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증시, 여름 대목 만날까
  • 蘇成玟 기자 ()
  • 승인 2000.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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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5월29일부터 기록적 폭등… ‘서머 랠리’에 낙관·비관 엇갈려
코스닥 지수도 마찬가지다. 5월24일 장중에 110포인트까지 주저앉을 때만 해도 100선마저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지난 3월 중순 290포인트에 육박했던 코스닥 지수는 전문가들이 설정하던 200·170·150·120 등 예상 지지선을 비웃듯이 바닥 모르고 떨어지기만 했다. 하지만 5월29일부터 종합 주가지수와 동반 상승하며 열흘 만에 170선까지 치솟는 이변을 연출했다.

개별 종목이 아닌 주가지수가, 그것도 거래소·코스닥 양대 지수가 2주간 30∼50% 급등한 현상은 한국 증시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격언은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는 뜻도 되는데, 최근 급반등은 그만큼 올해 주식 시장의 폭락세가 대단했음을 의미한다. 증시 전문가들은 올해 엄습한 폭락세가 1989년과 1997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충격이었다고 지적한다.

증시에 화색이 만연해졌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새로운 고민에 휩싸여 있다. 후일을 기약하며 손해 보고 주식을 팔았던 이들은 ‘저러다 곧 꺾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상승장을 멀거니 바라만보았다. 또 주식 팔 기회를 놓치고 체념에 빠져 있던 투자자는 ‘원금에 연연하지 말고 팔아야 하나’라는 식이다.

“악재 해소된 것이 아니라 잠복한 것”

지수 600선(거래소)·100선(코스닥)마저 불안하다고 외치던 증시 전문가들마저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개인 투자자들은 더욱 갈피를 잡기 힘든 상황이다. 코스닥은 당분간 영화(榮華)를 재현하기가 힘들다는 데 별 이견이 없지만, 판단하기 힘든 곳은 거의 5개월간 하락세를 지속했던 거래소 시장이다.전문가들 의견이 일치하는 대목도 있다. 6월 중순부터는 단기 폭등에 따른 주가 조정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종합 주가지수 850선이 강력한 저항선으로 버티고 있는 데다, 단기 급등에 따른 경계 매물이 수급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는 적중 여부를 떠나 초보 투자자도 예상할 만한 교과서적인 해석이다. 문제는 6월 이후이다. 주가가 조정을 거친 다음 1000포인트 고지를 향해 다시 ‘돌격 앞으로!’를 외칠지, 아니면 다시 ‘날개 없는 추락’을 재연할지 예측하기 힘든 것이다.

현재로서는 7∼8월 장세를 낙관하는 전문가보다 비관하는 전문가가 우세한 편이다. 어둡게 전망하는 가장 큰 근거는 지금까지 증시를 무너뜨린 악재들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잠복’해 있을 따름이라는 점이다.

5월29일부터 장세가 바뀐 데는 미국 나스닥 시장이 급반등한 영향이 컸지만 국내 상황도 △현대그룹 오너 경영진 사퇴 △금융 구조 조정 박차 △남북 정상회담 임박 등으로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갑자기 부풀어올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큰 재료는 ‘단기 낙폭 과대’였다는 데 이견이 없다.

지난 5월 장세를 비관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삼성증권은 ‘구조 조정 추진 속도와 증시 회복 정도가 맞물릴 전망이다’라고 지적하는 낙관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최근 주가지수가 급격히 상승하자 지금은 오히려 장세를 경계하는 상황이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를 이끌고 있는 이남우 상무는 “금융기관들의 부실이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하다. 결국 해결될 것이라고는 보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종합 주가지수가 700선까지 미끄러진 뒤 7∼8월 동안 부진한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장인환 사장(KTB자산운용)도 “현대그룹 사태 역시 남북 정상회담이 가까워오는 상황에서 오너 퇴진 발표가 맞물려 수그러들었을 뿐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종합 주가지수가 당분간 700∼800 선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고 보지만 700선이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6월9일 사상 최초로 주식 거래 대금이 거래소와 코스닥을 합쳐 10조원을 돌파한 점에 대해 “하루 거래 대금이 전체 주식 예탁금보다 많았다. 시장 체력에 비해 에너지가 지나치게 소비되고 있다”라며, 이를 위험스러운 신호로 해석했다.

최근 증시 급등을 주도한 세력은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올해 한국 증시에서 10조원 넘게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 2주일 동안에만 2조5천억원에 달하는 ‘사재기’를 기록했다.

