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부총리의 공로와 과오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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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언론이 질타하고 있는 것처럼 강경식 부총리가 사퇴하면 경제가 좋아질까? 강부총리는 지금은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유도해야지 정부 개입이라는 보이는 손을 발동해서는 안되고, 할
‘대한민국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며 정권 말기인 지난 3월 취임하면서 개혁의 진군 나팔을 힘차게 불었던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 그는 8개월여 재임하는 동안 금융대란설과 음모설에 시달렸으며, 경제 위기를 부른 ‘주범’으로 몰렸다. 노동계·정치권·언론 등으로부터 퇴진 압력도 받았다. 지금도 그는 적들에 포위되어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도 그의 소신과 뚝심은 여전하다. 정치권과 언론이 뭐라고 하면, 그는 부총리 자리를 그만두면 두었지 소신을 굽힐 수는 없다고 맞받아친다. 재경원 관료들에게도 정치권과 언론 눈치를 보지 말고 경제에만 신경 쓰라고 지시한다. 노동계로부터 위협을 받아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으면서도, 그는 국내외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정책과 개혁 방향을 설명한다.

그는 어떤 부총리인가. 과연 한국 경제를 망치고 있는 장본인인가. 정치권과 대부분의 언론 논조처럼 그가 사퇴하면 경제가 좋아질 것인가. 이런 의문은 그가 펼치고 있는 정책 방향이 우리에게 유익한지 살펴보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도 기업 처리 오락가락

강부총리에 대한 여론의 질타는 크게 세 가지이다. 기아 등 기업의 부도 처리와 관련해 개입과 불개입을 오락가락했다는 비난이 있고, 주가 폭락과 환율 급등 등 금융 시장 불안에 늑장 대응해 경제 위기를 키웠다는 비난이 있다. 또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시장 경제 원리에 대해,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주장이라는 비난도 많다.

부도 처리와 관련해 오락가락했다는 비난은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볼 정황이 적지 않다. 대우그룹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개별 기업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면 끝까지 그렇게 했어야 했다. 정책의 일관성을 잃으니 기업들이 헷갈리고 금융권이 동요하는 것이다. 또 기아 처리에서 보듯이 형평성도 잃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올들어 부실화한 대기업 10개 가운데 정부가 제각각으로 대응해, 처리 방식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경원의 한 관계자는 “부실 기업 처리에 대해 형평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온당치 않다. 모두가 같은 방식을 택할 수 없는 이유는, 우선 부실 정도가 다르고 기업 사정도 다르다. 채권단이 김선홍 회장 사퇴를 요구한 것은 강도 높은 자구 대책을 실천에 옮기라는 의지를 시험하는 동시에 경영 책임을 지라는 뜻이었는데, 그가 버티는 바람에 자금 지원 등 정상화 자체가 추진될 수 없었다. 진로 등 다른 기업과 달리 그가 오너가 아니어서 주식 소각 같은 것으로 경영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라고 반박했다.

기아의 경우는 또 채권단에 매달리며 이들에게 적극 협조했던 다른 기업과는 달리, 정치권과 국민 정서에 자신의 운명을 의탁했으며 노조가 극렬히 저항해 화를 키운 측면도 적지 않다. 기아 노조의 결사적 저항은 강부총리가 자초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기아를 준공기업화하고 진 념 전노동부장관을 법정 관리인(회장)에 선임하면서 기아를 결국 삼성에 넘기려 한다는 의혹은 일단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국회의원(부산 동래) 시절 삼성자동차 공장을 부산에 유치한 일등 공신이라는 점이 시나리오설과 음모론을 일으키는 데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다.
강부총리는 지난 5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무슨 음모설·인수설 하는 것으로, 정책과 관계 없는 비난을 받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이런 비방은 개인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으로 참기 어려웠다”라고 털어놓았다. 기아 처리가 늦어진 데에는 기아 자체가 부도유예협약이 끝나기 직전 전격적으로 화의를 발표해 물꼬를 틀어버린 점도 있지만, 이른바 원죄론 같은 정황 탓으로 정부가 시간을 끈 측면도 적지 않다.

