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딜러들의 피 말리는 ‘정보 전쟁’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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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부자 명단’은 그들 손에 있다
수입 자동차가 차지하는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2.5% 가량. 올해 5월까지 국내에서 팔린 자동차 100대 가운데 2.5대가 수입차인 셈이다. 금액 기준 시장 점유율은 이미 5%를 넘어섰다.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2~3배 비싸기 때문이다. 1987년 1월 첫 수입 당시 국내 소비자의 썰렁했던 반응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다. 이기준 저먼모터스 사장(BMW 공식 딜러)은 “과거 수입 고급차를 사놓고 한 달에 2~3일 타고 차고에만 넣어두었던 시절이 있었다. 갖고 나가면 외부 시선이 따가웠고, 어디 함부로 세워 놓았다가는 못으로 긁히는 등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7억원이 넘는 마이바흐를 탄다는 것이 흥밋거리가 될 정도로 소비자 의식이 변했다”라고 말했다.

변화를 이끈 주역은 수입차 딜러다. 내로라 하는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국내에 차를 들여오면 딜러들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커미션(수수료)을 챙긴다. 제조업체 국내 자회사들이 마케팅과 광고를 활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데 반해 딜러들은 국내 소비자를 만나고 잠재 고객을 발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국내 수입차 소비자가 얼굴을 맞대는 이는 제조업체 자회사 직원이 아니라 수입차 판매업체에서 일하는 딜러인 셈이다. 따라서 수입 자동차 시장 판도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 가운데 하나가 딜러의 역량이다. 류인하 한성자동차 사장(메르세데스 벤츠 최대 딜러)은 “국내 수입차 시장을 이만큼 성장시키는 데 딜러가 절반 넘는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수입차 딜러들은 국내 자동차 업체에서 영업 업무를 오랫동안 맡아온 베테랑들이 이끌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 영업직원 가운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이들은 수입차 업체의 스카우트 대상이다. 이기준 저먼모터스 사장이 대표 사례다. 이사장은 대우차 영업사원 2천명 가운데 영업실적 2위를 차지했는가 하면, 1990년 한진중공업 볼보 사업팀 영업담당으로 옮겨서는 하루에 20대를 판 적이 있는 자동차 업계의 살아 있는 신화다. 1996년 BMW 딜러가 되어서도 수원 지역을 담당하던 저먼모터스를 서울까지 진출시키고 BMW 최대 딜러인 코오롱HBC와 판매 1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뛰어난 딜러는 시장 정보를 충분히 수집한 후 잠재 고객을 추려내는 능력을 발휘한다. 수입차 업체가 광고와 마케팅을 총괄하고 영업 전략을 세우면 딜러들은 그에 맞추어 지역 마케팅과 고객 대면 접촉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잠재 고객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수입차의 잠재 고객들은 소득과 학력 수준이 높은 중소기업 최고경영자와 전문직 종사자다. 딜러들은 잠재 고객의 친목단체나 이익단체가 벌이는 갖가지 행사를 지원한다. 현금이나 제품을 지원하는 대가로 받는 것은 회원 정보다. 이재영 렉서스D&T 사장(렉서스 공식 딜러)은 “치과의사협회 행사,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세미나, 변호사단체 주관 행사를 지원하면서 잠재 고객들을 상대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소속 회원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라고 말했다.
딜러들은 마케팅 타깃인 잠재 고객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정보 전쟁을 벌인다. 딜러가 잠재 고객 데이터 베이스를 만드는 방법은 신출귀몰하다. 경쟁 업체보다 더 나은 고객 명단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떠한 대가도 치를 태세다. 인맥·학맥 등 연고가 총동원되고 금융기관·국세청·학교가 가지고 있는 정보까지 확보하고자 동분서주한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한 딜러는 “입수 경위는 밝힐 수 없지만 월 소득세 100만원 이상 납부자 명단이 담긴 국세청 자료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수입차 시장을 삼분한 BMW·렉서스·메르세데스 벤츠의 딜러가 가진 고객 데이터 베이스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소득이 높은 계층이라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프리미엄 카(premium car)’이다 보니 웬만한 소득 수준으로는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딜러마다 보유한 고객 데이터 베이스가 겹치는 사례가 많지만 고객들의 브랜드에 대한 취향은 약간씩 다르다.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 1위 브랜드인 BMW는 상대적으로 20~30대가 선호한다. BMW는 반응 속도가 빠르고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경쾌하다는 평을 받는다. 이와 달리 메르세데스 벤츠는 중후하고 고전적인 디자인이 돋보여 50~60대가 좋아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국내 대기업 오너들은 메르세데스 벤츠 S600을 탄다. 오랫동안 국내에서 고급차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벤츠의 브랜드 파워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시장 1위 자리를 놓고 BMW와 각축하는 렉서스는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CEO가 좋아한다. 프리미엄 카치고는 싸고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를 모는 기성 세대와 차별화를 꾀하는 이들이 선호한다.

