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경쟁 늪에 빠진 신문 산업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6.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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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 못하면 전락하는 업계 체질이 독·과점 유발…부수 과장·담합 등 악습 계속될 듯
 
88년 한국신문협회가 제정한 신문의 날 표어는 여느 해와 달랐다. `‘자유경쟁 시대의 사회’. 60년대 늘상 등장하던 `‘신문의 책임’이나 `‘신문의 독립’ 같은 것이 아니었다.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 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으로 바뀐 이듬해인 이 해는 신문협회가 공식으로 담합 체제의 해체를 선언한 해이기도 했다.

이 시기야말로 광복 이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유 경쟁이 신문업계에 본격 도입된 때다. 그러나 신문사 판매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미 60년대에도 현재와 같은 변칙적인 판매 경쟁은 있었다. 65년 9월 창간된 <중앙일보>가 기존 시장을 뚫기 위해 이른바 `‘투망식 판매 전략’을 택하면서 무가지가 등장했고, 경품도 등장했다. 이 변칙 판매 경쟁을 중단시킨 것 역시 신문 요금과 광고 요금을 담합해 결정하면서 신문산업 카르텔을 이끌던 신문협회였다. 신문협회는 77년 8월 `‘신문 판매 정상화를 위한 결의문’을 통해 무가지 살포나 구독료 할인, 경품 첨부 등을 하지 않기로 했다.

발행 직후 폐지 수집장으로 직행하는 신문 부지기수

 
구독료 할인, 강제 투입, 자매지 끼워주기에서 심지어 이삿짐 날라주기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수법이 동원되기는 하지만, 88년 이후의 변칙 판매 경쟁은 이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한 신문사의 판매 담당 이사는 이렇게 죽기 살기로 경쟁했던 적은 없었다고 회고한다. 60, 70년대식 경쟁에는 그래도 인간적인 데가 있었다는 것이다(더욱이 80년 언론 통폐합 이후 신문업계는 정부가 만들어준 독과점 체제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변칙 판매 경쟁을 부채질하는 것은 물론 냉혹한 경제 논리다. 가장 고전적인 수법인 무가지(확장지 포함) 투입이 좋은 예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무가지 투입은 새로운 신문 소비자를 확보하는 신선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무가지를 투입해도 유가 독자를 확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배달 비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5∼6년 전만 하더라도 신문 1부당 배달 비용은 1백50원이었으나, 현재는 1천5백원에 이른다는 것이 신문업계의 추정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2천5백원을 웃돌기도 한다. 이렇게 배달 비용이 갑자기 는 것은 배달 인력이 부족해 인건비는 올라가는데 증면이나 주말판 발행으로 1인당 배달 부수는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지국에서 무가지를 2백부 잠재 독자에게 돌릴 경우, 추가되는 배달비가 40만원에 달한다(1부당 배달비를 2천원으로 잡을 경우). 지국장이 이 정도 돈을 들여 무가지를 살포해 보아야 독자로 끌어들일 만한 집이 별로 없다고 판단해서, 이 신문을 그냥 쓰레기 종이로 처분해버린다고 하자. 신문 백 부의 파지 값은 1천3백원. 한달에 28일치 신문 2백부를 팔 경우 부수입이 7만2천원이나 된다. 독자에게 배달되지 않고 바로 폐지 수집장으로 직행하는 신문이 생겨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해 초의 추정이기는 하지만, 백여 개에 달하는 국내 일간 신문이 하루 발행하는 1천3백여만 부 가운데 23%인 3백만 부 가량이 이런 신문에 해당한다(`‘바른언론을 위한 시민연합’과 `‘배달녹색연합’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 `‘신문 증면 무엇이 문제인가’에서의 추정치). 60, 70년대에는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회사가 파지용 신문을 양산하는 것은, 발행 부수를 중시하는 광고주를 고려할 때 그래도 이 편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자유 경쟁 체제로 바뀐 이래 신문업계의 독과점 구도가 심해지고 있는 것도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한국기자협회보〉에 따르면, 현재 신문업계는 한 신문사가 발행 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3대 신문사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66%를 점유한다. 최대 4개 업체가 한 시장의 50% 이상 또는 8개 업체가 70% 이상을 점유하면 시장 집중이 시장 경제를 해치는 독과점 혹은 독점적 구조라고 보는 미국 공정거래법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문산업은 `‘지극히 독점적인’ 시장에 해당한다.

 
경쟁이 본격화한 87년 이후 중앙 일간지 전체의 매출액과 당기 순이익 추세를 3대 신문사와 비교해 보면, 이는 더욱 뚜렷해진다(70쪽 도표 참조). 신문업계가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었다던 94년 한 독점 신문사가 기록한 순이익은 나머지 신문사 전체가 벌어들인 돈보다 많았고, 3대 업체 기록 역시 신문업계 전체의 순이익보다 훨씬 많았다. 3대 신문사를 제외한 나머지 신문사들이 대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역시 3대 신문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적자를 기록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3대 신문사와 나머지 신문사 간에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신문산업의 경제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문산업은 전체 원가에서 고정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규모의 경제가 잘 적용되는 산업이다. 이런 산업에서는 제품 생산 비용이 매출액이나 발행 부수와는 큰 관계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매출액에서 큰 차이가 나면 바로 손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매출액이 적은 신생 신문사들의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발행 부수가 많을수록 신문 한 부당 평균 생산 비용이 훨씬 낮아지는 이 시장에서는 발행 부수가 적은 신문이 경쟁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신문산업의 행태를 산업조직론적 관점에서 연구한 정연우 박사는 “신문산업의 이런 특성상 앞으로도 경제력이 대신문사로 더욱 집중될 수밖에 없다”라고 내다본다(<한국 신문산업에 대한 산업조직론적 연구>, 1995, 중앙대 박사 학위 논문).