기아 법정 관리 방침이 발표된 10월22일 직전까지 강부총리는 기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여론에 대해 ‘개별 기업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당초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던 그가 10월21일 오후에 긴급 연통을 넣어 6개 장관 심야 극비 회동을 마련케 하고, 기아를 처리할 D데이를 금요일에서 화요일로 앞당겼다. 정부가 빨리 처리하라는 주장이 정치권은 물론 언론에서도 일제히 터져 나오고 있었고 금융 시장 상황이 아주 나빠지고 있어 그때가 처리할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경원이 기아 등 부실 기업 처리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상당히 개입한 흔적이 적지 않은데도 강부총리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개별 기업 문제에 개입한 적이 없다. 따라서 오락가락한 적도 없다. 개별 기업에 정부가 개입하면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지급 금지 규정에 위배된다. 기아의 경우 정부는 산업은행의 대주주로서 채권을 보전하려는 차원에서 개입한 것이지 정부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이런 논리 구성을 한 것에 대해 그것이 그것 아니냐고 볼 수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아에 정부가 지원을 하면 이것을 기화로 보복 관세를 때리겠다는 외국 자동차 회사들을 따돌릴 수 있는 것이다.

금융 시장 안정 대책이 적절하지 못했고 너무 늦어 실기했다는 금융권 등의 비판에 대해서도 강부총리는 당당했다. “무엇이 실기인지 모르겠다. 금융 시장 안정과 관련해서는 신용 불안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말을 국내외에 천명했고, 금융기관 부실에 대해서도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수 차례 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이처럼 과도하게 부풀려 있는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데에도 노력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금융 개혁을 통해 금융 시장이 시장의 힘으로 안정을 되찾게 하는 일이다. 금융개혁법안이 이번 국회에서 꼭 통과되어야 한다.”

“시장 경제 원칙은 높이 평가”

강부총리는 인터뷰 내내 13개 금융개혁법안이 올해 꼭 통과되어야 한다며, 그 이유로 △실물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금융 시장이 개혁되어야 구조 조정을 할 수 있고, 그래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98년 금융 시장 전면 개방을 앞두고 최소한이나마 준비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내년이면 정부 조직 개편과 지자제 선거 등으로 관심사가 달라져 최소 1년 이상 개혁할 시기를 놓친다는 세 가지를 들었다. 재경원의 한 관계자는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부총리가 금융개혁법안 통과를 위해서라면 간청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며, 이 법안들의 통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또다시 실망을 주면 그때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강부총리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데는 그의 시장 경제 원칙도 큰 몫을 했다. 국회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어설픈 시장 경제 원리를 고집하다 경제가 파국 문턱에 왔다’고 집중 성토하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하더라도, 시장 경제를 외치던 기업들까지도 비난 일색인 것은 어찌된 까닭인가.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도 않은데 시장 논리라는 잣대로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겠나.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수준으로 시장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도 강부총리는 변태적 혹은 위장된 시장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강부총리는 “시장 경제 원칙 아니면 무엇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가. 지금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애쓰는 중이다. 정부가 개입하게 되면 통상 마찰에 휘말리게 되고, 기업들로 하여금 잘못되어도 정부가 도와줄 텐데 하는 안이한 생각에 젖게 만든다.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정부 개입은 낡은 인식이다”라며 소신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강부총리는 최근의 부도 사태가 구조 조정 과정에서 나오는 고통이라며, 대기업의 과도한 부채와 금융 시장의 비효율이 톱니바퀴처럼 얽혀 국제 경쟁력을 갉아 먹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 개혁을 통해 획기적인 구조 조정을 해내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런 비유도 했다. 중국 삼국시대 적벽대전 당시 조조의 위나라가 배와 배를 사슬로 연결해 놓으니 평소에는 배가 흔들리지 않아 좋았는데 동남풍이 불어 화공을 당하자 배를 한 척도 건지지 못했다며, 재벌 그룹들의 선단식 경영을 꼬집었다. 그는 또 입체 영화 상영관에 들어가면 화면이 뿌옇게 보이지만 입체 영화용 안경을 쓰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기업들도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부총리가 기업의 원활한 구조 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업 퇴출 제도를 개선하고 기업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금융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이런 현실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강부총리는 언론과 전쟁을 많이 치렀다. 그는 사사건건 언론으로부터 실정을 ‘문책’당했으며 퇴진 압력도 받았다. 이에 대해 재경원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강부총리는 도대체 언론의 ‘충고’에 끄덕도 안했다. 반응이 전혀 없으니 편집국 수뇌부가 약이 더 올랐을 것이다. 최근 들어서 언론인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벌였지만, 이런 그의 태도들이 부풀려져 언론이 그를 과도하게 공격하게 된 것 같다”라며 출입 기자 사이에서는 그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 공감하는 기자가 상당히 많다고 밝혔다.

