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前 자금부장의 `‘양심 고백’
  • 정리·金芳熙 기자 ()
  • 승인 1996.06.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기업 前 자금관리 책임자 김성길씨 양심 고백
김성길씨(44)는 20여 년간 다섯 재벌 그룹의 계열사 아홉 군데에서 주로 자금관리 책임자로 근무해왔다. 라이프주택·연합전선·동성철강·경남기업·대한조선공사가 그가 몸 담았던 회사들이다. 직장 생활을 그만둔 93년 이후는 주로 지하 경제에 관한 글을 쓰는 데 전념하고 있다. 경영 민주화가 경제계의 화두로 떠오른 요즘은 재벌 총수들이 주식회사를 사기업화한 예를 정리한 <위험한 경영자 길들이기>(가제) 연작을 집필하고 있다. <편집자>

동성철강 손대호 회장으로부터 특명을 받고 법정 관리되고 있던 흥명공업 구미 공장에 10개월간 파견되어 근무하던 나는 92년 말 본사로 돌아왔다. 원대 복귀한 나에게는 흥명공업에서 하루빨리 손을 떼라는 지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흥명공업은 사주가 부도를 내고 해외로 도피해 겉돌고 있는 대형 컨테이너 제조업체였다. 이 회사의 법정관리인으로 지정된 손회장은 마치 이 회사를 자신의 사유물처럼 다루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실컷 쥐어짜다가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자 내던져 버리려는 것이었다. 그 전에 뒷날 대우그룹으로 넘어간 법정관리 업체인 경남금속에 근무하면서 법정관리인이 거액 비자금을 조성한 후 사라진 일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비슷한 비리를 다시 지켜본다는 것이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다.

이사는 총수의 노예, 구타·폭언 감수

그 자리에서 나는 그의 명령을 비교적 충실히 수행했다는 이유로 칭찬을 들었다. “김부장, 고생했다. 그나마 너 같은 놈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말귀도 못 알아듣는 미련한 녀석들과 기업을 꾸려 가자니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구나.”(내 경험으로는 총수들의 칭찬이라는 것이 늘상 이런 식이었다). 당시 본사 경리부장으로 임명된 내게는 해가 바뀌면 이사로 승진시켜 준다는 포상도 함께 주어졌다.

상장 기업의 임원. 모든 직장인들의 꿈을 곧 이루게 될 내게 기쁨에 앞서 공포심이 엄습해 왔다. ‘파리 목숨’ ‘연대 보증’ 등 법인 등기부상 임원에 따라붙는 불길하고 낯익은 어휘들이 떠올랐다. 부장보다 운신할 폭은 좁으면서 총수에게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사표 쓰라’는 말 한마디에 군말 않고 물러서야 하는 것이 이사라는 자리였다. 기획실로부터 뻔질나게 인감과 인감증명서를 요구받는다. 자신도 모르게 주식과 부동산 위장 취득자가 되는 것이 바로 이사이다.

내가 모셨던 임원의 말로 가운데 가장 비참했던 것은 라이프그룹의 한 상무였다. 당시 이 그룹은 총수 형제끼리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있었는데, 총수 겸 회장의 친동생인 부회장은 그를 곱게 보지 않던 터였다. 당시 조내벽 회장이 중동 건설 현장 방문차 비행기 트랩에 오르던 날, 상무를 맞으러 온 차는 평소에 타던 로열프린스가 아니라 낡디 낡은 소형 브리사였다. 알아서 떠나지 않으니까 회사가 아예 승용차를 빼앗아 간 것이었다.

엄연히 법에 주식회사의 독립적인 결정권자로 되어 있으면서도 오너의 영원한 종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사들의 고통에 대해서 말하면서 사내 폭력 문제를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모셨던 한 총수를 생각하면 늘 ‘시계’가 떠오른다. 사업가로서의 수완이나 건설업 경영자 특유의 ‘노가다’ 기질이 대단했던 그는 하급자의 잘못이 발견되면 당사자를 불러앉힌 뒤 꼭 시계를 먼저 풀렀다. 그 다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총무부와 회계과의 동료들이 단지 오해로, 혹은 경영 스타일에 반대하는 의사를 완곡히 표현했다는 이유로 얼굴이 퉁퉁 붓도록 얻어맞았다. 자리에 있던 부사장·전무·상무·이사 등 상근 이사 수십 명과 간부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얻어맞지는 않았으나 그의 개인 소유 부동산 관리 현황에 대한 보안 유지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날아온 유리 재떨이에 맞을 뻔했다. 금융관리 현황 브리핑 때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바람에 폭언을 듣기도 했다. 이 그룹에서는 ‘상소리를 백번 넘게 들어야 임원이 될 수 있다’는 유행어가 떠돌 정도였다.
내가 몸 담았던 회사 가운데 우량 기업으로 알려졌던 연합전선은 진로그룹으로 경영권이 넘어가자마자 부채 비율이 만%를 기록했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 증권감독원의 발표에 따르면, 진로가 경영권을 인수하고 나서 재무 구조가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과거 경영권을 쥐고 있던 총수의 분식 결산이 들통나 그렇게 된 것이다. 내부 감사는 있으나마나한 ‘산지기 감사’에다 외부 감사마저 그 모양이었으니 최대 주주의 손아귀에서 어떻게 회사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이사회와 감사 같은 견제 장치들이 무력화된 주식회사에서 총수들은 회사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원가 누수나 비자금 조성은 그런 대표적인 예다.

