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교두보 확보하는 대우그룹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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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유언’ 따라 합영사업 적극 추진…기술진 장기 체류가 관건
통일원은 7월6일 대우그룹의 북한사업 창구인 종합상사 (주)대우 남포공단 협력사업 추진을 위해 파견하는 대우그룹 기술자 13명에 대해 북한 방문을 공식 승인했다. 남북 교역 사상 정부가 기술자들의 방북을 승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대우가 92년부터 추진해온 남포공단 협력사업의 실현성이 한층 밝아졌다.

정부의 이번 조처는 북한에 대한 한국의 쌀 제공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호전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대우그룹 기술자들의 입북을 허용한다면, 이로써 남북 경협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북한이 대우 기술자만 부른 두 가지 이유

대우와 북한측 합작선인 삼천리총회사는 6월 초 북경에서 남포공단 내에 셔츠·재킷·가방을 각각 생산하는 공장 3개를 합영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투자 금액은 양측이 각각 5백12만달러에 달한다고 대우는 밝혔다. 양측은 남포공단의 가동 시기를 9월로 하기로 했으나 대우 기술자 방북 시기 등 세부적인 문제는 이 달에 다시 만나 협의하기로 했다고 대우측은 말했다.

통일원에 따르면, 이번에 방북 승인을 받은 대우그룹 기술자 13명 가운데 신홍조 기술이사를 비롯한 6명은 60일 동안 남포공단에만 머무르게 된다. 이들은 체류 기간에 북한측과 공장 건설을 위한 설비 관련 협의를 하고 현지 관계자들에 대한 기술 지도를 맡을 예정이다. 이재목 과장 등 나머지 7명은 현지에서 1년간 체류하면서 제품 생산 교육과 기술 지도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원은 이들 7명이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 업무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왕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

대우 기술자 방북은 단기 방문이 아니라 북한에 장기간 상주하는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국 기업인들의 단기 방문은 허용했으나 기술자들의 장기 체류는 불허해 왔다. 이는 북한이 한국과의 인적 교류가 체제에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대우 기술자의 북한 장기 체류가 실현되면 이를 계기로 남북간 인적 교류의 물꼬가 트여 남북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남북 경협은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원자재를 북한에 보내 경공업 제품 생산을 위탁하는 이른바 위탁가공무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위탁가공무역에서는, 생산은 전적으로 북한측이 책임진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의 생산 기술이 낮아 한국 기업들은 품질 관리를 위한 기술자 방북을 추진해 왔다. 물론 북한 당국은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한국 기술자들의 장기 입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동안 북한과 위탁가공무역을 해온 종합상사들은 기술자 방북을 꾸준히 북한 당국에 요구해 왔다. 이들 기업은 기술 지도를 통해 품질 관리를 하여 위탁가공무역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남북 경협을 확대하는 방안이라고 인식한다. 이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해 직접 투자나 북측과의 합작 투자는 당분간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삼성물산과 LG상사 등이 최근 북한 당국으로부터 기술자 방북을 불허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한다.

바로 이 점이 대우에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북한 당국으로부터 기술자 방북을 승인 받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대우 북한팀장인 박 춘 상무이사는 “남포 공단은 합영사업이다. 이 공단내 3개 공장에서의 생산에 우리도 책임이 있다. 위탁가공무역과는 다르다. 이 합영 사업이 성공하려면 품질 관리를 위한 기술 지도가 필수이다. 이 점 때문에 북한 당국이 우리 기술자들의 방북을 허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대우그룹 기술자 13명의 방북은 사실 북한 당국의 초청에 따른 것이다. 지난 1월 대우그룹 대표단이 방북하고 돌아온 직후 대우측은 이 사실을 통일원에 즉각 보고했다. 통일원이 당시 대우로부터 보고 받은 내용은, 북한 당국이 대우 방북단에게 남포 공단에서 기술을 지도할 기술자 13명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는, 당시로서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당시 통일원은 대우의 보고 내용에 대해 확신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대우가 최근 북한이 발행한 초청장 원본을 통일원에 제출하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북한이 대우그룹 기술자들의 방북을 허용한 배경에는 또 다른 까닭이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 전문가들도 있다. 대한무역진흥공사 홍지선 북한실장은 “대우 기술자들의 방북이 가능한 것은 김일성의 유언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김우중 회장이 남포공단에 투자하겠다고 김일성에게 약속한 때가 92년 1월이다. 그 뒤 김일성은 대우의 북한 투자를 적극 지원하라고 북한 당국에 지시했다. 북한은 김일성의 이러한 유언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한국 기술자들의 북한내 장기 체류에 다소 위험이 따르더라도 대우 기술자 13명을 초청한 것이라는 데 대우도 동의한다. 박 춘 상무는 “남포공단 협력사업이 합의된 이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이를 크게 보도했다. 이로 인해 북한 사람들 대부분이 대우그룹이 한국의 대기업이고 남포에 투자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 기술자들의 방북이 가능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우그룹 기술자들이 과연 한국 국적을 가지고 방북하느냐 하는 세간의 의혹과 관련하여 “북한 사람들이 이미 <로동신문>을 통해 대우의 남포공단 협력사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데 굳이 국적을 바꾸어 방북할 필요는 없다. 홍콩과 같은 제3국 국적으로 방북하는 것은 남북 경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우리 기술자들의 방북이 남북 경협에 새로운 전기가 되기 위해서는 정면 돌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우 기술자들의 방북은 남포 공단이 합영사업이고 김일성의 유언이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대우는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아무리 쌀 제공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호전될 전망이 있더라도 한국 기술자들의 북한내 장기 체류가 간단하게 실현될 것이라는 데는 회의적이다. 남북간 인적 교류는 쌀 제공과 달리 북한의 정치 체제에 여전히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인으로 남기 때문이다.

기술자들의 방북이 이루어지더라도 남포공단이 성공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남포공단내 3개 공장에 공급될 북한의 인력 규모이다. 북한은 남포공단에 적정 수준 이상의 인력을 공급하겠다고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럴 경우 기술자들이 생산 지도를 하여 품질이 향상된다 하더라도 노동자 수가 너무 많아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 획기적 돌파구 열릴 수도

이에 대해 박 춘 상무는 “그 문제는 아직 삼천리총회사와 합의를 보지 못한 부분이다. 어차피 한국 기업으로서는 처음 북한에서 합영사업을 하는 이상 일정 부분 북한측의 사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북한측도 인력 공급이 적정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7월 중순 북경에서 열릴 삼천리총회사와의 협의에서 이 문제가 원만히 타결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대우는 북한 당국이 남포공단 협력사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갖고 있어 무리한 인력 공급을 주장하지는 않으리라고 낙관한다. 대우와의 합영사업이 성공적일 때 외국 기업이 북한에 대한 투자를 서두를 것으로 북한 당국이 인식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많은 외국 기업이 북한에 대한 투자 타당성 조사를 했으나 실제 투자가 이루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 때문에 북한은 남포공단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결국 남포공단이라는 남북간 시범 협력사업의 성공 여부는 대우 기술자들의 북한내 장기 체류와 적정한 인력 공급이 가능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 두 가지가 앞으로 7월20일께 북경에서 있을 대우와 삼천리총회사간 협의에서 타결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만약에 대우의 주장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갈 경우 9월에 남포공단이 가동되는 것을 계기로 남북 경협을 축으로 한 남북 관계는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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