강부총리를 수세로 몰고 있는 식자들도 그의 지향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 연구위원은 “시장 경제 원칙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만 불안 요인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는 등 세부 추진 과정에서 치밀함이 부족해 아쉽다. 그러나 금융 시장이 불안정해진 주범은 강경식 경제팀이 아니라 정치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유한수 소장도 강부총리의 공과에 대해 공 쪽에 무게를 두었다. 유소장은 “97년 한국 경제 상황은 거시 지표가 살아나는데도 부도율은 최악인 모순이 나타났고, 금융 시장이 상호 연결되고 개방의 영향이 크게 나타나는 등 정책 수단을 적절히 쓰기가 어려웠다. 이런 전대미문의 상황에서는 준거로 삼을 만한 정책 모델도 없다. 시장 변동에 정부가 일일이 대응했더라면 널뛰기가 더 심해졌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강부총리의 말대로 시장 경제 지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러나 현실에서 타협점을 찾는 노력은 정부 주도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옮아가는 과도기에 할 수밖에 없고, 이런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이런 과도기에 나타나는 경제 인식에 대한 사람들의 이중 잣대가 강부총리를 더 옥죈 것도 틀림없다. 가령 박정희 증후군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자원 배분에 익숙해 있다. 이성적으로 정부 개입은 이 시대에 맞지 않은 틀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자기에게 이익이 될 때는 정부더러 나서라고 외쳐댄다. 이런 이중성이 경제팀의 경제 운용에 불만을 갖게 하는 가장 큰 심리적 기제로 보인다.

강부총리는 이런 이중성을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재경원 내에서도 만나고 있다. 박학다식하고 방향이 맞다는 점에서 그의 논리를 당해낼 관료가 없는 것 같지만, 관료들은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며 너무 앞서간다고 토를 단다. 이렇듯 그는 관료들의 저항에도 적잖이 시달려 왔다.

강부총리는 구원 투수 아닌 선발 투수감

지난 8개월여 언론과 정치권, 기아 등 이해 당사자들의 ‘강경식 흔들기’는 그가 했고, 하고자 했던 일의 정당성에 비할 때 비이성적이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하지만 원칙에 지나치게 집착해 그때그때 현실적인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정책 추진 자체를 어렵게 했다는 주장도 꼽씹어 보아야 한다. 강경식식 경제 운용에 관한 치열한 찬반 양론에도 불구하고, 거센 대선 바람이 부는 와중에서 내년 예산 증가율을 5%대로 막아낸 것이나, 금융 개혁과 구조 조정 관련 대책 등은 일정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한국 속담에서 보듯이 임기 말에 너무 소매를 걷어붙이고 앞만 보고 일한 대가일까. 강부총리는 그의 이념에 동조하는 지지자들로부터 구원 투수감이 아니라 선발 투수감이라는 말을 듣는다. 강부총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내년 2월까지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지만, 당장 금융 시장의 불안 심리를 걷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 발등의 불이다.

강부총리는 부총리 이후의 진로에 대해 국회의원으로서 정치 선진화에 진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가 제대로 서야 모든 것이 제대로 선다는 신념을 피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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