라이프그룹의 11개 계열기업군 가운데 공개 상장 법인은 오직 라이프주택뿐이었다. 나머지 비공개 기업 중에 라이프종합상사라는 총수 일가의 개인 출자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서울·경기 지역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대형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전문 유통업체로, 그룹의 주력 업체인 라이프주택에 기생하며 갖가지 묘책으로 수익성을 올리고 있었다. 라이프주택으로부터 헐값에 분양 및 임대 받기, 임차료를 물품 혹은 가공 채권·채무로 상계하기, 공짜로 사무실을 쓰거나 임차 면적 줄이기, 무상으로 인력 지원 받기, 거액 운전자금 대여받기, 비업무용으로 판정난 부동산을 싼값에 사주기 등은 외형상 불법 행위가 아니었다. 오너의 측근 이사들은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개인 기업에게 원가 부담이 되는 요인은 가능하면 라이프주택의 원가로 이전시키는 방법을 강구했고, 라이프종합상사의 물건을 팔아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공개 법인의 살점을 뜯어먹으며 기생하는 비공개 법인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세상에 이미 알려진 계열사뿐만 아니라 전혀 드러나지 않은 은닉 계열사도 상당수 있었다. 상장 기업에 빌붙어 연명하는 대주주의 개인 기업들은 기생충처럼 모기업의 자양분을 공짜로 섭취할 수 있었으며, 방만한 경영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낼 수밖에 없었다.

총수 개인이 기업으로부터 필요한 돈을 짜내 비자금을 조성하는 일은 더욱 쉬웠다. 내가 모셨던 오너 한 분은 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제멋대로 처분해 비자금을 조성해서 수족들에게 주는 촌지로 사용했다. 경비실을 취약하게 만들어 원가가 외부로 새나가도록 방조했으며, 정상적인 회계 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자산 관리·공장 관리로 일관했다. 다른 회사의 법정 관리인을 겸임했던 한 회장은 법정 관리 기간에 기계설비나 특허권은 물론이고 고철·불량품 같은 것까지 비자금 조성 수단으로 활용했다.

총수 위해 회사 돈 빼돌리는 전담 임직원도

그것도 부족해서 ‘주주·임원·종업원 단기 대여금’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돈을 차용해 여러 이사와 직원 명의로 분산시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돈을 은밀히 빼돌리는 전담 임직원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대여금이나 가지급금은 총수 개인의 주식 거래에도 늘상 동원되는 회사측 계정이다.

주주총회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것은 사실 너무 많이 알려져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우그룹이 경영권을 인수한 첫해 경남기업의 주주총회와 진로그룹으로 넘어가기 직전 연합전선의 주주총회 당시 내가 한 차례씩 행사 각본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 이 사실이 훨씬 더 실감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대표이사의 연설문을 다듬었을 뿐만 아니라 총회에 참석해 다른 간부들과 함께 어용성 발언에 열을 올렸었다.

마지막으로 주식회사를 사유물로 만든 총수들의 전횡 가운데 백미 하나. 한 회장은 그룹의 모기업 경영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자신과 일가가 가진 주식에 대해서는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보다 낮은 배당률을 제시하거나 무배당을 의결하도록 한 적도 있다. 뒤로는 계열기업간 내부 거래와 주식 내부자거래, 비자금 조성으로 회사를 거덜내면서도 놀라운 희생 정신을 홍보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진정한 주식회사로 거듭난 후 이런 얘기들을 먼 옛날 얘기처럼 할 수 있을 때가 과연 오기는 올까.
비만형 체질이던 주식과의 한 차장은 늘 ‘얼마나 해 처먹었으면 배가 그렇게 나왔느냐’는 모욕적인 질타를 감수해야만 했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 수억원을 횡령한 공사 담당 부사장을 조용히 퇴임시켰다는 것인데, 회사 내에는 그가 회장의 구린 구석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등기부상의 이사라고 해서 총수의 폭력과 폭언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임원들이 버틴 것은 단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만은 아니었다. 이런 폭압적인 관리 방식에는 늘상 달콤한 회유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폭언이나 폭력이 끝나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내 욕을 먹을 가치도 없는 놈들이 수두룩하다’ ‘너를 아끼기 때문에 그랬다’ 등등. 말의 성찬 끝에는 예외 없이 차를 내오거나 술을 샀으며, 직급에 따라 촌지 봉투도 건네졌다. 회유책의 위력이 대단해서일까. 그렇게 얻어맞고 이튿날 결근한 임원이나 직원은 내 직장 생활 20년을 통틀어 한 사람뿐이었다.

