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 주인 뉴브리지의 정체
  • 런던·김용기 편집위원 ()
  • 승인 2001.01.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욕심 많은 '벌처 펀드'의 매입 과정 의혹…금융당국, 은행 운영 방식·내용 엄격히 살펴야

사진설명 새 출발 : 1999년 9월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털이 인수한 제일은행.


<시사저널>은 외국 기업에 넘어간 제일은행의 국제 신인도가당초 기대와 달리 너무낮고, 또 정부의 금융 시장 안정 조처에 대해 제일은행 이사회와 은행장이 이질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 주목해 제일은행을 인수한 미국계 기업 뉴브리지 캐피털(뉴브리지)을 집중 추적해 왔다.


뉴브리지 추천 이사진 대부분 '비전문가'

취재를 통해 뉴브리지가 태국 등아시아 시장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은행 매입협상을 벌인 '벌처(Vulture:욕심 많고 무자비한 대머리독수리라는 뜻) 펀드'이며, 뉴브리지가 추천한 제일은행 이사진 대부분이예금 은행전문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또한 지난해 제일은행이뉴욕지점을 철수한 것이미국 은행법에의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을 확인했다. 제일은행과 뉴브리지의 오너이자 제일은행 사외이사인리처드블럼이 미국3선 상원의원의남편이며,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이 상원의원이 중국 투자에영향력을 미쳤을 가능성을 조사했던 사실도 알아냈다.

<시사저널>은 벌처 펀드인 뉴브리지의 제일은행 매입 과정과 제일은행 이사회의은행 지배 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아닌지를금융 당국이 엄격히 조사할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다.이는 제일은행이 10조원이넘는 국민세금을 빨아들인 금융기관이라는점이외에도, 신용 창출 기능을 가진 시중 은행이 오로지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쪽에 좌지우지되는 일은 어느나라에서든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제일은행의 국제 신용도는 여전히 국내 주요시중 은행 중중하위권에 머물러있다. 우량 은행들의 국제 단기 금융시장 차입금리가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0.55%인 반면제일은행은 아직도 리보+0.70%를지급하면서 외화 자금을 차입하고 있다.크레디트 라인으로 불리는 국제 은행들의 외화자금 공여 한도또한 회복되지 않았다. 우량은행들과는 비교할 것도 없고 한빛은행에 비해도 훨씬적은 규모의 외화 자금만을 국제 은행들로부터 공여받고 있다. 외국 자본에매각됨으로써 국제 신인도가높아지고 우량 은행이 될 것이라던당초 기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매각 협상 때로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뉴브리지의모습은 의도적으로 과장되어 전달되었다. 따라서 뉴브리지의 '정치적 영향력'이정부의 합리적 결정을 막았을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당초 예상과 달리 국제초우량 은행인 HSBC(홍콩 상하이 은행)가 배제되고 외국 자본이기는 하나 벌처펀드인 뉴브리지가제일은행을아주 싼 가격으로 매입했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뉴브리지가 매입한이후 제일은행의 공공성이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뉴브리지는제일은행의 단기 수익률 상승에 최우선 목표를 둔것으로 파악된다. 어찌 보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의미국 지점을 철수시킨 이유라든가, 수익률상승이 국제 합병·매수(M&A) 시장에서 자산 매각가치의 척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시중 은행으로서 제일은행의 공공성과 지배 주주인 뉴브리지의 이해는애당초 양립할 수 없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부가 제일은행을 뉴브리지로 넘기는과정에서 몇 차례 곡절이있었다. 우선 세계 초대형 은행인 영국계 HSBC가 탈락하고 뉴브리지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등장한 1998년12월 말 상황이 석연치 않다. 세계 80여 나라에서 은행영업을 하는HSBC 지주 회사(HSBC Holdings)는 HSBC를 포함한 자회사의 지분을최소한 70% 이상,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100%소유하고 있다.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정부가 1998년 8월께 구두로 매각 의사를 분명히 한후 협상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내세운 '지분 문제 때문에 뉴브리지로'라는설명은 지금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또한이후 풋백 옵션 기간을 연장하고 부실 여신을 판정하는 데 국제 기준을 적용한 것은,서울은행을 매각하기 위해 HSBC와 맺은 투자의향서 내용과 비교해 보아도 훨씬 불리했다.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도 외국 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도저히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뉴브리지가 제출했지만 결국 협상이타결되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뉴브리지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과 관련해<시사저널>은 간접적이나마단서를 찾을수 있었다. 그것은 뉴브리지의오너인 리처드 블럼이 미국상원의원 다이언 파인스타인(민주당·캘리포니아 주)의 남편이고, 백만장자인 블럼 씨의 중국 투자에 대해미국 연방수사국이주목한 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블럼 씨가 부인의 정치적 지위를 비즈니스에 활용하고 있다는의혹은 2000년 10월 미국 선거과정에서 미국 언론에 의해 제기되었다.<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는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이중국에 대한 무역 최혜국대우를 추진하는 동안, 블럼 씨는 뉴브리지 미국본사와 뉴브리지아시아를 통해 중국 국영기업 지분을 가진 건설 및 인터넷 회사 들에 수백만 달러를투자했다고 보도했다.

