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제국 설계자` LG전자 백우현 사장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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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끼리 세계 1등 다툴 것”
백우현 LG전자 사장은 LG전자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이다. 적어도 연간 1조원 이상을 쓴다. 그는 2천5백여 명의 연구원을 이끌고 LG전자의 연구·개발을 총지휘하는 CTO(기술 담당 최고책임자)이다.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회사일수록 CTO의 역할은 막중하다. 기술의 미래를 제대로 읽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회사의 흥망성쇠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20여 년 다닌 미국 회사 생활을 접고 1998년 기술 사령탑이 된 후 그는 LG전자의 ‘승부 품목’인 디지털 텔레비전과 PDP(디스플레이),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휴대전화 등을 세계 정상급 수준에 올려놓았다. 6월17일 ‘디지털 TV 아버지’로 불리는 그를 만나 LG전자의 기술 전략을 들어보았다. LG전자의 비전은 ‘2010년 내, 세계 3대 전자·정보통신 회사’인데, 그의 꿈도 같았다.

LG전자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LG전자의 연구 개발 인력은 7천명(총 국내 인력 2만8천명)이 넘는다. 여기서 사업부에 속한 인력을 빼고 CTO가 직접 관장하는 ‘코퍼레이트(본사) 연구소’ 인력만 2천5백명쯤 된다. 매년 연구개발 투자에 1조원 이상을 투입하니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올해도 1조2천억원을 투입한다.

올해 승부수를 두고 있는 사업이 무엇인가?
글로벌 톱3 비전이 실현될 때 매출액이 천억달러쯤 될 것 같다. 목표에 가까이 가기 위해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PDP 같은 디스플레이와 고화질(HD) 디지털 텔레비전, 이동단말 분야가 성장 동력이다. 특히 이동단말 분야는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할일이 너무 많다. 올해 연구 인력을 가장 많이 늘리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동단말 분야는 휴대전화가 핵심인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카메라폰과 MP3폰, PDA폰에 이어 TV를 보고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휴대전화도 개발되었다. 반대로 휴대 텔레비전에 통화 기능을 넣은 제품도 나온다. 기술이 융복합화·쌍방향화하면서 어느 것이 주력인지 모를 복합 제품이 나오고 있다. 디스플레이와 이동단말에다 우리가 가진 모든 기기를 통합해 연결하는 홈네트워크 사업 또한 주요한 성장 동력이다.

2010년 내 톱3가 비전이라면 제쳐야 하는 국내외 기업이 적지 않을터인데, 그야말로 야심찬 목표 아닌가?
우선 손꼽아도 20개쯤 된다. 소니·마쓰시타·히타치·도시바· JVC 같은 일본 전기·전자업체에다 노키아·에릭슨·모토로라 같은 정보 통신 강자들이 있다.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있다. 분야 별로 꼽으면 더 많다. 가령 디스플레이 분야 최대 경쟁자는 삼성SDI와 마쓰시타이며 노키아는 휴대전화 부문의 위력적 존재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한다고 전제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 한국 기업끼리 1~2등을 다투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성전자를 뜻하는가? 이 회사의 기술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인) ‘2004 CES’에 가보니 출품 제품도 그렇고 부스 등 모든 규모 면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국 업체는)게임이 안된다. 삼성전자? 여러 가지 면에서 우수한 기업이다. 그런데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디지털 TV는 우리가 넘버원(세계 제일)이다.

CTO로서 LG전자의 기술 수준을 냉정히 평가해 달라.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여길지 몰라도, 디지털 텔레비전 칩 기술은 자신있게 월드 베스트(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삼성·마쓰시타·소니 등 경쟁 회사가 많지만, 자기가 개발한 칩으로 세트(제품)까지 만드는 회사는 한두개 정도다. 대개 칩은 (테라로직 같은) 전문 회사에서 사다 쓴다. 디지털 TV 칩은 집적회로(IC)인데, 이 집적회로에 과거에 상상도 못하던 일을 해내는 기술이 들어 있다. 칩에는 오디오·비디오를 구동시키는 칩과 전파가 디지털로 날아오면 여기서 데이터를 뽑아내는 수신 칩 두 가지가 있는데, 특히 우리의 수신 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기술이 5세대까지 가 있다. 디지털 텔레비전 전송방식 갖고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 간에) 논란을 벌이고 잇는데, 우리가 가진 것 같고 빨리 앞서가야지 중간에 뭐 새로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소비자도 손해고 국가 경쟁력도 약화시킨다.

