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으로 가슴을 키운다?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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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화장품 새롭게 각광…법적 근거 없어 불량품 방지 ‘허점’
서울의 한 여자 고등학교에서는 지금 이상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가슴을 크게 해준다는 한 화장품 회사의 효능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데, 실험 대상이 되기를 기꺼이 자청하고 나선 것은 이 학교 여교사들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글쎄올시다’이지만, 빈약한 가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실낱 같은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실험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특정 부위의 살을 빼주는 ‘화장품’도 있다. 얼마 전 한국화장품이 내놓은 ‘아이소브’와 ‘에나’가 대표적인 제품. 이것은 생산기술연구원 서만철 박사가 개발한 것을 한국화장품이 제품화한 것이다. 생산기술연구원이 (주)해평에 의뢰해 백명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82%가 효과를 보았다. 한국화장품 이광호 과장은 “현재 살 빼는 화장품은 프랑스의 크리스찬 디오르가 가장 앞서고, 일본의 시세이도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제품의 효능이 훨씬 앞선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여기서 힘을 얻은 한국화장품은 자사 화장품을 이용해 여성들의 몸매와 피부를 관리해 주는 ‘아이소브 뷰티 팜’을 개원하기로 하고, 지난 7월30일 서울 청담동에 1호점을 개원했다.

모공을 축소해 주는 화장품도 인기가 높다. 태평양화장품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여성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모공 관리이다. 모공은 피부가 숨쉬는 통로인데, 모공이 넓어지면 피지 분비가 왕성해져 잡티가 생기고 트러블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화장품 업체들은 스킨 로션·모공 토닉·클렌징 폼 이외에도 모공 축소를 위한 기능성 팩을 다양하게 출시하고 있다.

업계, 화장품관리법 제정 요구…국회 통과 앞둬

이밖에도 여드름 치료 화장품, 미백 화장품, 주름 방지 화장품, 자외선 차단 화장품 등 기능성 화장품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이들이 내세우는 효능을 보면, 이것이 도대체 화장품인지 의약품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기능성 화장품을 ‘약국 화장품’이라고 부르고, 국내에서도 17개 업체 제품이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연간 판매 규모는 2백억원 정도. 아직은 미미하지만, 갈수록 판매 규모가 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화장품 시장의 판도가 기초 화장품에서 색조 화장품으로, 다시 기능성 화장품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 현재 화장품은 약사법 규정을 따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기능성 화장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다. 외국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체들이 중구난방으로 ‘고기능성’을 내세워도 이를 검증하거나 규제할 근거가 없다. 최근 발생한 레티놀 파동이 그같은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레티놀(순수 비타민A)은 주름을 방지하는 기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자 화장품 업체들이 앞다투어 레티놀 함유 화장품을 내놓았다. 그런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23개 업소에서 51개 제품(국산 44, 수입 7)을 수거해 검사한 결과를 보면, 레티놀 함량이 제품 표준서와 일치하거나 더 들어간 것은 7개밖에 안 되고, 나머지 제품들은 모두 함량이 미달하거나 효능을 허위로 기재한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버젓이 기능성 화장품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화장품 업계 관계자들은 오래 전부터 화장품관리법 제정을 요구했다. 현재 약사법에 규정되어 있는 화장품 관련 내용을 별도 법 체계로 분리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화장품관리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인데, 올해 정기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여기서 규정되어 있는 기능성 화장품은 세 가지밖에 안된다. △잡티와 기미 없는 깨끗한 피부를 유지시켜 주는 미백 기능(화이트닝) 화장품 △주름을 막아 주는 노화 방지용 화장품 △피부를 적당히 태워 주거나 자외선을 차단하는 화장품. 그 외의 화장품은 기능성 화장품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가 없다. 모공 축소·여드름 치료·가슴 확대·잡티 제거 등을 내세우는 화장품은 기능성 화장품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한 채‘서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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