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접수 작전 개시한 유학생 이재용씨
  • 장영희 기자(ijazz@e-sisa.co.kr) ()
  • 승인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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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삼성’ 발진… 금융 관련 비즈니스에도 깊은 관심
한재미 유학생이 이처럼 언론의 집중 표적이 된 적이 있었을까. 물론 이 사람은 단순 유학생(미국 하버드 대학 비즈니스스쿨 박사 과정)은 아니다. 한국 최대 재벌인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며, 경영권을 승계할 후계자로 꼽히는 인물. 그런 점에서 이재용씨(32)에게는 세간의 흥미를 끌 만한 기본 요소가 있다. 그러나 그에게 온통 이목이 쏠리는 까닭이 재벌 2세여서만은 아니다. 그가 여느 기업인이나 정치인 뺨치는‘뉴스 메이커’이기 때문이다.

KBS는 7월16일 방영된 <추적 60분>에서 ‘삼성과 유학생 이재용-한국 제1의 세금 없는 승계 작전’이라는 제목으로 이씨를 도마 위에 올렸다. 담당 프로듀서인 배대준씨는 “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삼성측이 이건희 회장의 ‘윤허’를 받고 취재에 응함으로써 경영권 승계 과정의 의혹을 모두 파헤쳤다고 자부한다”라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 5월 또 다른 공중파 방송에서도 역시 같은 건으로 질타당했다. MBC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이 한국 재벌과 족벌 언론의 폐해를 고발하면서 삼성의 변칙 증여 건을 집중 부각한 것이다.

가뜩이나 벼르고 있는 언론에 삼성측은 또다시 빌미를 제공했다. 이씨가 삼성전자 우리 사주(1백29주)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재용이라는 동명 이인이 많아 빚어진 전산 착오였다고 초동 대응했다가 이씨가 1998년부터 삼성전자재팬 부장(입사는 1991년말)이었다는 사실을 캐묻자, 삼성전자에는 해외 유학하는 직원이 많다는 식의 궁색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우리 사주 소동은 삼성전자가 이씨의 주식을 수거함으로써 사그라지고 있지만, 이씨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이씨가 인터넷 사업을 통해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 관찰 포인트는 지난 5월 출범한 ‘e삼성’. 이씨가 자본금 100억원인 e삼성의 최대 주주(60%)인 데다 나머지 지분도 우호 지분이어서 사실상 이씨 개인 회사나 마찬가지다.
이씨 “대주주일 뿐” 경영 일선 진출설 부인

삼성 인터넷 사업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삼성은 국내는 e삼성이 해외는 e삼성인터내셔널이 맡아 기존 삼성 계열사와의 상승 효과를 도모하면서 인터넷 비즈니스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 e삼성인터내셔널은 자본금이 4백억원으로 역시 이씨가 60%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에 세워진 웹 에이전시 회사 오픈타이드USA(자본금 1백32억원)가 e삼성의 자회사쯤으로 해석되는 것도 이씨가 대주주인 e삼성인터내셔널이 이 회사의 최대 주주(70%)이기 때문이다. 오픈타이드코리아(자본금 60억원)는 또 오픈타이드USA가 최대 주주(60%)여서 지분 구조가 얽혀 있다.

재계는 이씨가 인터넷 사업을 총괄하기 위해 머지 않아 경영 일선에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당사자인 이씨는 부인하고 있다. 최근 이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주주 역할만 할 뿐 유니텔이나 삼성SDS 사장이 된다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것보다 전문 경영인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라며 경영 일선 진출설을 전면 부인했다. 삼성 인터넷 태스크포스팀(총 12명)을 이끌고 있는 구조조정본부 신응환 이사도 “(이씨는) 대주주일 뿐이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인터넷 비즈니스를 연구했기 때문에 감각이 뛰어나 (e삼성 사업에) 조언을 하는 정도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씨 전면 등장이 시간 문제라고 보았다. 삼성은 이미 이재용 체제로 전환하고 있지만 변칙 증여 시비 등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연착륙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측은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e삼성이 엄청난 사업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시큐아이닷컴·올앳·웰시아닷컴·이누카·크레듀·오픈타이드 같은 인터넷 기업을 선보인 데 이어 연내 수십개 기업을 더 띄울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인터넷 비즈니스 가운데에서도 특히 금융 포털 사이트에 관심이 많다. 이미 선보인 웰시아닷컴이 좋은 예. 그는 미국 최대 증권회사인 메릴린치가 오프라인 배경이 없는 찰스 스왑이라는 인터넷 증권사에 시가 총액 면에서 추월당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삼성의 금융 회사들이 갖고 있는 브랜드 파워·영업 조직·관리 능력 등이 인터넷이 출현함으로써 흔들릴 수도 있다고 판단해 인터넷 비즈니스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일시 귀국한 이씨는 삼성물산·삼성SDS 등 인터넷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는 관계사와 금융회사 관계자를 잇달아 면담했다. 이씨가 인터넷 못지 않게 금융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추측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씨는 삼성에버랜드 최대 주주로서 삼성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생명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등 삼성의 주요 제조업체 대주주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금융회사 지분을 갖고 있다.
삼성투신 운용에도 개인 지분 7.72% 보유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이씨가 삼성투신운용의 지분을 7.72%나 갖고 있다는 사실. 그는 1998년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삼성투신운용의 지분을 15% 사들였다(매입 금액 45억원). 지금은 한빛은행으로 합병된 한일·상업 은행과 대구은행에서 각각 5%씩 사들였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삼성투신운용이 세 은행에 파킹(되살 것을 약속하고 잠시 맡겨 놓음)한 주식을 되찾아 이씨에게 넘긴 것으로 본다. 이씨가 자기 돈으로 지분을 매입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삼성투신운용이라는 회사가 사들였다면 시비가 붙을 수밖에 없다.

삼성투신운용은 지난해 말 삼성생명투신운용과 삼성투신운용이 합병해 생긴 회사인데, 참여연대는 합병 비율에 대해서도 의혹을 갖고 있다. 1998년 갑을그룹으로부터 인수한 삼성생명투신(옛 동양투신)은 우량한 회사인데 부실한 회사인 삼성투신과 같은 비율(1 대 1)로 합병함으로써 이씨의 지분율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했다는 의혹이다. 물론 이씨는 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지분율이 15%에서 현재 7%대로 떨어졌지만, 합병 비율이 적정했다면 지분율이 더 떨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3월 삼성과 한판 대결을 선언한 참여연대는 6월23일 삼성전자 전환사채 발행 무효확인청구소송 2심에서 패소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비록 졌지만 판결문을 보면 법원이 참여연대측 주장을 상당히 인정하고 있어 승산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진행중인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무효 소송도 이씨를 괴롭힐 것이 틀림없다. 이뿐 아니다. 참여연대는 8∼9월께 삼성전자 장부 열람권을 행사할 작정이며, 8월중 방침이 결정될 삼성생명 상장 건에 대해서도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이재용씨는 조용히 지내고 싶겠지만, 그에 대한 뉴스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시민단체와 언론이 그에게 집요하게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인터넷 사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후 실력자가 된 그가 기존 오프라인 기업에서 경영권을 행사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씨로서는 참여연대의 추적과 언론의 관심이라는 이중고를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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