소프트웨어·디스플레이 등 다른 분야는 어떤가?
소프트웨어 기술도 상당히 앞서가고 있다. (1996년) 미국 뉴저지에 트라이베니(Triveni) 디지털 연구소를 세워 디지털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디스플레이 분야는 세계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PDP는 25년전 일본이 처음 개발했다. LG는 10년이 채 안되지만, 성능과 크기, 가격 면에서 PDP (생산) 기술이 넘버원 수준이라고 자평한다. LCD도 (일본 업체 다 따라잡고) LG필립스LCD와 삼성SDI가 각각 20% 대 시장을 점유하며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지 않나. 이동단말 분야의 멀티 미디어 기술은 상당히 앞서 있다. 넘버원에 가깝다. 이 분야는 노키아·에릭슨·모토로라 같은 세계 굴지의 경쟁자들이 몰려 있지만, 맞붙어 싸울 태세가 되어 있다. 통신 칩 개발 분야는 할일이 많다. CDMA 칩은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 회사) 퀄컴에 의존하지 않았나. GSM폰 칩도 유럽 회사들이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통신 칩 개발에 승산이 있는가?
이것은 전략적 이슈다. 논쟁거리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한 회사가 다 잘할 수는 없다. 요즘은 특히 기업이 성공하려면 모든 프로세스가 베스트여야 살아 남는다. 핵심 부품을 갖고 최고의 생산 기술과 시설에서 제품을 생산해 최고의 영업력을 통해 팔아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베스트가 아니면 아웃소싱(외주)해야 한다. 자체 개발할 것과 외주할 것을 가려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LG전자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보나?
LG전자는 전통적으로 에어콘·냉장고 따위 백색 가전을 포함한 홈어플라이언스 분야가 강하다. 여기에 디지털 텔레비전과 DVD 플레이어 같은 멀티미디어 분야, 휴대전화와 통신장비 같은 통신 분야가 세계 최고에 가까이 가 있다. 시장은 ‘멀티 플레이어’ 기업을 요구한다. 21세기는 여러 사업 분야를 모두 잘해야 성공하는 시대다. 가령 노키아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35%를 차지하는 절대 강자이지만, 하나만 잘하는 전문 업체는 미래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LG는 노키아가 갖지 못한 디스플레이 기술이 있다. 멀티미디어 기술도 상당히 축적했다. 아예 모바일 멀티미디어 연구소를 따로 차려 핵심기술 개발에 역점을 둔 결과다. 심지어 우리의 백색 가전 기술도 휴대전화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술의 융·복합화가 앞으로 더욱 진전될 것이기 때문에 LG같은 복합 기술을 가진 회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본다. 여기에 구성원 전체가 위기 의식을 잃지 않아야 한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이 늘 ‘영원한 일등은 없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약점이 궁금하다.
약점이 없는 회사가 있겠나. 해결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요즘 내 걱정은 최근 2년 동안 공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연구 개발 능력이 2~3배 늘어나야 한다. 한국이 휴대전화와 디지털 TV 분야에서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던 원천은 우수한 인재였다. 두뇌 공급원이 적아진다는 것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서울대 공대나 한국과학기술원에 강의하러 다니면서 이공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아예 회사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 연세대 등에서 한학기 강의를 맡아왔다).

공학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차원도 있겠지만, 우수 인력 유치가 대학 강단에 서는 가장 큰 목적 아니었는가?
나름으로 (인재 유치에) 노력했지만, 아직 미흡하다. 뭔가 새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머리 좋은 학생들이 공대에 많이 진학해야 한다. 요즘은 워낙 기술이 복잡해지고 컨셉(개념)이 달라졌다. 가령 기술 개발에 전자공학 지식이 필요없는 경우도 많다. LG전자 경우 휴대폰 개발에 3천명이 매달려 있는데, 이 가운데 2천명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이 사람들은 수학을 잘하지 전자공학은 아예 모른다. 머리 좋은 특히 수학적 두뇌가 뛰어난 인재가 기업에 더 많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이 공대 안오고 의대 가면 의술은 좋아질지 몰라도 국가 경쟁력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해외 유학생들이 한국 기업을 선호한다는 최근 소식은 고무적이다. 물론 외국 기술자 스카우트에도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국내 엔지니어 같겠나. LG인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키워 놓으면 자기네 나라 회사를 가지 않겠나 하는 걱정도 있다. 아무래도 한국인이 회사에 로열티(충성심)가 있다.

한국 엔지니어들의 수준을 어떻게 보는가.
휴대전화가 좋은 예인데 개발 능력이 뛰어나다. 이용자 환경(유저 인터페이스)이나 멀티 미디어 기술, 디자인 개발 능력 등이 우수하다. 휴대전화에는 기본적인 통신 소프트웨어 외에도 이용자가 어떻게 쓸 거냐, 음성 인식·화상 통신인가 등에 따라 많은 응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제조업체가 요구하는 특수한 소프트웨어들도 있다. 한국 사람은 정말 탤런트(재능)가 있다. 머리가 좋고 손재주가 있다. 여기다 열심히 일한다. LG전자가 세계 3대 전자·정보통신 기업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우수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갈길이 멀지만, 이것은 또 사업 기회가 많다는 뜻도 된다.
한국 기업과 산업의 전반적인 기술 수준을 평가해달라.
기술 전반에 대해 논평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보 통신 기술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텔레비전·홈네트워킹·휴대전화· D램 반도체 등이 대표적이다. 컴퓨터용 CPU(중앙연산처리장치) 같은 주문형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등은 우리가 아직 도전하고 따라잡아야 할 영역일 것이다.

