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산업의 거인들⑦] 시스코 시스템즈 존 챔버스 회장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4.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근성으로 똘똘 뭉친 네트워크 지배자


입이 귀에 걸릴 만큼 커다란 웃음을 지을 때면 그는 천진한 소년으로 보인다. 난독증(難讀症)때문에 '멍청이' 취급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푸른 눈에 늘 흥분한 것처럼 상기된 얼굴인 시스코 시스템즈 존 챔버스 회장. 그는 부하 직원을 만나면 이렇게 인사한다. "재미 좀 보고 있나?"


1980년대 IBM에서 영업 사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챔버스는 제품 판매를 즐기는 타고난 영업맨이다. 1995년 시스코의 세 번째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그는 1985년 창업 이래 기술력에만 의존해 제품을 팔아온 기술자들의 회사에 '세일즈 정신'을 불어넣었다.


적극적 합병·매수로 연구 개발 시간 단축




챔버스는 새로운 고객을 만날 때마다 자기 전화번호를 주고서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말한다. 그는 새벽 2시에 걸려오는 고객의 전화도 마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만 명이 넘는 부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 회장인 그는 직원이 6명뿐인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 업체 익사이트@홈에 직접 나타난 적도 있었다. 당시 익사이트@홈의 사장은 '회장님'의 출현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베이 네트웍스의 제품을 쓰던 그는 시스코 제품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경쟁사 제품을 쓰고 있는 이들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어 자사 제품을 사게 만드는 '근성의 사나이' 챔버스는, 그래서 경쟁사들이 증오하는 대상이다.


챔버스의 영업 철학은 독특하다. 그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말은 일자리를 찾는 20대 젊은이인 그에게 IBM 채용 담당자가 한 말이었다. "영업이란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꿈을 파는 거네." 그가 지금 꾸는 꿈은 시스코의 힘으로 음성과 데이터를 전송하는 거대 통신망인 '뉴 월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시스코 제품을 구매하는 경영자뿐만 아니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부터 장쩌민 중국 주석까지 만나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역설한다.


챔버스가 세계 네트워크 제국의 지배자가 된 것은 '시스코 방식'이라 불리는 적극적인 합병·매수 전략 덕분이다. 그는 실리콘밸리를 마치 자기 연구소처럼 십분 활용했다. 1993∼2001년 시스코가 인수한 기업 숫자는 70여 개. 1999년과 2000년에는 한 달에 2개꼴로 첨단 기술을 가진 회사를 인수하면서 연구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했다. 다른 기업들이 흔히 겪는 합병·매수 후유증도 챔버스의 사전에는 없었다.


그가 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성공적인 결혼'으로 이끈 것은 우선 챔버스 특유의 리더십 덕분이다. IBM처럼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회사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그는 '명령과 통제'가 얼마나 기업 문화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는 팀워크를 중시하고 직원들에게 의사 결정을 맡기는 '자율 경영'을 추구한다. 또한 1995년부터 일어난 인터넷 붐을 타고 시스코 주가가 폭등한 것도 고성장 전략에 힘을 실어주었다. 챔버스는 인수 대금으로 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워낙 주가가 급상승하기에 시스코의 주식은 어디서나 환영받았다.


하지만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는다"라고 즐겨 말했던 챔버스는 최근 고성장의 덫에 걸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0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 총액을 추월했던 시스코는 그때보다 주가가 80% 가까이 폭락했다. 현재 '시스코 방식'은 일단 멈춤 상태이다. 지난해 12월 이후 기업을 단 한 개도 인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창립 이후 최초로 전 해와 비교해 이익이 줄어드는 '참극'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챔버스는 시스코가 경기 침체를 극복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최근 그는


"5년 내로 〈포춘〉 500대 기업 중 절반이 명단에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통신·네트워크 분야에서 합병·매수가 엄청나게 활발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물론 챔버스의 바람은 그 중심에 시스코가 서는 것이다.


● CISCO SYSTEMS :

1985년 스탠퍼드 대학 동문인 랜과 샌디 부부가 창립. 라우터와 스위치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정보의 80%는 시스코 제품을 거쳐간다'는 말을 듣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