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용 자금은 '새발의 피'
  • 런던·김용기 편집위원 ()
  • 승인 200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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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개된 액수는 BFC의 0.1%에 불과…
계좌 내역서 국내에 '존재'


지난 8월13일 검찰은 대우그룹 해외 비밀 계좌(BFC·British Finance Center) 관할 자금 중 일부가 김우중 전 회장의 개인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관련자들의 법정 진술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7월 말에 끝난 대우그룹 분식 회계 사건 1차 공판 과정에서 진술된 내용들이다.




이에 따르면, BFC 계좌에서 5백만 달러(65억여원)가 인출되어 김우중 회장의 프랑스 니스 지방 포도농장 구입비 등으로 사용되었고, 김회장 개인의 카드 사용 대금, 자녀 유학 자금, 미국 아파트 관리비 및 세금이 이 계좌에서 지불되었다(불구속 상태인 이동원 ㈜대우 런던법인장의 진술). 또한 BFC 계좌에서 2백50만 달러(32억여원)가 1997년과 1998년 두 차례 인출되어 김회장 아들이 다녔던 미국 대학에 기부되었으며 (구속된 이상훈 전 ㈜대우 국제금융담당 전무의 진술), 1991년 ㈜대우 런던 법인장 직을 마치고 귀국하던 강병호씨에게 김회장으로부터 전별금 10만 달러가 전달되었다(구속된 강병호 전 대우자동차 사장의 진술)는 것이다.




공개된 내용은 BFC 자금이 개인 용도로 사용되었을 대목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하지만 그 액수가 BFC가 '삼켜버린' 75억 달러(10조원) 중 겨우 0.1%에 불과하고, 또 이러한 내용조차 김우중 회장의 진술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여서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단서를 달고 있어 검찰의 그간 조사가 '미흡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김우중씨는 없었어도 그를 제외한 핵심 관련자 전원(강병호·이동원·이상훈·성기동)이 구속 상태에서 조사받았거나 입국하여 검찰 조사에 협조했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사실 1999년 하반기 대우그룹이 세계 기업 부도 사상 최대 규모라는 신기록을 세우며(부채 규모 8백억 달러·100조원)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BFC에 대한 당국의 조사는 언제나 '미흡했다'.


〈시사저널〉이 BFC의 자금 유출입 규모와 내역을 최초로 공개한 지난해 6월 금융감독원의 대우 관련 조사는 분식 회계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당시 〈시사저널〉이 취재한 바에 의하면, 지금도 대우측이 주장하는 BFC 자금 사용 내역의 대부분은 신빙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지급 이자 39억 달러 중 14억 달러는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나머지 25억 달러도 주었다는 기록만 있기 때문이다. 대우 계열사들에 손실 보전액으로 지급되었다는 39억 달러도 숫자를 짜맞춘 흔적이 역력했다. 이후 조사의 주체가 금융감독원에서 검찰로 바뀌어 1년이 지났지만, 조사에 특별한 진전이 없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이번 재판 과정에서 대우측 임원들은 '당당하게' 자기를 변호했다고 한다. 'BFC의 명의는 (주)대우였고, 계좌로 자금이 유입되고 사용된 것이 법규상 위법적인 것일 수는 있지만 기업 경영에서 관행이었고, BFC 자금은 전액 대우 계열사를 위해 사용되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 것이다.


당국 조사는 '미흡', 여야는 '침묵'




대우측 임원들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당당하게' 자기를 변호했다고 한다. 오른쪽은 이상훈 전 (주)대우 국제금융담당 전무, 맨 오른쪽은 강병호 전 대우 자동차 사장.


미흡했던 것은 당국의 조사만이 아니다. 사사건건 의견 대립을 보여온 여야가 침묵으로 일관하며 공조해온 사안이 바로 이 대우 경영 비리 사건과 BFC 자금 사용 내역 의혹이었다.


정리해 보면 BFC는 그곳에 들어간 외화의 일정 부분을 어디론가 흘려버리는 '깨진 바가지' 같은 존재였다. 20년에 걸쳐 흘려버린 금액이 75억 달러였고, 그곳을 흘러간 외화 금액이 1990년대 하반기에는 매년 잔액 기준으로만 연간 60억 달러가 넘었다.


BFC가 흘려버린 75억 달러 손해는 형식적으로는 현지 금융 채무를 떠안은 (주)대우 해외 현지 법인들 , 자동차는 배에 실어 보냈으나 그 대금은 받지 못한 (주)대우자동차, 수입 선급금 형태로 외화를 방출한 (주)대우 본사라는 3자가 지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첫 번째 현지 금융의 경우 해외 채권 은행들이 부분적인 손실을 감수하는 것으로 결말지어졌고, 두 번째 세 번째로 인한 피해는 대우 국내 채권단을 통해 공적 자금을 국민이 부담하는 형태로 정리되고 있다.


BFC가 끼친 폐해는 공적 자금 투여에 그치지 않는다. BFC는 1997년 외환 위기 발생에도 상당 부분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외환 위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해외 현지 금융으로 조성되던 BFC 자금의 재원이 1997년 들어 국내로부터의 외화 방출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국제 은행으로부터 현지 금융 상환을 요구받은 (주)대우 해외 현지 법인들과 그 보증인 (주)대우는 가공 무역과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중계 무역을 가장해 수입대금 결제, 무역금융 등의 명목으로 외화를 융통해 국외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1997년 11월부터는 국내 은행이 외화 조달 능력을 상실하게 됨에 따라 한국은행으로부터 배정받은 외환 보유고가 외화 방출 재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국내 외화 방출은 1998년 들어 김우중씨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주도했던 '수출 5백억 달러론'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앞서 말한 가공 무역 이외에 고율의 국내 회사채를 발행하여 수입 선급금을 외화로 지불하거나, 수출보험공사로부터 보증을 받아 외화를 당겨쓰고 나자빠지거나, 자동차는 내보내고 대금은 받지 않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내보냈던 외화가 어떻게 쓰였는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시사저널〉이 지난해 12월 초 제581호 기사 '김우중, 런던 방문 비자금 관리자 만났다'와 올 2월 초 제591호 기사 'BFC 자금 사용처, 당장 밝힐 수 있다'를 통해 보도한 것처럼 BFC 비자금 사용 내역서의 일부는 김우중씨 이외의 사람들도 갖고 있다. 김우중-이동원 -석진강 변호사(김우중의 법률대리인)가 지난해 11월29일 런던의 한 호텔에서 만났으며, 그 직전 이동원씨가 BFC 계좌 중 하나의 내역이 담긴 A3 용지 크기 10여쪽짜리 문건을 5부 복사했고, 이들 3자가 이 계좌 내역을 가지고 상의했고, 이동원씨와 석진강 변호사가 국내로 입국할 때 이 문건을 소지했을 것임은 정황상 분명하다는 내용을 〈시사저널〉은 이미 보도했다.


만약 검찰이 이 A3 용지 문건을 아직 입수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관련자들로부터 그 내역을 넘겨받아 BFC 외화 자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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