우리 직장 내에서 흔히 ‘인간적 경영’(가부장적 경영)이라는 말로 미화되기도 하는 이런 경영 풍토는 그룹 총수들의 뇌리에 깊이 뿌리 내린 한 가지 생각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이 회사의 주인은 나다’. 그들에게는 주식회사에 투자한 주주들과 돈을 대준 금융기관, 임직원과 소비자 모두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없는 국외자들일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회사의 사실상 최고 의사 결정 기구(법률적으로는 주주총회)인 이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국내에서 이사회는 그룹 총수의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이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거수기 노릇이라도 제대로 해본 이사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회사 등기부상의 이사 가운데 직접 법인용 인감(회사의 한 기관을 상징하는 도장)을 날인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사회에 참석해 찬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고사하고, ‘서면 결의’라는 구실로 회람 돌리는 이사회 결의서에 서명하고 마는 풍토에서 말이다.

한때 이사회 회의록에 서명한 것이 자필이냐 아니냐를 두고 법적 효력 논쟁이 벌어져 회사가 이사들의 자필 서명(흔히 自書라고 함)을 미리 받아두기도 했으나, 이조차도 나중에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물론 금융기관에서는 차입금 起債 결의서 상의 대표이사 서명에 한해 금융기관 종사자 입회 아래 자필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두고 있긴 했다. 그러나 이사들 대부분은 인감도 구경하지 못하고 자서 역시 대필이 대부분이었다. 은행에 제출하는 이사회 결의서의 서명이 자필이라고 위장하기 위해서 직원 중에서 자서 담당을 지정한 회사도 여럿 있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도 라이프주택에 근무할 때 전무의 자서를 전담한 적이 있다. 훗날 퇴임하게 된 이 전무는 ‘내 이름이 들어간 이사회 결의서는 모두 무효’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내가 곁에서 지켜본 한 회장은 어찌나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던지 아예 대표이사 법인 인감과 당좌예금 거래용 인감을 같은 것으로 해놓고 자기가 직접 관리했다. 그것도 회장실에 보관하며 필요할 때마다 꺼내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바지 속 라이터 주머니에 넣고 다녀 실무자들 애를 태웠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도 이사들의 법인 인감은 회사 총무부가 별도 관리하도록 해주었다.

개인 인감의 경우도 다를 바 없었다. 금융기관이 상근 이사의 개인 자격 연대 보증을 요구하는 경우처럼 총수나 회사가 이사들의 인감을 필요로 할 때 즉시 대령하지 못하면 불경죄에 해당했다. 법인 인감은 물론 개인 인감을 맡기는 일이 못미더우면 사직서를 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럴 때마다 이사들은 권한 없고 연대 보증 의무만 있는 처지를 한탄하곤 했다. 그동안 대기업이나 재벌그룹은 부실화하더라도 기업이 공중 분해되어 사라지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점 하나만 믿는 수밖에 없었다. 대우그룹으로 경영권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 표류하던 경남기업의 한 임원도 개인 자격으로 연대 보증을 섰다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자신의 부동산을 가압류 당한 적이 있었다.

산지기·목장 관리인 등이 監事

흔히 이사회·감사·주주총회를 주식회사의 3대 기둥으로 꼽기도 하지만, 모든 결정을 총수가 독단으로 내리는 우리 풍토에서 3대 기구는 그저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내가 근무했던 기업의 등기부상 비상근 감사들은 대개 총수 개인 소유 목장이나 빌딩의 관리인, 총수 일가 선산의 산지기, 시골 친인척, 총수 수족의 부친 등 경영에 문외한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름뿐인 이 감사들은 결산보고서에 어떤 이유로 자기 이름이 올라야 하는지 몰랐고, 1년에 한 차례 주주총회에 참석해 감사보고서나 떠듬떠듬 읽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

내가 몸 담았던 회사들은 모두 1부 종목에 상장된 기업으로 외관상 우량 기업들이었다. 그러나 이 회사들이 당시 숨겨온 누적 결손액은 적게는 몇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 아무리 기업이 재무제표를 조작해 실현되지도 않은 이익을 거짓으로 만들었거나 손실을 대폭 줄이기 위해 있지도 않은 자산을 가공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공인회계사들이 외부 감사를 벌이며 이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공인회계사들이 회사측으로부터 회유 당해 부실한 결산 내용을 눈감아 준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부실 감사 현장을 나는 수도 없이 확인했다. 물론 지조를 지키느라 애를 먹이던 회계사들도 꽤 있었다. 이런 상대를 만나면 주총 개최 시각이 임박해 회사측은 감사보고서 인쇄를 늦추면서까지 ‘한정 의견’을 ‘적정 의견’으로 바꾸려고 눈물겹게 노력하게 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