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대란은 일어날 것인가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9.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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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보급률 높고 재건축 시간 걸려 ‘기우’ 가능성… “수급 안 맞아 위기 온다” 반론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사는 최 아무개씨(31)는 요즘 전세 시세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는 부동산 경기에 찬바람이 몰아치던 지난해 4월, 신혼 살림을 차릴 집을 찾다가 지금 사는 연립 주택에 2천3백만원을 내고 2년 전세 계약을 맺었다. 방 2개에 거실 겸 부엌과 욕실이 딸린 12평짜리였다.

당시 인근에 있는 신동아 아파트 19평 전세가는 3천9백만원. 이 아파트 전세가는 올해 들어 꾸준히 오르더니 최근에는 7천만원으로 폭등했다. 그런데 최씨가 사는 연립 주택과 똑같은 조건을 갖춘 옆집은 최근 2천5백만원에 전세를 놓았는데도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씨는 자기가 사는 곳의 전세가가 오르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요즘 신문을 도배질하는 ‘전세가 폭등’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의아스럽다. 아파트만 사람 사는 곳인가. 일반 주택의 전세가는 경기가 극도로 위축되었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데, 일부 지역 아파트 전세가만 ‘나홀로 폭등’한 것이다.

올해 들어 매스컴을 통해 ‘전세 대란’이 우려된다는 보도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이후 분당·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아파트 전세가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이전 수준을 회복하거나 뛰어넘으면서 그같은 우려가 더욱 거세졌다.


전문가들 “전세가 상투 쳤다”

아파트 전세가가 급상승하게 된 배경으로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수급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점이다. 90년대 들어 해마다 60만호씩 공급되던 신규 주택이 지난해부터 30만호 수준으로 줄었다. 게다가 경제 한파로 중산층 이하 계층의 소득이 감소하면서 주택 구매력도 뚝 떨어지고 전세 수요자만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도시 근로자의 소득을 10분위로 나누어 집계한 자료를 보면 저소득 계층으로 분류되는 1∼3분위, 중간 계층인 4∼ 7분위, 고소득 계층인 8∼10분위를 통틀어 소득이 늘어난 계층은 최상위인 10분위뿐이다.

10분위의 월 소득 추이를 보면 97년 4/4분기에 4백85만원이던 것이 98년 4/4분기에는 5백20만원으로 7.2% 증가했다. 같은 기간 1∼9분위는 73만∼3백30만 원이던 월 소득이 60만∼3백20만 원으로 17.6∼3.0% 감소했다. 중산층 이하 계층의 소득이 격감하면서 실질 구매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이다. 결혼 인구가 늘어나면서 소형 아파트 전세 수요가 증가하는 것도 전세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세가 폭등에 대한 위기감을 결정적으로 부추긴 요소는 ‘서울시 저밀도 지구 재건축 사업’이다. 저밀도 지구로 지정된 잠실·반포 등 5개 지역 5만7천여 가구가 재건축 기간에 임시로 살 집을 찾아 대이동할 경우, 인근 지역 전세가가 폭등하면서 그 여파가 확산되리라는 불안감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전세가가 이미 ‘상투를 쳤다’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7∼ 8월에 전세가가 많이 오르자 ‘여름 비수기인데도 이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생각이다. 요즘은 오히려 비수기에 먼저 오른다. 지난 1∼2월에도 봄 이사철인 3∼4월보다 상승률이 높았다. 전세가는 추석 연휴를 고비로 약보합세로 돌아설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연구위원은 지금의 전세가 상승은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미리 매물을 확보하려는 수요자가 늘어난 탓이라고 판단한다. 저밀도 지구가 재건축에 들어가려면 앞으로 2∼3년 기다려야 하는데, 마치 당장 저밀도 지구 아파트 거주자들이 쏟아져 나올 것처럼 착각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부동산 뱅크〉 최승오 편집차장은 90년대 초반 같은 ‘전세 대란’은 오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는 96년 예를 들었다. 그 해 6월 서울 및 수도권 전세가는 매매가의 52∼53%에 달했다. 그러나 매매가가 상승하자 같은 해 12월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또 96년 6월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70%를 넘긴 아파트 단지가 서울·수도권을 통틀어 2백 단지였던 것이 같은 해 12월에는 1백26단지로 줄었다. 전세가가 매매가의 70%를 넘자 그때부터 매매가가 상승을 주도한 결과였다.

