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정보통신 제품 소형화 큰 바람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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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정보통신 제품 초소형·초경량화 바람…마이폰 등 국내외에서 호평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94년 작고한 독일 사회학자 E.F. 슈마허가 73년에 쓴 책의 제목이다. 책의 요지는 규모가 클수록 경제성이 떨어지므로 ‘거대화는 곧 자멸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독일의 폴크스바겐 사가 딱정벌레 차로 널리 알려진 ‘비틀’의 광고 문구로 채용하면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일본의 초소형 가전 제품에 대한 헌사로 즐겨 쓰였다.

그런데 뒤늦게 지금 한국에서 초소형화·초경량화 열풍이 불고 있다. 냉장고·자동차·아파트는 여전히 초대형 제품을 선호하지만, 몸에 지니는 가전·정보통신 제품은 초소형·초경량 제품이 단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때문에 업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사무실에 변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YTC텔레콤의 마이폰도 이같은 흐름의 선두 주자이다. 전화기 크기가 담뱃갑 반만하고, 수화기 대신 이어폰을 끼고 통화할 수 있어서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통화 내용을 받아 적는 사무직 근로자나 기자 들에게는 제격이다.
이 제품은 지난 6월 출시된 후 4개월 만에 10만대가 팔려나갔다. 해외에서의 반응은 더욱 뜨거워서, 이미 받아놓은 수출 주문만도 7백만 달러어치나 된다. 지난 9월에는 일본 니혼TV의 히트 예감 상품 코너에서 일제 카멜레온 자동차를 제치고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독일 등 20여 나라에 수출되었으며, 최근에는 일본 후지쓰 사에 5만대를 수출하기로 했고, 중국에는 반제품 형태로 수출과 별도로 기술 수출 협상을 벌이고 있다. 2000년 상반기에 코스닥 시장에 등록할 계획을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직원이 25명밖에 안되는 초미니 우량 회사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집중된 분야는 단연 휴대폰 단말기 시장일 것이다. 국내의 휴대폰 가입자는 이미 천만명을 넘어섰고, 중학생까지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성숙 단계에 들어섰다. 휴대폰 단말기 시장에서 삼성전자·현대전자·LG정보통신·한화정보통신이 벌이는 초소형화·초경량화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휴대폰 단말기 ‘폴더형’ 시장 싸움

그런데도 세계 최초로 단말기 무게를 80g 이하로 줄인 것은 이들 대기업이 아니라 어필 텔레콤이라는 조그만 벤처 기업이었다. 지난 4월 내놓은 어필 PCS폰(제품명:APC-1000)의 무게는 79g. 이 제품은 배터리가 다 소모되어도 일반 건전지를 넣어 통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제품이 인기를 끌자 삼성전자와 한화정보통신이 87g짜리 단말기를 내놓고 맞불 작전을 펼쳤지만, 어필 텔레콤의 성가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최근 모토롤라가 어필 텔레콤의 지분 51%를 인수한 뒤에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을 그대로 인정하기로 합의한 것도 바로 그같은 기술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최근 들어 휴대폰 단말기 시장의 초소형화 경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플립형 대신 제3 세대 단말기라고 일컬어지는 폴더형 단말기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는 모토롤라와 삼성전자이다. 양측은 폴더형 휴대폰 시장의 승자가 앞으로 휴대폰 시장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며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태세다.

폴더형의 특징은 휴대폰을 반으로 접어 크기를 명함만하게 줄일 수 있고, 액정 화면을 넓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민 것은 모토롤라의 스타택 7760이다. 무게는 89g, 가격은 50만원 정도. 한번 충전하면 1주일 넘게 대기 시간이 유지된다. 삼성전자의 폴더형은 소형 건전지까지 포함해 98g이어서 모토롤라 제품보다 약간 무겁지만, 전자 수첩 기능과 최대 2백개까지 전화 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기능 등 다양한 성능을 자랑한다. 삼성측은 연말까지 수출 2백50만대, 내수 4백80만대 등 총 7백30만대를 판매할 계획을 갖고 있다.

휴대폰의 기세에 눌려 있는 것이 호출기 시장이다. 한때 가입자 수가 1천5백만명까지 불어났던 호출기 시장은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최근 이동 통신 업체들이 가입비만 내면 휴대폰을 거저 주기 때문에 호출기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녹음기도 ‘가볍게 더 가볍게’

그렇다고 이 분야의 초소형화 경쟁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많은 업체가 작고 깜찍한 제품들을 내놓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중에서 기라정보통신(사장 강득수)이 가장 작은 제품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회사는 건전지 하나로 3개월까지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내놓았다.

문제는 판로를 확보하는 것. 이제 국내 시장에서는 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기라정보통신은 중국 수출로 돌파구를 뚫으려고 한다. 현재 중국의 호출기 가입자는 5천만명 정도인데, 앞으로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 경우 수신자도 요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호출기로 연락을 받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 휴대폰과 호출기가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 관계인 것이다. “중국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신세대층의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을 겨냥해 대대적인 판촉 공세를 펼 것이다.” 기라정보통신 관계자는 자신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밖에 초소형화·초경량화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제품이 초소형 녹음기이다. 지난 9월 삼성전자가 내놓은 ‘보이스펜’이 바로 그것. 이 제품은 길이가 14㎝이고 무게가 41g이다. 생김새만 보면 영락없이 만년필이다. 8메가 바이트(MB) 플래시 메모리 칩을 내장해 최장 70분까지 녹음할 수 있다. 양복 윗주머니에 꽂고 버튼만 누르면 모든 대화 내용을 녹음할 수 있어서, ‘몰래 녹음기’로 안성맞춤이다. 삼성측은 경찰·기자·비즈니스맨·학원 수강생을 주요한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다. 가격은 70분 녹음용이 19만8천원, 35분용이 14만8천원이다.

마지막으로 주목되는 분야가 초소형 노트북 시장이다. 기존 노트북 컴퓨터는 다양한 기능을 모두 갖추다 보니 우선 값이 비싸고, 무게가 2∼3㎏이나 된다. 건전지 사용 시간도 1∼3시간밖에 안되어 전원이 연결되지 않는 장소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바로 이런 한계를 극복한 초소형 노트북들이 시장에서 최후의 혈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사무용 수첩 크기 노트북 등장

이 분야의 선두 주자는 LG전자이다.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흑백용 핸드PC를 선보인 LG전자는, 최근 핸드PC ‘모빌리안 익스프레스’를 개발하고 11월부터 시판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사무용 수첩 크기에 무게는 8백30g. 윈도CE 2.0 운영 체계를 갖추고, 중앙처리장치(CPU) 용량이 100MHz, 메모리 용량이 16MB이다. 한번 충전해서 10시간까지 쓸 수 있고, 최대 4시간 음성을 녹음할 수 있다. 가격은 부가세 포함해서 1백10만원이다.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삼성전자의 ‘eGO노트’이다. 최근 개발된 이 제품은 오는 12월 미국과 유럽에 먼저 수출한 뒤 내년 상반기에 국내에 판매할 계획이다. 무게가 9백90g으로 모빌리안 익스프레스보다 약간 무겁지만, 윈도CE 최신판(2.11버전)을 채택하고 액정 화면이 약간 크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노트북 컴퓨터 시장에서 액정 화면을 키우고 두께를 얇게 하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과는 별도로, 핸드PC 시장에서는 초소형화·초경량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과연 이같은 경쟁이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래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 대신,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세계어로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YTC텔레콤과 어필텔레콤의 성공으로 일단 그같은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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