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재벌 논객 5인방의 ‘요설’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8.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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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차동세·이윤호·최우석·공병호…기업 이익에 집착해 경제 원리 외면
완전한 시장 경제 체제를 구축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가 거세다. 이 상황에서 누가 진정한 시장경제론자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장경제론자라고 자처하는 친재벌 논객들이 주장하는 외환 위기의 원인과 대책이 타당한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을 받는 대표적인 논객은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 차동세 한국개발연구원장,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장, 공병호 자유기업센터 소장 등이다.

“국민과 노동자가 외환 위기 주범” 강변

이 친재벌 논객들은 모두 시장 경제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통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를 철학적 기반으로 삼는다. 통화주의의 기본 명제는, 시장이 자동 조절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밀턴 프리드만 시카고 대학 교수가 주도하는 통화주의의 본질과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무엇보다도 이들의 주장이 통화주의의 기본 명제보다는 재벌의 이해에 따라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4월 차동세 원장이 금리를 낮추어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통화 공급을 늘리고 자본 자유화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들 수 있다. 차원장의 이같은 주장은, 통화주의의 기본 명제를 가장 확실하게 어김과 동시에 그 명제를 지킨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통화주의는 인플레를 막기 위해 통화 공급을 억제해야 하며 자본을 포함한 모든 시장을 개방하고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경련 회장단도 지난 5월 초 차원장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총통화 증가율을 1% 포인트 높일 때마다 물가가 1% 포인트 올라가 오히려 금리를 상승시키는데도 통화 공급을 늘리라는 주장은 잘못이라는 한국은행의 반론이 더 설득력을 얻었다. 그런데도 차원장이나, 시카고 대학에 유학함으로써 통화주의 학풍을 익힌 최종현 전경련 회장이 그같은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은, 친재벌 논객들의 입장이 재벌의 이해에 따라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일부 친재벌 논객들이 재벌이야말로 외환 위기의 주범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워싱턴 포스트>와 같은 외국 언론까지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따른 부실 채권 양산이 외환 위기의 주범이라고 지목하는데도 최우석 소장과 공병호 소장은 수많은 언론 기고에서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공소장은‘우리는 스스로의 허물에 주목하자’면서, 국민의 과소비와 노동자 고임금이 현 위기의 주범이라고 규정했다.
이한구 소장은 외환 위기 책임을 정치권과 행정부에 돌리기는 하지만 재벌책임론을 펴지 않는 점에서 공소장과 마찬가지 입장이다. 두 사람은 금융 개혁의 본질이 재벌의 은행 소유 허용이라는 점에서도 견해가 같다. 다만 이소장이 금융기관의 주인을 찾아 주어야 한다면서 간접적으로 재벌의 은행 소유를 주장하는 반면, 공소장은 재벌의 은행 소유 허용이 금융 개혁의 본질이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사실 이소장이나 공소장이 통화주의를 거론하면서 재벌의 은행 소유를 무조건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데는 나름의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한보그룹 사태에서 입증된 것처럼 재벌에게 은행 소유가 허용되면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私金庫)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재벌의 은행 소유 허용 주장이 원칙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주의에 맞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재벌의 이익을 위한 논리라고 지적한다.

5인방의 논리, 통화주의와는 거리 멀어

그러나 이윤호 원장은 재벌이 외환 위기의 주범임을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그래서 친재벌 논객 중에서 열린 인식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이원장 역시 통화주의의 정통적인 입장에서 벗어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특히 그가 정부로 하여금 부실 기업 정리를 위해 한시적인 특별 조처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게다가 그는 부실 금융기관을 정상화하는 방법으로 국유화와 정부 출자에 의한 국민 부담 등을 제시했다.

이로써 이들은 본질적으로 통화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이들은 통화 공급 확대, 부실 금융기관 국유화, 부실 기업 정리를 위한 특혜 등 정부의 시장 개입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통화주의가 절대 옳은 이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시장이 불완전하다는 전제 아래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지지하는 케인스주의가 미국에서 90년대 들어 부활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사실 이 친재벌 논객들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의 통화주의적 요구들이 한국 경제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수십조 달러에 이르는 초민족적 투기성 자본들의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국제 금융 시장의 신뢰를 얻어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통화기금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앞서의 논객들이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재벌의 이해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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