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일수록 더 바쁜 애널리스트들
  • 신호철 기자 (eco@e-sisa.co.kr)
  • 승인 2001.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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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전화 '북새통'…
반도체 전문 최석포씨, 하루 5시간 새우잠
뉴욕발 속보가 날아든 것은 9월4일 오후 1시였다. '미국 휴렛팩커드 사가 컴팩과 합병'. 메리츠 증권 애널리스트(분석가) 최석포씨(47)에게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고객 수백 명에게 e메일로 긴급 리포트를 보내는 사이 전화통은 불이 났다. "한국 D램 산업은 어떻게 될 것이냐?" "PC 불황이 끝날 것 같은가?" 그는 몰려드는 전화를 감당하지 못해 한 손에는 전화를,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잡고 응답했다.




최석포씨는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다. "요즘 반도체 업계에 돌발 뉴스가 많아 오늘처럼 급박한 상황이 종종 생긴다." 하루에 받는 전화가 평균 50통이어서 '귀가 멍멍해서 난청이 있을 지경'이라고 한다. 언론사나 기관투자가의 문의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국정원 같은 국가기관에서도 전화가 온다. 그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운전 부담 없이 자유롭게 통화하기 위해서다.


그의 하루는 긴장의 연속이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7시30분이면 회의에 참석한다. 9시부터 장이 열리면 전화 상담에 정신이 없다. 점심 때도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어 배달된 요리로 때우거나 샌드위치로 해결한다. 오후 3시 장이 끝나면 세미나나 투자자 설명회, 지방 강연회 일정이 이어진다.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일도 잦아졌다. 짬을 내서 반도체 관련 업체도 탐방해야 한다. 퇴근 후에도 밤 10시30분에 시작되는 미국 증시를 지켜 보아야 한다. 12시30분쯤 잠이 들면 수면 시간은 다섯 시간.


반도체 불황이 깊은 요즘 그는 특히 피곤하다. 최씨는 "주가가 마냥 올라가거나 차라리 꾸준히 떨어지고 있을 때가 더 편하다"라고 말한다. 요즘처럼 장이 정체되면 불안한 투자자들은 애널리스트의 분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때일수록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최씨는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시절 사귀어 두었던 외국 관계자들로부터 정보를 얻기도 한다. 반도체 산업은 특히 외국 컴퓨터 경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정보와 교환하는 일도 있다.


그는 지난해 초 반도체 주가 하락을 예견했다가 주주들로부터 "당신 왜 그러느냐"는 항의에 시달리기도 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그를 비난하는 글도 많이 올라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그는 반도체 주가가 바닥을 치려면 아직 멀었다고 전망한다.


"애널리스트 한마디에 수백억 자금이 움직인다. 영향력이 큰 만큼 책임감을 느낀다. 애널리스트는 '공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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