올해 광고주협회의 구독 행태 조사 결과 변칙 판매 경쟁의 주범이 3대 신문사였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만명에 가까운 신문 독자를 인터뷰한 이 방대한 조사 결과 무가지 구독 경험은 〈조선일보〉(1천5백92명) 〈동아일보〉(1천5백33명) 〈중앙일보〉(1천4백22명) 순이었다. 신문업계의 속성상 한 신문사 위주의 독점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3대 신문사가 그야말로 `‘살인적인 판매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각 신문사의 발행 부수를 공개하는 ABC 제도가 곧 실시될 예정이다. 광고 수입이 신문사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재 신문사의 재무 구조상 ABC 제도가 실시되면 현재 시장 점유율에서 뒤지는 신문사들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다. ABC협회가 발표하는 유료 판매 부수를 기준으로 광고비가 책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구미 각국이 실시하고 있는 ABC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87년 언론기본법 폐지 이후 새 신문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창·복간되어 신문 광고시장이 난맥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매체 선정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광고주와 광고대행사들이 ABC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신문사들의 비협조로 어려움을 겪던 ABC협회는 올해 5월까지 이 제도를 실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일부 신문사의 협조를 구하지 못해 다시 실시를 늦춰 놓은 상태다.

현재 상당수 신문사가 전체 수입 가운데 광고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구할 수는 없지만, 신문 판매 수입 대 광고 수입이 3 대 7 정도라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은 71쪽 도표 참조). 지방지의 경우는 2 대 8로 정착된 상태. 80년대까지만 해도 이 비율은 5.5 대 4.5 정도였으나, 그후 역전했다. 신문사의 광고 수입이 이렇게 는 것은 증면 경쟁으로 광고 지면이 크게 늘어난 데다 광고 단가도 크게 인상된 데서 말미암는다.

 
업계 담합 구조가 광고 시장 왜곡


〈광고백서〉에 따르면, 91년 이후 4년간 신문 광고료는 연평균 20% 가까이 올랐다. 88년 이후 새 신문이 속속 창간되고 광고 지면 공급이 자유로워져 광고 요금은 떨어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은, 신문업계의 고질적인 담합 구조 때문이다. 카르텔 해체를 선언한 이후에도 신문협회는 모든 신문을 중앙지·스포츠지·경제지·지방지로 분류해 일방적으로 값을 매겨 발표하고 있다.

신문 광고 추세와 관련해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90년 서울방송(SBS)과 94년 유선 방송 출범이 신문 광고에 별 위협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92년을 고비로 방송 광고가 신문 광고비를 앞지르기는 했지만, 신문 광고에 대한 수요도 예상 외로 커졌던 것이다.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총 광고 시장에서 신문업계의 몫은 2조2백억원 가량으로, 전체의 44.4%에 달해 여전히 막대한 규모다. 76년 10월 정부가 방송 광고 시간을 전체 방송 시간의 백분의 8을 넘을 수 없도록 축소한 뒤 늘어나지 못한 것이 신문사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유선 방송이 예상과 달리 유력한 광고 매체로 자리를 못잡는 것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지난해 유선 방송의 광고 수입은 공중파 방송 광고비의 1%에도 못미쳤다).

그러나 신문사 광고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폭주하는 신문 광고 수요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은 일부 독과점 신문사들 차지다. 광고 수입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신문사는 광고 물량이 넘쳐 웃돈을 주고 청탁해야 하는 반면, 어떤 신문사는 물량이 모자라 무리하게 광고를 실은 후 할인 가격을 받거나 사례비를 지불하기도 한다. 언론사라는 지위를 이용한 강매 행위가 횡행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공식적인 광고 요금은 말 그대로 지침일 뿐 실제 광고료와는 크게 차이가 난다. 상당수 신문사가 서로 ‘최대 발행 부수’를 공언하는 마당이고 보면 신문 광고 시장의 이중성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신문산업의 미래를 그릴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제품 차별화와 사업 다각화이다. 결국 상당수 신문들은 지금같이 똑같은 독자층을 공략하는 전략에서 탈피할 수밖에 없다. 한국언론연구원 강연구 선임 연구원은 “천편일률적이던 상품 생산 방식, 즉 기사 취재 방식이 바뀌는 징후가 엿보이는 것도 제품 차별화와 관련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기존 방식으로는 다른 신문사와 질적으로 차별화한 신문을 만들어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할 것이라는 얘기다. 군소 신문으로 전락한 일부 업체들은 틈새 시장을 노려, 기사의 소재나 논조를 차별화하려 할지도 모른다. 위성 방송이나 인터네트 신문과 같은 새로운 사업 영역에 뛰어드는 신문사들도 생겨나게 된다.

그러면 신문 시장에서 무한 경쟁은 사라질 것인가. 몇몇 신문사가 신문 판매 수입과 광고 수입을 독점하고 나머지는 군소 업체로 전락하게 되는 신문산업의 특성이 변하지 않는 한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봄 그랬던 것처럼 변칙적인 신문 판매와 광고 지면 판매에 메스를 대려 할 수도 있다. 아니면 77년 8월 신문협회가 그랬던 것처럼, 변칙적인 판매 경쟁을 끝내기 위한 신사협정이 맺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모든 조처가 신문 시장을 지배하는 경제 논리를 제압할 수 있을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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