부인의 정치적 지위를 이용했다는비즈니스의혹은 1994년의<로스앤젤레스 타임스>, 1997년 3월 26일자<월스트리트 저널>, 1997년 3월28일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보도를 통해 그 이전에도 제기되었다. 특히1997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연방수사국은 '중국이 불법적정치 헌금을 통해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국회의원 6명 중 1명'으로 파인스타인을 지목했다.


은행법 규제 회피하려 뉴욕지점 철수?

블럼 씨의 부인인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최근까지도 상원 외교위원회에 소속되어있으면서 중국과 북한 문제에 강한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며, 지난번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초기에 고어 민주당 후보의 유력한 러닝메이트로 지목되어 온 현직 거물 정치인이다. 그리고 리처드 블럼 씨가 민주당의 유력한자금 후원자라는 점에서 그 자신의 정치적동원력도 상당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의혹에도 불구하고파인스타인 의원이 정치 헌금을 받았다는증거는 포착되지 않았다. 다만그녀의 남편이중국 최대금융회사인 국영'중국 국제무역투자공사'와 긴밀한 사업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확인되었다.

아무튼 블럼 씨는 제일은행 매각협상이 벌어지던 1998년 말부터2000년 초반에서울과뉴욕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두 차례만난 적이있고, 협상 과정에서몇 차례나 재경부장관과금감위원장을 만났다. 또한 실체가 드러나지는않았지만 뉴브리지측은 양측의 의견 충돌로 인해 1999년 본 협상이 타결될 전망이 어둡던 때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한국의 신인도가 크게 훼손될 것이다'라는문건을 청와대로 보내 물의를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한국 정부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뉴브리지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자신을 과대 포장하려고 노력한 것은 분명하다.뉴브리지라는 이름은 당시 한국인에게 매우 낯설었다.그러나 '뉴브리지가 미국 거대 회사인 제너럴일렉트릭의 금융 자회사인 GE 캐피털과 투자 컨소시엄을 형성한다'는 말 때문에생소한 이미지는 상당히 불식될 수 있었다. 정부가 최근 대외에 공표한 <공적자금 백서>에도 1998년 말 상황을 '미국의 대형 투자기관인 뉴브리지 캐피털을 주축으로 하는 투자 컨소시엄과 제일은행매각에 관한 주요 조건에합의하고 양해각서를교환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GE 캐피털과의 컨소시엄이라는 것은애당초 없었다.뉴브리지아시아라는 회사가아시아의 부실 자산을 겨냥해 모집한 1998년도의 뉴브리지 캐피털 아시아펀드II의 자금이 제일은행 매입 자금으로활용된 것으로알려졌고, 뉴브리지 캐피털과 GE 캐피털은 무관하다.