그에 상응하는 주식을 한국의 기관과 개인이 팔아넘긴 셈인데, 매도를 주도한 기관은 당분간 뮤추얼펀드와 주식형 수익증권 등 간접 투자 상품 환매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주식을 사들이기 힘든 형편이다.“해결 실마리 잡았을 때가 매수 시점”

만기가 돌아오는 뮤추얼펀드는 6월에 7천억원, 7월에 1조2천억원이 넘는다. 그에 비해 6월 한 달에만 거래소와 코스닥을 합해 8조4천억원에 달하는 증자·등록 등 신규 공급 물량이 쏟아질 것으로 보여(E*미래에셋증권 추정치), 이래저래 수급 사정이 나빠지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장세가 유지되려면 외국인들이 계속 주식을 사들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지만 올해 외국인들이 매수한 주식은 삼성전자·현대전자 같은 반도체 제조 회사와 SK텔레콤·한국통신공사 같은 통신 관련 회사 등 몇 개에 치중되어 있어, 이를 ‘바이 코리아(Buy Korea)’ 신호라고 해석하기는 아직 무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경민 사장(한가람투자자문)은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를 신뢰한다면 주식을 골고루 사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나스닥 붐을 타고 미국에서 신설된 ‘글로벌 하이테크 펀드’ 같은 매수 세력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한국의 성장주만 사들이는 데 따른 결과이다”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6월 이후 장세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김영수 사장(튜브에셋매니지먼트)은 “심각한 문제도 지나고 나서 보면 ‘그때 왜 그렇게 조바심을 냈나’ 싶은 때가 많았다. 한국의 금융 시스템은 한번도 안정적인 때가 없었다.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을 때가 중요하지, 해결이 될 듯한 상황에 이르면 이미 주가는 오를 만큼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한국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나스닥 시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점, 또 내부 악재가 거의 드러나 돌발 악재가 추가로 나오기 힘든 점 등을 들어 6월에 예상되는 조정 장세가 매수 적기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현재 투신(운용)사·자산운용사 등 기관들의 매수 여력이 좋지 못하지만, 이 역시 장세가 바뀌면 신규 자금이 유입되면서 개선될 수 있다고 보았다.

김기환 이사(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역시 “아무리 추락하는 장세도 6개월 넘게 떨어지기만 하는 경우는 못 보았다”라면서 오랜 경험에 근거를 두고 긍정적 분석을 펼쳤다.

지난 5월 투자전략가 정태욱 이사(현대증권 리서치센터 본부장)는 〈오진(誤診)〉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는 2차 구조 조정이 진행되면서 경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으나, 이러한 위기감이 역설적으로 경제 개혁을 가속화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같은 점이 궁극적으로 구조 조정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장세를 긍정적으로 진단한 바 있다. 올해의 주가 폭락은 경제 여건을 ‘오진’한 결과라는 해석이었다.

투자전략가 이근모 전무(굿모닝증권)도 그와 비슷한 의견을 보였는데, 다만 그는 3/4분기에는 변동성이 크고 4/4분기에 이르러야 본격적인 상승장이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서머 랠리(Summer Rally)’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셈이다.

긍정적인 장세 전망이 주로 ‘동물적인 투자 감각’과 ‘시장의 역설’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인 근거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특히 상승 추세인 반도체 가격이 그렇다.

김석규 이사(리젠트자산운용)는 “이런 저런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감안하면 장세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장세의 방향을 가늠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지표를 하나만 지적하라면 반도체 값을 들 수 있다. 5월 중순까지 개당 가격이 6.5 달러 선에 머무르던 64메가D램 값이 최근 7 달러를 돌파하며 상승세다. 8 달러를 돌파한다면 증시 여건이 매우 호전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가격이 8.5 달러까지 오르면 삼성전자 한 기업의 순이익이 2조원 가량 늘어나는데, 이는 전체 국가 무역 수지를 7억∼8억 달러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와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한다는 해석이다.

주가가 움직이는 방향은 신(神)도 모른다는 말이 있을 만큼 증시의 앞날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증시처럼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만 5월의 ‘절망’과 6월의 ‘회의(懷疑)’가 ‘주가는 절망 속에서 싹을 틔우며, 회의를 먹고 자라고, 희망 속에서 꽃을 피우며, 행복이 만발할 때 시들어간다’는 말을 떠올리게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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