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평]동북아 살찌울 개발은행 세우자
  • 마크 발렌시아 (미국 동서문화센터 선임연구위원) ()
  • 승인 199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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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의 동북 3성, 그리고 몽고와 러시아 극동 지방의 경제 개발을 위한 국제적인 금융기구를 설립하는 일이 시급하다. 역사적으로 동북아 지역은 정치적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은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경제 발전은 동북아 정치 안정에 상당히 기여할 것이다.

이 4개 지역은 현재 경제 발전을 위해서 사회주의 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이들 지역은 외국 차관이나 원조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정학적 조건이 매우 열악하여 경제 개발을 위한 자본 조달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아시아의 경제개발을 위한 금융기관으로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있다. 그러나 이 은행은 이 지역의 사회간접자본 건설 프로젝트들을 지원할 만한 충분한 재원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회원국이 아니면 돈을 빌려 주지도 않는다.

동북아 지역의 경제 개발을 위해 각 대륙의 개발은행들이 비축한 재원을 모아 기금을 조성하는 방법이 제기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가능한 선택일 수가 없다. 유럽개발은행(EBRD)과 같은 기존 개발은행들이 이미 그들의 제한된 자금을 다른 지역에 전용해서는 안된다는 커다란 정치적 압력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걸음마 단계에 있는 동북아 시장경제에 생명을 불어넣을 새로운 개발은행이 절실히 필요하다.

서로 다른 체제 간의 자본 흐름 조정 위해 설립 시급

동북아개발은행은 우선 동북아 국가 간의 자본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금융 중개 기관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동북아 국가들은 서로 다른 정치·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어 자본의 흐름이 자유롭지 않다. 옛 사회주의 국가 네 나라와 선진 시장경제 체제 국가(한국과 일본)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경제 교류와 협력 양식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 바로 이 점 때문에라도 동북아의 경제 개발만을 전문으로 담당할 개발은행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또 동북아개발은행은 일본과 한국이 경제개발 과정에서 겪은 지식·경험·제도를 이들 지역으로 이전하는 데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금융·보험·통신 부문에서 전문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마련하여 이들 지역에 시장경제 체제가 뿌리내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재원과 인력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열쇠는 일본이 쥐고 있다. 한국이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제한적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기존 해외 원조 자금의 지역 안배를 조정하기만 하면 된다. 인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한국에는 동북아개발은행의 운영을 담당할 만한 잘 교육 받고 경험 있는 인력이 많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일본이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주도하면서 동북아의 장기적인 경제적 안녕을 이웃 국가들에게 공약할 것인가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이 아니고서는 엄청난 재원을 필요로 하는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주도할 나라가 없다.

일본이 주도하고,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

일본은 동북아 4개 지역이 잠재 시장으로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이 지역의 경제 발전이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설사 부분적으로 다른 동북아 국가들의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과의 오랜 무역 불균형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치·경제적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일본이 동북아에서 진정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국제 사회에서 자신의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적 지도력을 추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국제 사회에 ‘경제적 이기주의자’라는 이미지만 부각할 것이다. 이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일본으로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동북아에서조차 지도적인 책임을 맡기 어려운 국가가 경제력만 크다고 세계 무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는 어렵다. 바로 이 점을 일본이 인식하고 동북아의 경제 발전에 나름대로 기여를 할 것이냐가 결국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의 관건이 된다고 본다.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은 동북아 국가들과 이 지역의 이해와 관련된 국가들 간의 정상회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유럽개발은행 설립도 옛 소련이 무너진 직후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결정되었던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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