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건설, 회생의 동아줄 잡을까
  • 장영희 기자 (jjang@e-sisa.co.kr)
  • 승인 2001.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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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 재조사 결과에 존폐 달려…'리비아 공사'도 중요 변수

서울 서소문동 동아건설 사옥 어디에서도 건설회사다운 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해외 공사 담당 임원인 배국철 상무보는 핏기조차 없어 보였다. 그는 리비아 공사에 청춘을 바친 엔지니어 출신. 한창 팔팔하던 30대 중반부터 지난해 12월 말 귀국하기까지 17년 동안 리비아 공사 현장과 애환을 같이해온 그는 요즘 이렇게 허망하게 직업적 인생을 마감해야 하느냐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

그처럼 느끼는 임직원이 동아건설에 한둘이 아닐 것이다. 회사가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느냐 법정관리를 통해 회생의 길로 접어드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2월9일 동아는 서울지법 파산부가 자기네에게 파산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고 분식 결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진 신고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파산 결정을 모면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이로써 동아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벌었지만, 이것이 새로운 파장을 불러들였다. 금융감독원이 2월14일 분식 회계 규명을 위한 특별 감리에 착수한 것이다. 법원도 동아에 분식 자료와 회계법인의 자술서를 제출하라면서,'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분식 관련자를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동아는 관련 자료를 15일 법원에 냈다.

사실 동아에서 분식 결산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리 새롭거나 놀랄 일은 아니다. 1999년 당시 고병우 회장이 동아가 수년간 분식 결산을 해 왔다며, 숨겨진 부채가 1조7천억원이나 더 있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1998년 말 유성용 전 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에도 분식 사실이 거론되었다. 분식 결산 여부는 동아의 재무제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1998년 결산 과정에서 9천2백37억원 가량의 숨겨진 부채를 한꺼번에 특별 손실로 털어버렸던 것이다(당기순손실 1조 3천7백억원).

그런데도 분식 사실을 새롭게 쟁점화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여기에 동아의 생사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회사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법원이 실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으로 하여금 재조사하게 할 가능성이 커졌다. 삼일회계법인은 2월3일 법원에 동아의 계속 기업 가치가 청산했을 때의 기업 가치보다 2천억원 가량 낮다는 실사 보고서를 제출했었다. 반면 동아측은 4천7백억원의 가공 매출이 매출 발생후 돈이 들어오는 회수율을 낮추고 이것이 계속 가치를 떨어뜨렸으므로, 과다 계상된 매출액을 빼면 앞으로 계속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것이 재조사의 결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건설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원석 전 회장, 다시 궁지 몰려


동아가 분식했다는 사실은 당시 회계 감사를 맡았던 안건회계법인 등에도 불똥이 튈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불길에 가장 크게 휩싸일 이는 최원석 전 회장이다. 최씨가 분식 회계가 이루어진 기간에 최고경영자였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동아가 살기 위해 옛 오너를 사지에 몰아넣은 격이다"라고 논평했다. 금감원의 감리 결과에 따라 최씨는 네 번째로 검찰 문턱을 넘어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1945년 아버지 최준문 전 회장이 세운 동아를 34세이던 1977년에 물려받은 최씨는 드물게 수성에 성공한 2세 경영인으로 꼽혀 왔다. 그는 경영권을 이어받을 당시 100억원대였던 동아를 1990년대 중반 2조원대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의 경영 수완이 극적으로 발휘된 것은 '20세기의 대역사' 리비아 대수로 공사 입찰 건이었다. 특유의 저돌성과 추진력으로 그는 리비아로부터 '빅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승승장구하던 최씨가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무리한 사업 확장과 건설공사 수주 과정에서의 비리 때문이었다. 최씨는 1994년, 1995년, 1998년 한국전력 뇌물 수수 사건과 노태우 비자금 사건, 백남치 뇌물 수수 사건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1994년에 터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최씨는 물론 동아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 왔다. 재시공 등으로 사태 수습에 나서 겨우 파문이 가라앉을 만한 시점에 최씨는 또 다른 패착을 두고 말았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적극 나섰던 것이다. 퇴직한 한 임원은 "최회장은 국내 도급 순위를 중시해 수익이 나지 않는 수주전에도 저돌적으로 뛰어들었다. 가뜩이나 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현금 흐름까지 묶어 버렸다"라고 비판했다.

이후 IMF 경제 위기가 엄습하자 동아는 제2 금융권의 자금 회수로 부도 위기에 몰렸다. 결국 최씨는 1998년 5월 주식과 부동산을 내놓고 회장 직에서 사임해야 했고, 동아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1호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2년 뒤인 지난해 10월 워크아웃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동아는 왜 채권단으로부터 1조1천억원의 지원을 받았으면서도 회생의 길을 찾지 못한 것일까. 김포 매립지 같은 주요 자산을 팔았는데도 이 회사의 부채 비율은 현재 1000%가 넘는다. 지난해 11월 동아의 법정관리 신청서를 작성한 법무법인 광장은"경영진의 방만한 경영과 사업성 없는 무분별한 투자로 단기 차입금이 급증한 것이 몰락을 재촉했다"라고 분석했다. 한 건설업체 임원의 분석은 자못 흥미롭다. "건설회사의 생명은 수주다. 수주는 신용에서 나온다. 동아는 워크아웃에 처해진 후 신규 수주가 안되어 사실상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여기다 경영진의 반목과 노조의 제몫 챙기기, 채권단의 몸사리기가 극에 달했다. 불량한 재무 구조는 기본 토대였을 뿐이다."

동아는 법정관리 판정을 받아 갱생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3월 중순께 법원이 결정할 일이지만, 정부는 일단 파산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파장을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동아가 청산된다면 국내외에 파장이 클 것은 틀림없다. 그 중에서도 대수로 공사는 동아가 법원에 선처를 호소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구명줄. 결국 동아의 운명은 법원의 저울 추가 '경제 논리'와'국내외 상황 논리' 가운데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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