뉴브리지는 애당초 매각 협상 과정에서 제일은행 뉴욕 현지법인을인수 대상에서배제했고, 1999년 9월 투자약정서가 체결되자 제일은행 뉴욕지점의 자산 3천80억원을 예금보험공사에 매각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 미국 은행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민간 투자회사가 해외 투자를 통해 은행의 지배 주주가되고 그 은행이다시미국 내에서 은행영업을 하게될 경우에는, 은행 지주 회사를 설립해 그회사가 은행이라는 자회사와 투자회사라는 자회사를 분리 지배해야 한다. 또한그 지주회사는은행 업무와 관련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로부터 감독을 받아야 한다.

미국은 원래부터 글라스-스티걸 법으로 알려진 은행법 제 20조부칙에 상업 은행과투자 은행 사이에 벽을 세워 상호업무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했었다. 이 조항은 계속 완화되어 오다가 1999년 11월 폐지되었다. 그러나 지주 회사를 통해 은행과 투자 회사가별개로 존재해야 하며, 그 지주 회사가 중앙 은행 등의 엄중한 감독을 받는다는조항은 지금도 유효하다이 규제 조항을 남겨둔 것은, 투자회사의 목표와 시중 은행의 목표가 다를 수 있고, 특히 은행은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감독 당국으로부터 엄중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은행이 뉴욕에 지점을갖지 않는다는것은국제 영업이나 무역 금융이라는 전쟁터에서 '8시간' 동안 싸우지 않겠는다는 말과 같다. 국제단기 금융 시장은 시차 때문에 싱가포르·홍콩에서 열리기 시작해 런던을 거쳐뉴욕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뉴브리지가필요한 자금을동원하고 무역 금융을 중개하기위한 8시간의 교두보를 스스로 없애버렸다는 것은 국제 영업을 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뉴브리지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등 감독기관의 감독을 회피하기위해 제일은행 뉴욕지점을 철수했을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제일은행의 경우금융 시장 안정과 국민 경제 발전에 기여해야하는 은행 업무의 공공성은 부차적인것이 되고오로지지배 주주의 편협한 이익이 최우선으로 관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윌프레드 호리에 행장이 과거 수석부행장으로근무했다는미국 어소시에이트 퍼스트 캐피털은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의 단기금융 자회사였다. 포드는1998년 상반기에 이 회사를 상장한 후 시티 그룹에 팔았는데, 이회사는 신용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높은 이율의 이자를받고 돈을빌려주는 일로 유명했다. 특히 주택 금융과 관련해 이 회사는 호리에 행장이 수석부행장으로 재임하던 1999년 소비자단체들로부터 지탄을받았다. 때문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2000년 9월7일자 기사를 통해 '투자분석가들에게는 침을 고이게하고 소비자들에게는이를 갈게 하는 회사'라고 평했다.

이 회사는 주택금융 외에도대학생들에게신용카드를 갖도록 권유하는 방법 등으로 지난 10년간 매년 23%가 넘는 수익증가율을 기록해 왔다. '미국 공공이익연구 그룹' 관계자는이 회사를 '고리대금업을 해 돈을 많이 벌었고그래서 시티 그룹이사기를 원하는 회사'라고평했다.

이런 배경을 종합해 보면 호리에행장이 취임 초 '관치 금융'에서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순수하게 시장 발전을 위해 관의 부당한 개입을 받지 않으려는의미로만 해석하기어렵다. 지배 주주에의해 은행이 장악되어있고,그 지배 주주가 단기간에 은행가치를 상승시켜 재판매하려 한다면 이는 시중은행의 공공성과 충돌할 것이뻔하다. 소액지분 소각을요구해 상장을 폐지시키고, 51%를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49% 권리를모두 이관받아 전적으로 의결권을행사하며, 자기들이 내세운 이사를 임면하는 데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매각 협상 내용도 사적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을 통해 공공 이익을 지켜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매각 협상 과정과 지난 1년 간의 제일은행 운영을 세밀히 살펴봄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또 그래야만 현재 투자회사인 칼라일 그룹이 지배 주주로 되어 미국 지점을 철수하고 있는 한미은행이 제2의제일은행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