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평]전문 경영인 체제의 '성공 조건'
  • 金一燮 (삼일회계법인 대표·경영학 박사) ()
  • 승인 199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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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소유 경영과 전문 경영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냐라는 질문을 접하게 된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단순 명료하다. 경영 능력에 문제가 없는 한 소유 경영이 더 좋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소유물일 것이다. 자기 것을 아끼고 잘되게 하려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과 비할 수 없다. 전문 경영은 소유 경영이 한계에 부닥치거나 불가능할 때 대안으로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기업 창업자의 자손 중에서 2대, 3대, 4대까지 계속해서 유능한 경영자가 나올 수 있을까. 한 시대에 어떤 소유 경영자가 성공했다고 해서 인식 체계가변화한 다음 시대에서도 그가 계속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을까. 세계화하고 동시화한 경쟁 시대에서 카리스마적인 소유 경영자의 역량만으로 기업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까. 소유 경영이 전문 경영보다 더 좋다는 일반적 인식 속에서도 이런 몇 가지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소유 경영의 우위는 사업의 특성, 경쟁의 수준, 기술의 발전 속도, 특히 기업의 규모에 따라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기업 정책’도 경영 체제 혁신에 걸림돌

한국 정부의 기업 정책은 너무 많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경제력 집중을 막아야겠고, 기업의 생산성도 올려야겠으며, 공기업의 경우는 민영화를 통하여 주인을 찾아 주어야겠고, 선단식 기업 경영보다는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전문 기업을 육성해야겠다는 목표를 다 이루려는 욕심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 정책의 문제는 경영 체제 또는 기업 지배와 관련돼 있다.

누가 직접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중요한 경영 의사 결정권을 갖느냐에 따라 기업 지배의 주체가 결정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는 경영 대표성의 개념을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이사회 구성 비율’을 들고 있다. 기업 지배권의 원천인 소유권에 대해서는 최대 주주의 지분이 전체 주식의 20%, 또는 10% 미만인가를 기준으로 삼아 소유권의 분산 여부를 파악한다. 한국에서도 주주 총회에서 의안을 99%의 신뢰도로 대주주 1인이 원하는 대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19.5%의 지분이, 90%의 신뢰도로 기업 지배권을 안정적으로 갖기 위해서는 약 12.5%의 지분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한국 기업의 전통적인 경영 체제는 소유 경영 체제이다. 이러한 소유 경영 체제는 결국 전문 경영 체제로 전환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소유 경영자들의 강한 지배 욕구와 혈연 중심 사고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의한 전문 경영 체제가 본격 도입되는 것을 늦추고 있을 뿐이다. 소유 경영 체제의 가장 큰 강점은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바탕으로 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서 나오는 에너지(기업가 정신)와 성취 욕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 경영 체제를 요구하는 사회·경제 환경의 변화에 부응하면서도 소유 경영 체제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경영 체제를 확립하는 일이야말로 한국 기업, 특히 대기업에 부여된 과제이다.

기업 경영력의 핵심은 최고 경영자의 역량과 지도력에 있다. 성공적인 기업 경영을 위해서는 소유주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능력있는 경영자를 선발하는 시스템과 노력, 그리고 전문 경영 체제를 뒷받침할 일련의 장치가 필요하다. 대주주라는 개인 소유주의 역량보다는 대주주가 동원할 수 있는 전문 경영자 집단의 능력이 중요하다.

전문 경영인이 주인 의식이 있는 경영을 하도록 하려면 몇 가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우선 주주협의회와 이사회가 제기능을 해야 한다. 주주들로 하여금 주요 의사 결정 사항을 협의하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이사회는 실질적인 경영 감시 기능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감사의 기능 역시 대폭 강화해야 하며 전문 경영자에 대한 성과 보수 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당 순이익이나 자기자본 이익률 등과 같은 단기 성과보다는 기업의 장기적 성과를 지표로 삼는 성과 보수를 중시해 이들이 이 역할에 봉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문 경영자에 대한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외부 감사인 선임도 빼놓을 수 없다. 감사와 외부 감사인은 상호 업무 연계를 강화해 기업의 경영 내용을 잘 감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실제 소유주(주인)가 아닌 전문 경영자들이 주인 의식을 갖고 경영할 수 있으려면 이들이 권한·책임·성과의 소유권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는 구조와 함께 이들에 대한 감시 기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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