딜러들은 1만~4만 명에 이르는 고객 명단을 갖고 있다. 고객을 갖가지 항목으로 철저히 분석한 후 타깃 마케팅을 벌인다. 이재영 사장은 렉서스 출시 초기 ‘귀족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사장은 “소득과 지위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 잠재 고객들을 좁혀 가야 마케팅 활동의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라고 말했다. 귀족 마케팅의 대표 사례가 명품 브랜드와 함께 벌이는 제휴 마케팅이다. 살바토레 페레가모·에르메스·조지오 아르마니·시슬리 같은 명품 브랜드와 공동으로 판촉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국내 유명 백화점 할인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딜러마다 용어에 차이는 있지만 타깃 마케팅에 주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기준 사장은 “BMW 운전자는 성공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남 땅값 상승으로 졸지에 부자가 되거나 벤처 열풍으로 어린 나이에 갑부가 된 이들이 사는 차가 BMW라는 경쟁 업체의 비판에 대해서도 이사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사장은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에 이른 사람들은 자기 소득에 맞는 차를 탈 자격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수입차 딜러들이 벌이는 갖가지 마케팅 활동의 귀착지는 전시장(쇼룸)이다. 제휴 마케팅이든 다이렉트메일링(DM)이든 영업 활동에 의해 수입차에 관심을 갖게 된 고객들이 최종 구매 결정을 내리는 곳이 전시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입차 딜러들은 지금 전시장(쇼룸)을 늘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개성 넘치는 4~5층 건물을 고급 마감재로 꾸미고 골프 연습장, 자동 안마기를 갖추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저먼모터스 전시장은 인테리어 비용만 20억원 넘게 들였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렉서스D&T도 대치동에 최고급 전시장을 개장했다. 이곳에 수입 자동차 딜러들이 잇달아 전시장을 개장하면서 수입차 거리가 형성될 정도이다.

딜러들이 판매 못지 않게 관심을 두는 영역은 사후관리(A/S)다. 고객 속성상 ‘세컨드 카(second car)’를 살 수 있는 재력이 있고, 차량을 업그레이드할 때 다시 고객으로 끌어들이려면 사후관리는 필수다. 더욱이 사후관리가 엉망이라는 입소문이 나면 판매에 치명적이다. 차량을 판매한 딜러가 해당 고객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친분을 쌓아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기준 사장은 “과거 수입차가 고장이 나면 부품을 외국에서 들여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고 수리비가 비싸다는 것이 수입차 판매에 걸림돌이 되었으나, 지금은 수입차 업체와 딜러들이 경쟁적으로 대규모 A/S센터를 갖추어 사후관리에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BMW코리아는 딜러와 손잡고 전국 29곳에 사후관리 센터를 운영한다. 저먼모터스는 서울과 수원에 4곳을 운영하고, 분당에 첨단 A/S센터를 8월 개장을 목표로 짓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도 한성자동차·더클래스효성를 비롯해 11개 사 딜러와 함께 전국 주요 도시에 서비스센터를 열었다.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도요타 코리아도 렉서스D&T를 비롯한 딜러와 손잡고 서비스센터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출시되는 국산차에는 브레이크 잠김 방지장치(ABS)나 에어백 같은 안전장치가 탑재되어 있다. 수입차 딜러들은 수입차가 초래한 변화라고 주장한다. 수입차가 선보이기 전까지 국산차의 안전 메커니즘은 충격흡수식 조향장치, 안전벨트, 범퍼에 머물렀다. 수입차 딜러들은 국산차 품질 향상에 기여하고 국내 소비자의 효용을 높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최근 일본 혼다와 프랑스 푸조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수입차 시장은 경쟁이 격심해지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마이바흐, BMW의 롤스로이스 팬텀에 이어 세계 3대 명품 차인 벤틀리까지 국내 시장에 들어올 채비를 갖추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은 세계 자동차 업체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다. 그 최전선에는 딜러들이 있고, 여전히 국내 소비자들이 만나는 이들은 딜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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