그런 이유로 올해에도 이제 전세가는 상승 행진을 마감하고 매매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7∼8월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전세가가 매매가의 70%를 넘어선 지역은 3백20단지. 자료 상으로는 현재 전세가가 96년보다 더 활황세를 보이는 셈이다.

단, 매매가가 상승하되 과거와 같이 폭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거의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오는 연말까지 적게는 5%, 많아야 10% 이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물가 상승분을 감안할 때 많이 오르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집값 상승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주된 근거는 주택 보급률이다. 국토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서울·수도권 지역 주택 보급률은 92%에 달한다. 여기에 1개 주택으로 분류되는 다세대 주택까지 합치면 주택 보급률이 이미 100%가 넘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주택에 대한 신규 수요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자고 나면 아파트값이 수백만 원씩 뛰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제 부동산 투자도 수익률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데, 매매가 상승률이 연간 10% 미만이라면 금융기관에 투자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이처럼 투기 자본이 입질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그만큼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그 대신 주거의 질에 따른 가격 차별이 심해질 전망이다. 산이나 강·호수를 끼고 있어 환경 프리미엄이 붙는 아파트, 또는 단지 시설이나 실내 마감재 등을 고급화한 아파트가 높은 시세를 형성한다.

특히 새 아파트와 역세권 아파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갈수록 두드러지는 점이 주목된다. 〈부동산 뱅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입주 연차 5년 이하인 새 아파트와 5년 이상인 기존 아파트의 평당 가격 차이가 95년 18만원에서 올해는 28만원으로 벌어졌다. 역세권과 비역세권 아파트의 가격 차이는 그보다 더해 2년 전만 해도 평당 12만원이던 것이 올해 4월 조사 결과로는 58만원으로 벌어졌다.


“2~3년 뒤 전세 대란은 필연”

그러나 전세가 상승 여력이 여전히 크다는 전문가 견해도 만만치 않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갑성 수석연구원은 “지금의 전세가 상승은 IMF 사태로 급락했던 시세가 회복되는 과정일 뿐이다. IMF 위기로 연기되었던 재건축·재개발 지역이 늘어나므로 전세 수요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새로 공급되는 주택 물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주택 공급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인 30만호로 줄었다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감소한 점이 불안감을 더하게 한다. 〈매일경제신문〉 부동산 담당 조상욱 기자는 “정부가 공급을 승인한 30만 가구는 건설 회사들이 신청한 물량일 뿐이다. 지난해 경제 한파로 건설 회사들이 부도를 내거나 분양 계획을 연기하는 바람에 실제 공급된 물량은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12만 가구만이 분양되었을 따름이다. 따라서 앞으로 2∼3년 뒤에는 입주 물량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수도권에 미분양 주택이 많아도 서울 강남에 사는 주민에게는 별 도움이 못되기 때문에 재고 물량이 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전세 문제가 2~3년 뒤 사회 문제로 발전할 소지가 큰 것이다.

주택산업연구원 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저소득층 주거 안정을 위해 서울 도심 지역에 임대 주택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개발이 활발해지고 아파트가 점점 중·대형 위주로 건설되면서 저소득 서민들이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서울 변두리 혹은 수도권에 임대 아파트를 지어보아야 출퇴근이 고달픈 저소득 계층으로서는 ‘그림의 떡’이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도심에 비싼 전셋집을 얻을 능력도 없다.

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전세 문제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저소득 서민층의 전세 시장을 안정시키는 일이다. 여기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도심 아파트 단지의 용적률을 높여 비싼 땅에도 임대 주택을 많이 짓게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전세 문제에서 유념해야 할 점은 지금의 전세가 급등이 서울·수도권의 특정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부동산 뱅크〉 최승오 편집차장은 “바닥 시세인 지난해 7월 가격대를 참고해야 거품을 뺀 가격에 거래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또 아파트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같은 가격으로 훨씬 유리하게 선택할 수 있는 연립·다세대·다가구 등 일반 주택으로 우회 전략을 펴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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