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오너십 강화
  • 장영희 기자 (jjang@e-sisa.co.kr)
  • 승인 2001.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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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 '친정 체제 구축' 본격 가동…SK 씨앤씨 발판, 그룹 지배 채비

사진설명 '안성맞춤 파트너' : 신년 교례회에 참석한 그룹 대표자 손길승 회장(왼쪽)과 오너인 최태원 회장.

SK그룹만큼 2001년을 행복하게 맞은 재벌도 없을 것이다. SK는 지난해 그야말로 '떴다.' 지난 12월15일 IMT 2000(차세대 영상 이동통신) 사업의 비동기 사업권을 딴 것은 SK의 돌풍을예고하는 대표적 사례.상당수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을 추격할잠재력 있는재벌로 SK를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약진하는 재벌 SK를 대표하는인물은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손길승회장이다. 그는 그룹 회장이자 SK텔레콤 대표이사회장 직함을 갖고 있는데, 선대회장인 최종현 회장 사후인 1998년 9월최회장의 유족에 의해그룹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SK사람들은, 국내에서 대표적 전문 경영인으로 꼽히는 손회장이 그룹의 모든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그룹을 대표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손회장이 오너가 아니라는 점에서 결국 언젠가는 오너가 그룹 회장에옹립될 것이라는 것이 SK그룹에 대한 세간의 지배적 시각이다. 고 최종현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SK(주) 회장이 그룹을 공식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연말 이런 관측을현실로 앞당기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두 가지중요한 시도가 있었다.우선 인사.그룹의 세축인 SK(주)·SK텔레콤·SK글로벌에서 선대회장 사람들인 황두열·조정남·김승정 사장이 부회장으로 물러앉았다. 대신 유승렬·표문수 부사장이 각각 SK(주)와 SK텔레콤 사령탑에 올랐다. 물론 세 사람이 실권을 갖는대표이사 부회장이라는 점에서 '노련한부회장과 젊은 사장의공동 경영 체제'라는그룹측의 설명이 일리는
있다.


눈길 끈 연말 인사와 SK(주) 지분 변동

하지만 대부분의 재계 관계자들은 이번 인사의 무게 중심이 최태원 회장의 친정 체제 구축에 맞추어졌다고 본다.최회장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측근 인사와 가족 들이 중용되어 경영일선에 나섰기 때문이다. 유사장과표사장, 최재원 텔레콤 부사장(전략본부장), 최창원글로벌 부사장(기획조정실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중 유사장 외에는 최회장과 혈연 관계가 있다.표사장은 최회장의 고종사촌형이고 최재원부사장은 친동생이다. 최창원 부사장은 사촌동생(최종현 회장의 형이자 SK창업자인 고 최종건 회장의 셋째 아들). SK 사람들이 '패밀리'라고 부르는 오너 가족은 더 있지만 오너 지위를 갖는 이는 최회장과 재원, 창원씨뿐이다.

SK가 최회장 오너십 강화에본격 나섰다는확연한 징후는 더 있다. 인사 3일 전에 이루어진 (주)SK의 지분 변동 건은 단연 압권이었다.SK그룹이 궁극적으로 미국제너럴일렉트릭처럼 사업 지주 회사로 만들려는 SK(주)는 지금도 지주 회사 성격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텔레콤과 글로벌이라는 SK 간판회사들의 최대주주로서 각각 18.48%, 39.16% 지분을 갖고 있다. SK해운의 최대 주주(34.4%) 도 SK(주)다.

