마저 힘들어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 금융기관이 어음을 돌리면 리스사는 부도를 낼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개발리스와 한국기업리스가 피사취 부도(상대방의 계약 불이행으로 말미암아 어음 채무자가 어음 대금을 공탁하고 지급을 거절하는 것으로 일반 부도와는 차이가 있다)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을 통해 회생을 모색하던 터에 외국계 금융기관이 어음을 돌리자, 채권자 간의 형평성을 내세우며 부채 상환을 거부해 버린 것이다.

이런 리스업계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동화리스 이숙형 자금부장은 비관적이다. 현재의 리스 업체들은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가 내세우는 이유는 이렇다. 금융기관은 신용을 먹고 산다. 한번 신용이 추락하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기도 어렵고, 기존 차입금의 만기를 연장하기도 불가능하다. 경기가 살아난다고 해도 기업의 급속한 설비 확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설사 그런 날이 온다고 해도 반신불수가 된 리스업체들로서는 신규 영업을 꿈꿀 수도 없다. 먼저 죽느냐 나중에 죽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리스 업종은 살아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한일리스금융 홍상완 기획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경기만 회복되면 기업들이 다시 설비 투자를 늘릴 것이고, 이렇게 되면 리스업체들도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경기가 얼마나 빠르게 회복되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아무리 빠르게 회복된다고 해도 리스사들이 정상을 되찾는 데는 최소한 5∼10년이 걸릴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최근 리스업계에 대한 구조 조정의 고삐를 바짝 움켜쥔 것도 그 때문이다. 은행·종금사 구조 조정이 일단락되었지만, 보험·리스 업계에 대한 구조 조정이 안되면 금융 시장이 또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리스업계 구조 조정은 은행·종금 업계와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여신 전문 금융업법 도입을 계기로, 리스업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자격 요건만 갖추면 리스업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에, 금감위가 리스사 퇴출에 관여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동안 리스사 구조 조정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금감위 분위기는 전연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제2 금융권에 대한 구조 조정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고 있고, 이 때문에 올해 상반기에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업계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현재 리스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조 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교 리스사에 자산과 부채를 넘기고 리스사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지난해 7월 출범한 한국리스여신이 그 기능을 떠맡고 있는데, 이곳에는 현재 서울리스(서울은행)·대구리스(대구은행)·부산리스(부산은행)·광은리스(광주은행)·중앙리스(충북은행)가 들어가 있다.

지난해 퇴출된 동화은행(동화리스)·경기은행(경인리스)·충청은행(중부리스)·동남은행(동남리스)·대동은행(대동리스) 등 5개 은행의 자회사는 가교 리스사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 중 경인리스와 동화리스는 독자 회생할 것으로 보인다. 동화리스는 세종증권이 인수 의사를 밝혔고, 경인리스는 주주들이 추가 출자하는 조건으로 채권 금융기관들이 화의에 협조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이 성사될 경우, 제3자 인수 또는 사적 화의를 통한 리스사 구조 조정의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가교 리스사로 가기 싫으면 파산 신청하라”

나머지 중부·동남·대동 리스는 이변이 없는 한 가교 리스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지난 4월26일 서울 명동에 있는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동화리스 채권자 집회가 끝난 후, 성업공사 관계자는 3개 사 대표를 불러 “가교 리스로 가든지 파산 신청을 하든지 양자 택일을 하라”고 통고했다. 이렇게 되면 3개 사는 기존 5개 사에 뒤이어 정리 절차를 밟게 된다.

그 밖에 한국개발리스와 한국기업리스는 채권단과 화의를 추진하다가, 이것이 여의치 않자 공적인 워크아웃을 추진하고 있다. 개발리스는 이미 워크아웃에 들어가기로 채권단과 합의했고, 기업리스는 5월12일 채권단회의에서 이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이것이 통과되면, 3개월 동안 자산 실사를 하고 구조 조정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마지막 대안이 모은행 계열사와의 통합이다. 산업은행이 한국산업리스와 한국기술금융을 결합해 산은캐피탈을 만든 것이나, 한빛은행이 한일리스·상은리스·한일할부금융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밖의 업체들은 아직까지 자회사 처리 방침을 확정하지 못했다. 한미리스의 경우를 보면, 대주주인 한미은행과 삼성이 각각 4백억원씩 대출금을 출자 전환하고, 나머지 채권자들이 채권의 10%를 탕감하는 조건을 놓고 협상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이 어떻게 끝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나머지 리스사들도 사정이 대부분 비슷하다. 비교적 우량하다는 평가를 받는 신한·국민 등 몇몇 리스사를 제외하면, 업체들의 생존 여부가 여전히 짙은 안개에 가려 있다. 최종적인 생살여탈권을 모은행이 쥐고 있는데, 이들이 대부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은 3월 말 결산 자료를 무기로 삼아 리스사들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생사 기로에 놓인 리스업계. 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생존이지만, 잘해야 5∼6곳 정도 살아 남으리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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