CTO는 어떤 자리인가?
농담인데, 미국에서 디지털 TV를 개발할 때 돈잃는 세 가지 방법을 들은 적이 있다. 세가지 방법이란 이성(여자 혹은 남자), 도박, 기술인데, 첫 번째 것은 가장 기분 좋게 돈을 잃는다. 도박은 가장 빠르게 돈을 잃는 방법이다. 가진 것을 풀베팅해 한번에 날릴 수 있으니까. 기술은 가장 확실하게 돈을 잃는 방법이다. CTO는 돈을 잃지 않게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돈을 벌게 해야 한다. CTO는 당장 돈을 잃는 것처럼 비치지만 장기적으로 돈을 벌게 해주는 기술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촉수가 발달해야 한다. 미래 기술 흐름을 예민하게 읽어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기술만 안다고 되지 않는다. 사업 감각이 있어야 한다. 물론 롱텀(장기) 기술에만 집중하면 회사를 꾸려갈 수 없다. 이미 돈버는 기술을 꽤 보유하면서 이 수익을 원천으로 미래 기술에 승부수를 두어야 한다. 이 비율을 잘 조정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CTO는 기술이 회사의 성장 동력이 되도록 CEO를 보좌하는 사람이다.

백사장은 어렸을 때 자동차나 기차를 보면 괜히 흥분했고 뭔가 만드는 것이 그냥 좋았다고 한다. 기적 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싶어 기찻길 옆으로 이사가자고 어머니를 조를 정도였다. 중3 때 과학반에 들어가 라디오와 전축 등을 조립하면서 엔지니어 꿈을 키운다. 고교(경기고)때 청계천 전자 부품 상가를 찾는 일을 밥먹는 일만큼 열심히했다. 공부를 뒷전에 놓았으니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고3 첫 모의고사 성적은 60명 가운데 52등이어서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을 호출했다.

이러다 대학 문턱도 못넘지 싶어 고3 백우현은 머리를 싸매고 공부에 돌입한다. 성적은 크게 향상되었지만, 담임 선생님은 원서를 써주지 않으셨다. 그가 원하는 전자공학과는 택도 없다며 버티셨다. 한참 고민하다가 전기공학과를 가겠다고 했지만, 그 역시 선생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막판 성적이 오른 학생들이 백이면 백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원서 마감 2시간 전에 선생님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 때 같이 원서를 들고 대학으로 뛰었던 10명 가운데 생존자는 그 혼자였다. 선생님의 예감이 거의 적중했던 것이다.

그는 이공계 인기가 시들한 것이 몹시 걱정스럽지만, 한가지 좋은 점은 있다고 했다. 공학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 학생은 대개 다른 공부는 관심이 없거나 잘못해 종합 성적이라는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공대에는 골고루 공부를 잘하는 보편적 인재보다 진짜 공학을 좋아하고 수리 능력이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미국에서 경험했던 이공계의 10년 주기설을 말한다. 이공계 인력이 대우받으면 이공계로 학생이 확 쏠리다가 인력이 과다 공급되어 처우가 나빠지면 다시 인기가 시들해지는 현상이 거의 10년 주기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공대 선호도가 70년대와 80년대 절정에 달했다가 90년대 중반 들어 서서히 인기가 사그라들었고 2000년 들어 본격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부문도 그렇지만, 한국은 특히 쏠림 현상이 심해 걱정은 걱정이라고 말한다.

1978년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공학 박사 학위(통신·제어시스템)를 받은 백사장은 학교가 아닌 기업을 선택했다. 기술을 개발해 삶에 긴요하게 쓰이는 제품을 만드는 응용 분야에 관심이 컸던 것이다. 그가 선택한 첫 기업은 군용 통신 회사인 링커비트(Linkabit)였다. 그는 이 회사에서 군용으로 개발한 통신 기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일을 하다가 비디오에 활용한 ‘비디오사이퍼’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사업이 커져서 하나의 부문이 되었는데, 이 부문을 GI(제너럴 인스투루먼트)가 인수하면서 그는 GI 사람이 되었고 기술담당 부사장에까지 오른다. 여기서 현재 디지털케이블 텔레비전의 표준 시스템이 된 ‘디지 사이퍼' 개발에 참여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GI에서 퀄컴으로 옮기게 된 것은 퀼컴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어윈 제콥스가 링커비트의 창업자였던 인연 때문이었다. 퀄컴에서 그는 디지털 고화질 텔레비전 응용 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다. GI와 퀄컴에서의 이런 기술 개발이 후에 백사장에게 ’디지털 TV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갖게 했다. 1998년 미국 최대 신문인 < USA 투데이 >가 붙여준 별명이었는데, 당시 그를 소개한 기사가 그의 집무실에 딸린 접견실 벽에 붙어 있었다.