시스템 통합(SI)업체인SK씨앤씨는 지난 12월12일 SK(주)전환사채 1천4백억원어치의 전환 청구권을 행사해모두 주식으로바꾸었다. 이로써 단번에 SK(주) 지분 9.3%를 확보해
사실상 최대 주주로 떠올랐다.현재 SK(주)의 최대 주주는 12.48%를 갖고 있는SK글로벌이지만, 이 회사는SK(주)와 상호출자 문제로 얽혀 있다. 출자 해소 방식은 올 3월 말까지 어느 한쪽이 상대방지분을 정리하면 되지만, 글로벌이 SK(주) 지분을 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매출액3천6백억원(1999년)인 SK씨앤씨라는 비상장 회사가사실상 최회장개인 회사나 다름없다는사실이다.최회장 자신이 49%, 가족지분까지 포함하면59.5% 지분을갖고 있는 이 회사가그룹 지주 회사성격을갖는 SK(주)의 사실상최대 주주가 되었다는 사실은 곧 최회장이SK(주)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말과 다름없다. 결국 최회장은 1991년 단돈 2백37억원을 투입한SK씨앤씨(자본금 4백83억원)를 지렛대로 삼아 자산 규모 40조8천억원(2000년 4월 기준)에, 사실상 재계서열 3위인 SK그룹 전체를 지배할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이 거래에 대한 증권가의 반응은물론 긍정적이지 않다.한 증권사애널리스트는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비상장사를 통해 일거에 그룹 지주 회사 성격을 갖는 회사를 지배해 그룹 경영권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사실상삼성그룹의경영권 승계 방법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삼성그룹후계자 이재용씨가 에버랜드라는 비상장사 지분을 헐값에 대량 취득함으로써 지주 회사성격을 갖는삼성생명에 영향력을 갖게 되었고 결국 그룹전체를 지배하게 된 삼성의 '세습 모델'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증권사의 애널리스트도"삼성·현대·LG처럼 SK를 시장이 아직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오너십 강화를 위한 대주주와 계열사간 지분 변동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만약 명백히 대주주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거래가 일어난다면 시장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다. SK(주)가 지주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얽히고 설킨 계열사간지분 구조를 정리할 수밖에 없어 예사롭지않은 거래가 일어날 가능성이높다고 보는것이다. SK의지배 구조를 볼 때 계열사 지분을 합치면 최회장이 당장 경영권에 위협을 느낄수준은 아니다. 개인지분이 미미한것은 사실이다.SK(주) 개인지분은 0.12%에불과하며, 텔레콤주식은 단 100주를 갖고있다. 그래서 지분율은 0%. 오너십에 불안을 느낄 만한 정황인것이다.


삼성 세습 모델과 비슷…참여연대, 일전 준비

최회장은 대한텔레콤 주식일부 반환건을 계기로 참여연대와 우호적 관계에 있었으나 올해 양상은 사뭇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과 관련한 변칙 거래는 참여연대의최대 관심사항이고, 장하성 경제민주화위원장(고려대교수)이 올 3월주총에서 삼성전자·현대중공업과 함께 SK텔레콤을 주 표적 회사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사실 SK텔레콤의대주주 거래 건은 지난 연말사외이사들이 문제를제기했다. 사외이사들은 SK(주)가 텔레콤의최대 주주이므로 텔레콤에 대한 최회장의 영향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으며텔레콤과 씨앤씨의내부 거래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판단한 것이다. 결국 이사회에서는내부 거래를 철저히 감독하겠다는 것으로 일단 봉합했지만, 주주총회에서 참여연대와의 한판 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룹측은 부인하지만,지난연말의 인사나지분 변동이 최회장 옹립을 위한전초전 성격을 띠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시간 문제라고 보는 재계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30일 최회장은 이례적으로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손길승 그룹 회장 체제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회장은이 과정에서 계열사들이 독립해 그룹이 해체될 수있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SK의 지배 구조가 다른 그룹과 달라 보이는것은 사실이다.손회장의말을 빌리면,현재SK의 지휘 구조는 젊은 오너 2세들과 전문 경영인이 파트너십을 구성해 기업 가치를 올려가는 모델이다. 그룹 이노종전무(홍보실장)도"SK의 전문 경영인은 오너의 오너십을 강화하고 경영 능력을 키워줄 책무가있으며 오너는 전문 경영인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도록 협조하는 파트너 관계가 일찌감치 자리잡았다"라고 설명했다.

최태원 회장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했다. 손회장은그에게 '안성맞춤의 파트너'인지도 모른다. 올해매출 60조원을 꿈꾸는 기업군을 지휘할 전문 경영인으로도 오너로도 확실한입지를 다지기위해서는 시간과 든든한 기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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