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에 대권 경쟁?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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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 역점사업 삐걱거리자 ‘베트남 카드’로 기선 잡기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과 각 사업부문 회장단이 참석하는 운영위원회는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모임이다. 한달에 한번꼴로 모여 부문별 현안을 챙기는 이 자리에서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SY로 불리기도 한다)은 독특한 화법을 구사한다. 예를 들자면, 다른 계열사에 대해서는 “전자는 요즘 어때요?” 하는 식으로 말을 풀어나가지만,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만은 “우리 자동차는 이래요”라는 식이다. 자동차사업 앞에 늘 따라붙는 `‘우리’라는 말에, 정세영 회장의 의지와 고민이 담겨 있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자동차 사업 둘러싸고 오래전부터 신경전

정세영 회장은 맏형인 정주영 명예회장을 이어 그룹회장 직을 승계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가 계속 현대그룹의 총수로 남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자식들에게 그룹 소유권과 경영권을 완벽하게 이양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룹 전체를 경영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 다. 이른바 과도체제다. 만일 그가 더 욕심을 낸다면 불 같은 성격인 형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란 점은, 누구보다도 정세영 회장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기가 키워놓은 자동차사업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과도체제라 하더라도 지금 자신의 몫을 챙겨 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 의식이 있을 법하다. 자기 아들인 정몽규씨(33)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이나, 그의 지분율을 높인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정세영 회장의 지분과 정몽규 부사장의 지분을 합치면 4.34%로, 개인으로서는 정세영 부자(父子)가 최대 주주다.

그렇기는 하지만 자동차 사업이 정세영 회장의 몫으로 쉽게 확정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현대자동차가 현대그룹의 주력 기업으로 떠오른 데다가, 현대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 중공업을 비롯한 현대 계열사들의 현대자동차에 대한 지분은 정세영 회장 부자의 지분을 무색케 한다.

무엇보다도 현대그룹을 사실상 분할통치하고 있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아들들이 자동차 부문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태세여서 상황은 간단치가 않다. 특히 정명예회장의 실질적인 장남으로, 현대정공·현대강관·현대자동차써비스·현대산업개발·인천개발 같은 주요 계열사를 거느린 정몽구 현대정공 회장(그룹 내에서는 흔히 MK로 불린다)은 자동차 사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자동차의 판매권을 갖고 있는 현대자동차써비스를 경영하고 있으며, 이미 승합차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정공을 통해 승용차시장에 들어가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이 회사는 승용차로 분류될 수도 있는 미니밴인 샤리오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또 현대자동차에 앞서 자동차 할부금융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삼촌과 조카 사이인 두 사람의 실제 의중과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현대그룹 경영권의 향배를 자동차 사업을 둘러싼 두 사람의 신경전의 결과로 판독하려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최근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겉으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두 사람의 역학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년간 계속돼 온 MK의 독주에 대한 정세영 회장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시각이다. 이런 주장은 MK가 지난 1년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추진해온 사업들이 약간씩 흔들리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몽구 회장이 역점을 두어온 일로는 제철사업과 중국 진출 계획을 들 수 있다. 제철사업은 이른바 선대(先代)의 숙원 사업으로 이미 70년대 말부터 정주영 당시 그룹회장은 제철소 건립을 추진해 왔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해 7월 독자적으로 제철소 건설 계획을 추진하면서, 정세영 그룹회장과 미묘한 마찰음을 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당시 아들의 사업 추진을 사후에 인정했었다.

또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의 중국 진출을 앞장서 지휘해 왔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진출이 지지부진했던 데 비해, 그는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써비스가 중국에 상륙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중국 북경에 경현(당초 북경현대라는 이름이었으나, 현대라는 이름이 상호로 등록돼 있어 이름을 바꿨다) 자동차 애프터서비스 공장을 차린 것을 비롯해 컨테이너 공장과 파이프 조립공장을 설립했고, 갤로퍼와 철도 차량의 수출 인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정세영 회장 남방정책도 조카 의식한 것”

홀로서기를 위한 그의 노력은 최근 등소평 사망이 임박하면서 중국 정정이 불안해지고, 또 제철사업 진출 전망도 불투명해지면서 제동이 걸렸다. 중국에 진출하는 대개의 국내 기업들이 그렇듯이 현대도 중국 진출을 위해 줄 대기에 바빴었다. 정몽구 회장이 공들여 구축한 중국 라인은 대개 북경 시를 권력 기반으로 한 인물들이다. 화교 출신으로 정회장의 경복고 후배이기도 한 설영흥 고문이 다리 역할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은 강택민 주석이 주도한 권력 투쟁의 와중에서 권력을 잃었거나 상실할 전망이어서 MK계열 기업의 중국 관련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그룹 관계자들은 본다.

반면 정세영 회장은 그룹 내에 베트남 열기를 고조시키는 데 애쓰고 있다.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그의 베트남 진출 전략을 정주영 명예회장이 옛 소련과 북한 시장을 공략하려 했던 사실에 비추어 `‘남방정책’이라고 부른다.

현대그룹이 베트남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4월 방한한 도 무오이 베트남 서기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현대그룹에 대해 선박 수리 및 조선소 건설과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계획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은 요청을 받은 이후 사업 타당성을 검토해 왔는데, 늦어도 7월 이전에 정세영 그룹회장이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때 정회장은 베트남 정부가 요청한 사업 외에도 자동차 사업에 대해 협의하게 된다. 현지의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거나, 안될 경우에는 직접 공장을 세우는 문제를 협의하게 되리라는 것이 그룹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현대그룹에서 일고 있는 이와 같은 베트남 열기는 다른 그룹들의 열기가 시들해진 이후의 때늦은 것이라서, 그룹 안팎에서는 정회장의 남방정책이 다분히 MK를 의식한 것이라고 본다. 정세영 회장은 한때 정몽구 회장의 몫이던 중국 진출 문제에도 손대기 시작했다. 그는 국제언론인협회(IPI) 서울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곽초인 신화사통신 사장을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다. 이 행사는 당초 간단한 산업시찰로 예정돼 있었으나 정세영 회장의 지시로 의전이 격상됐고, 만찬 행사도 열렸다.

정몽구 회장이 강력히 추진해온 제철사업도 성사 여부가 아직은 불투명한 상태다. 현대그룹의 제철사업 진출에 대해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정작 그룹 내에서부터 일이 꼬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제철사업 추진 주체가 바뀐 데다가, 당초 제철소 건립지로 계획했던 부산 지역 상공인들이 삼성의 경우와는 달리 일관 제철소 건설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산 녹산공단에 압연 공장을 세운다는 계획 외에 현대그룹이 당초 목표로 했던 용광로를 갖춘 일관 제철소 건설 문제와 관련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정세영 그룹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처지가 크게 엇갈릴 수 있는 부분은 베트남에 제철소를 짓는 문제다. 현대그룹은 공식적으로 정세영 회장의 베트남 방문 때 이 문제를 거론하게 될지 확인해 주지 않고 있으나 제철소 건립 문제를 협의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만일 베트남측과 제철소 건설 문제를 협의하게 된다면, 국내에 제철소를 건설하겠다는 정몽구 회장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게 된다. 국내외 두 곳에 제철소를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아래 기사 참조).

MK의 홀로서기와 SY의 자기 몫 챙기기는 이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지경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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