미국에서 CTO로 상종가를 치던 1998년 그는 LG전자로 이직을 결심했다. 20여 년 동안의 미국 회사 생활을 접는 일이었고 연봉이 절반 이하로 깎이는 일이었으니 결단이랄 수 있었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느냐, 애국심의 발로였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애국심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을 좇았다. 미국에서 나름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LG전자의 제의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일(업무와 권한)이 크고 다이내믹했다. 그게 좋아서 왔다. 어쩌면 역설인지도 모르겠다. 일은 훨씬 많아졌지만 보수는 훨씬 적어졌으니까.”

LG전자 연구원들은 그를 ‘최고 테스트 책임자(Cheif Testing Officer)’라는 또 다른 CTO로 부른다. 개발 완료 단계에 이른 거의 모든 시제품을 집무실이나 집에 가져가 직접 써보며 소비자 처지에서 제품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요즘 ‘달랑 하나 들고 다니는’ PDA폰(SC-8000)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의 이동 전화이자 음악 친구(MP3)이며 비서 구실(PDA)을 훌륭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그가 집에서 테스트해 수차례 개발실로 돌려보냈다. 이용자 환경과 MP3 기능(음질·음량)을 개선하고 소프트웨어의 안정성을 높이는 등 기술적인 보완을 걸쳐 지난 4월 시장에 내보낸 것이다. 이 제품을 내보면서 그는 ‘뜰’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실제로 주문이 밀려들지만 평택 공장에서 미처 만들지 못해 공급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의 성공 예감이 적중한 셈이다.

그는 PDA폰과 비슷한 시기 셋톱박스의 ‘얼리어답터’로도 활약했다. 이 셋톱박스는 디지털 텔레비전용인데, 녹화 기능을 부여하기 위해 컴퓨터에나 넣던 하드 드라이브를 장착한 특별한 제품이다. 녹화 화질과 이용자 환경에서 그는 역시 버그를 잡아냈고 개발자에게 개선을 명령했다. 프로그램 가이드까지 소비자가 알기쉽게 고쳤다. 올 초 나온 LG전자의 야심작 50인치 PDP 텔레비전과 지난해 출시한 인터넷 냉장고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그의 테스트 목록에는 국내외 다른 회사 제품도 적지 않다. ’적‘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처럼 그의 집에는 그가 테스트해야 할 제품이 넘쳐 난다. 여기다 무선통신 안테나와 와이어까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부인이 무덤 속에 기계와 안테나를 넣어 주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30년 경력의 무선통신 마니아이다.

그는 대개 밤 9~10시경 귀가해 시제품 테스트를 하는데, 귀가 전까지 숨돌릴 틈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가령 6월23일 그는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디지털 텔레비전 전략회의와 신기술 관련 회의, 특허 관련 회의 등 여러 종류의 회의를 주재했다. 이후 연구소 한곳을 방문했고 외부 인사와 저녁을 했다. 연구소 방문은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그의 일정 목록에 오르는데 진행되는 개발 프로젝트와 인력 동향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조직 관리 목적도 있다.

CTO로서 그가 가장 진력하는 것은 ‘CTO 인덱스 리뷰’ 일정이다. 그가 LG전자 발전에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기술 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연구원들과 매우 상세한 수준까지 논의한다. 이 인덱스 리뷰를 통해 노력과 관심을 기울인 기술이 성공적으로 제품으로 개발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인덱스 리뷰는 백사장이 CTO로서 가장 즐기는 일이자 존재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가 가장 닮고 싶어하는 CTO는 미국 반도체 회사 인텔의 팻 젤싱거(Pat Gelsinger). 그는 고졸로 입사해 학사와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CTO가 되기 위해 투지와 열정을 불태운 집념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백사장은 그의 집념이 잘 드러난 저서 <가족과 신념, 일에의 균형(Balancing your family, faith & work)>을 주위 엔지니어나 공학자에 권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백사장의 꿈은 LG전자를 2010년 내에 글로벌 톱 3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이 꿈은 회사의 비전이기도 하다. 여기에 꿈을 하나 더 보탠다. 디지털 텔레비전을 한국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이 마치 CD 틀듯이 즐기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게 하는 것이다. ‘디지털 TV의 아버지’ 다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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