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산업의 거인들③]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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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가이자 폭군 완벽한 '두 얼굴'

사진설명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시사저널 백승기

세계 IT업계의 리더 중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 빌 게이츠만한 '두 얼굴의 사나이'가 또 있을까. 일반인에게 그는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선지자이다. 그의 책 <미래로 가는 길>과 <비즈니스@생각의 속도>는 첨단 기술이 경제·사회·문화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를 명쾌히 제시한 걸작으로 꼽힌다. 한때 '은하계에서 가장 부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 그는, 세계 최대 자선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부인과 설립한 자선단체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매년 수억 달러를 사회 각 분야에 기부하고 있다.

반면 경쟁자들에게 빌 게이츠는 적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폭군이자 '하늘 아래 두 태양은 없다'고 믿는 독재자일 뿐이다. 그는 종종 질투심이 강한 편집증 환자로 묘사되곤 한다. 이러한 성격이 드러난 일화 하나. MS와 긴밀하게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반도체 업체 인텔의 전 회장 앤디 그로브는 빌 게이츠의 경쟁자 한 사람을 칭찬했다가 '봉변'한 적이 있다. 1995년 경제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에게 가장 영감을 준 인물로 애플 사 회장 스티브 잡스를 들었다. 그러자 빌 게이츠가 거칠게 항의했다. "내가 지금까지 해 놓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이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 잔인한 일 했을 뿐"


선 마이크로시스템즈 회장 스콧 맥닐리, 오라클 회장 래리 엘리슨 등 반(反) MS 인사들은 빌 게이츠에 대한 적대감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다. 대마왕·어둠의 왕자·악마의 제국·죽음의 별…. 심지어 그를 '적 그리스도'라고 부른 이도 있다. 파티가 자주 열리는 실리콘밸리 갑부들의 마을 우드사이드에서 인기 있는 파티 중 하나는 '타도 MS' 파티이다.

MS의 경쟁자들이 빌 게이츠를 적대시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퍼붓는 것은 미국 법무부와 MS 간에 벌어진 반독점법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빌 게이츠의 '악행'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한때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위를 위협할 것처럼 보였던 신생 기업 넷스케이프를 누르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컴퓨터 업체들을 협박하고 회유했다. 넷스케이프의 주력 제품은 1995년 '인터넷 붐'을 일으킨 주역인 웹 브라우저 네비게이터이다. 1996년 MS측은 네비게이터를 탑재한 컴퓨터를 출시하려는 컴퓨터 제조업체 컴팩에 '윈도' 사용권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재판 과정에서 '상대를 이용한 뒤 버리는' MS의 전력이 드러나기도 했다. MS의 웹브라우저 '익스플로러'의 전신인 '모자이크'를 개발한 스파이글라스는 토사구팽된 대표적인 기업이다. 스파이글라스는 로열티를 받기로 하고 MS측에 모자이크 개발권을 넘겼다. 하지만 MS가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배포하는 바람에 스파이글라스는 한푼도 받지 못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컴퓨터 전문가들 중에는 MS의 가장 뛰어난 기술 혁신 방법은 '모방'이라고 빈정거리는 이도 있다. 사실 1980년 MS에 엄청난 수입을 가져다 준 PC 운영체제 'MS-DOS'는 빌 게이츠의 작품이 아니었다. 초기 버전의 MS-DOS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라는 회사가 만든 Q-DOS를 사들여 이름만 바꾼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빌 게이츠를 악당이라고 부른다면 실리콘밸리 전체를 악의 소굴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입만 열면 빌 게이츠와 MS를 비난하는 래리 엘리슨은 자신의 경영관인 '제로섬 철학'을 이렇게 설명한다. "성공이란 흔한 게 아니다. 누군가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실패해야 하니까." MS 제국에 대항하는 정의의 슈퍼맨으로 종종 언론에 등장하는 스콧 맥닐리 역시 자기가 빌 게이츠라고 해도 마찬가지로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시민 케인>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빌 게이츠는 잔인한 사람이 아니다. 단지 잔인한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약육강식 법칙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한 인물일 뿐이므로.

● Microsoft :
1975년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창업했다. 세계 소프트웨어업계의 지배자. 지난해 6월 반독점법을 위반한 혐의로 미국 연방법원으로부터 '회사를 2개로 분할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곧바로 항소했다. 법정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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