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경제] IMF를 어찌할 것인가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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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금융 기구를 개편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지만 문제는 실현 가능성 여부다. IMF를 발판으로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미국이 기득권을 포기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 기구 개편 논의
제2의 국제 금융 기구 구성은 미지수

클린턴 행정부의 핵심 경제 브레인인 프레드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소장이 미국을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통화기금 구성안을 내놓은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버그스텐 소장은 또 만약 아시아통화기금을 만들게 된다면 ‘기금은 조성하되 사용 결정은 국제통화기금과 협의해야 한다’는 절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방안이 오는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담에서 어느 정도 논의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7월 유엔개발계획(UNDP) 의장이 제안한 WFO (World Financial Organization)와 같은 국제 금융 기구 구성안도 대안으로 제기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설치되어 있는 임시 방편적인 대책위원회로는 개발 도상국들의 이해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간 자금 흐름을 늘 감시하고 민간 자본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기구로서 세계무역기구(WTO)를 모델로 하는 별도의 국제 금융 기구 구성안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백가쟁명 식으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현 가능성. 과연 국제통화기금을 발판으로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 대한 경제 외교의 주도권을 일본에 넘겨주게 될지도 모를 이 방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으로서는 17% 지분만 쥐고 있으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효자 상품’ 격인 이 거대한 국제 금융기관에 대한 기득권을 포기할 리가 없다. ‘대안부재론’속에 국제 금융 기구 개편 논의는 아직 미로를 헤매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신브레튼우즈 체제라는 표현은 너무 섣부르다는 지적이다. 팥소가 빠진 찐빵처럼 알맹이가 없는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직은 자금을 지원하는 나라와 지원받는 나라가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동남아에서 불붙기 시작한 외환 위기의 불똥이 전세계로 번진 상황에서 열린 올해 국제통화기금(IMF) - 세계은행(IBRD) 연차 총회는 어느 해보다 큰 관심을 끌었다. 이번 회의의 핵심은 5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이른바 브레튼우즈 체제에 메스를 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보유 기금이 바닥 나고 구조 조정 프로그램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는 마당에 국제통화기금이 이번 총회를 계기로 어떤 개혁 방안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문만 요란한 잔치였다는 것이 이번 연차 총회를 지켜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만병통치약이 쏟아졌지만 진단만 있고 처방은 하나도 없었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그동안 제기되어 왔던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을 비롯한 세계은행 그룹에 대한 비판론이 국제통화기금의 구조 조정 프로그램으로 극심한 경기 위축을 겪고 있는 금융 위기 국가들에게 불필요한 기대감을 부추겨 왔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은행 그룹에서 10년간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했던 조윤제 교수(서강대·경제학)는 “각국의 경제 관료들이 국제통화기금을 개혁할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진전이다. 브레튼우즈 체제 50주년을 맞았던 94년 당시 국제통화기금 체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을 때만 해도 선진국들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라고 말했다.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폐막 연설에서 △건전한 금융 시스템을 확보하고 △민간 부문 참여를 보장하는 등 5개 항의 의제를 확인하면서 국제통화기금의 투명성 제고를 가장 강조했다.

미국 하원이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추가 자금 출연에 반대하면서 이사회 희의록 공개 등을 요구해 왔던 점을 감안할 때, 바닥 난 국제통화기금의 금고로 돈을 끌어들이는 데 이번 총회가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내 주요 여론도 국제통화기금에 미국이 먼저 추가 자금을 내놓지 않고서는 아시아에 대한 수출이 살아날 길이 없다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유엔 총회라 불리는 국제통화기금 - 세계은행 연차 총회에서 개혁 공감대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체제 개편으로 연결되리라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실상 국제통화기금이 브레튼우즈 체제 출범 당시부터 개발 도상국들의 경제 정책에 깊숙이 개입한 것은 아니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국제통화기금은 오히려 서방 자본주의 국가 간의 이해 조정에 치중한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IMF 기능 강화가 한국에 이익”

채무국에 대한 개입 정책이 본격화한 것은 82년 멕시코의 외채 위기가 심해지면서부터였다. 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속출하자 채권국 정부 및 민간 은행을 대신해 국제통화기금이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 때 동원된 것이 이른바 구조 조정 프로그램(Structural Adjustment Program : SAP). 국제통화기금이 무리한 긴축 정책을 강요해 대규모 실업 사태를 불러일으키는 등 개도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비판의 도마에 오른 것도 이 구조 조정 프로그램 탓이다.

구조 조정 과정에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에도 국제통화기금 체제 개편 문제는 관심이 큰 사안이다. 이와 관련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왕윤종 세계경제실장은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기능을 강화하는 쪽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또 신규 차입 협정이 승인되었기 때문에 이 조처가 발효되면 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자금이 확보된다”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 체제 개편 논의에 총대를 메고 나서 보았자 이득을 얻을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편 별도의 국제 금융 기구를 구성하자는 안과 관련해 관심을 모으는 것이 지역 협력 기금 설치 방안이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차 총회에서 일본이 제안했던 아시아통화기금(AMF) 구성안도 또 한번 논의의 중심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아시아 지역 환율 안정을 위해 국제통화기금과는 별도로 아시아통화기금을 만들자는 일본의 구상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가 최근 들어 일본이 ‘3백억 달러 출자’방침을 밝히면서 급속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차입협정 등을 통해 일단 범세계적인 협조 체제가 마련되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지역 협력 구도를 만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역내에서 발생하는 외환 위기의 책임을 모두 뒤집어쓴다는 인식을 선진국들에게 심어 줄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윤제 교수는 아시아통화기금 구상이 빠질 수도 있는 ‘도덕적 해이’ 현상을 우려했다. 국제통화기금 자금보다도 신속하게 지원될 수 있는 보호막이 이중으로 만들어질 경우 각국 정부의 거시 경제 정책이나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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