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경제’ 이끄는 3대 문파와 비밀 결사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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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정책 주도하는 공식 조직·비선 해부
요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원고 검토 작업에 바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경제관을 담은 책을 펴낼 예정인 이총재는 1월 안에 원고를 완성한다는 계획으로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작업을 돕고 있는 여의도연구소 유승민 소장은 “언제 책으로 낼지는 정국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것은 경제에 대한 이총재의 관심을 보여주는 한 사례에 불과하다. 12월17일, 이총재는 국가혁신위원회(혁신위) 산하 미래경쟁력분과위원회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올 3월로 예정된 혁신위의 보고서 발간을 앞두고 이루어진 중간 보고였다. 1시간 동안 계속된 보고에서 이총재는 메모하는 것은 물론 사안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어 참석자들이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이총재는 또 1주일에 한 번꼴로 학자나 기업 경영자 등 외부 경제 전문가들과 현안을 놓고 난상 토론을 하며 나름의 경제관을 가다듬고 있다. 최근 들어 그가 방문하는 현장 가운데 80%는 경제와 관련된 곳이다.


이처럼 이총재가 경제 분야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라는 점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이총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02년의 가장 큰 이슈는 경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올 대선의 최대 쟁점을 경제 문제로 판단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법조계에서 잔뼈가 굵어 경제 분야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 그가 아킬레스건 중 하나인 ‘경제 문외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1년 11월19일, 경제 5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제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연속 선상에서 해결해야 한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이윤을 추구하고, 그 세금을 받은 국가가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라고 생각의 일단을 내비친 이총재의 경제관은 한마디로 ‘성장 경제’로 요약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구조 개혁을 병행하면서 한국 경제가 해마다 6% 정도 성장할 수 있도록 잠재력을 키우는 데 경제 정책의 초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김만제·이상득·김용환 의원이 각 파 수장


이총재의 이런 구상은 한나라당의 경제 브레인들에 의해 구체화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제통들은 크게 관료파·비관료파·영입파 세 갈래로 나뉜다.
관료파의 수장은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낸 김만제 의원. 2001년 5월9일∼12월21일 정책위의장을 지낸 그는 김대중 정부가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하는 등 튀는 언행을 보였지만 동시에 정책위의 위상을 확실하게 확보했다. 정부 개입을 최소화한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경제를 살린다는 소신을 지닌 그는, 초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교원 정년 연장 실패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책위의장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12월24일 출범한 대기업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경제통으로서 그의 역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경제기획원 예산국장을 지낸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대선 국면에서 역할이 주목되는 관료파 인사이다. “지금 여당이 아주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경제 정책은 우리가 책임감을 갖고 미리 챙겨서 할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한나라당이 앞으로 경제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챙길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금융대책위원장도 맡고 있다. 이의장과 호흡을 맞출 임태희 제2정책조정위원장 또한 재경부 과장 출신인 관료파이다.


이밖에 메모만 있으면 하루 종일 연설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는 안기부 경제정책실장 출신 박종근 의원, 재무부 세정차관보를 지내 ‘세무통’으로 통하는 나오연 의원이 관료파로 분류된다.


비관료파로는 단연 이상득 사무총장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12년 동안 코오롱 사장을 지내 ‘실물통’으로 알려진 이총장은 정책위의장을 두 번, 원내총무를 한 번 지냈다. 그는 사무총장이 되기 전까지 혁신위 부위원장과 경제 관련 입법 과정에서 상임위간 이견을 조정하는 경제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이총재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왔다. 담배인삼공사 민영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을 때 당의 반대 방침을 되돌릴 정도로 남다른 설득력도 갖고 있다. 이총장은 “한나라당 경제팀은 교원 정년 문제 같은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중소기업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출신 황승민 의원, 한때 재무부에 근무하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대우경제연구소 사장을 지낸 이한구 의원, KDI 선임연구위원 출신인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도 비관료파로 분류된다. 혁신위 미래경쟁력분과를 맡고 있는 이명박 전 의원, 명지대 교수인 서상목 전 의원도 여기에 들어간다.


최근 들어간 인사들은 영입파로 불린다. 한국신당 대표로 있다가 한나라당에 입당한 김용환 의원은 국가혁신위원장을 맡아 이총재 경제 인맥의 큰 축을 형성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쪽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대선이 가까워 올수록 김위원장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본다. 표세진 전 공정거래위원장, 강만수 전 재경원 차관, 박청부 전 증권감독원장 등 김영삼 정권에서 일했던 인사들도 최근 한나라당에 입당한 영입파 경제통들이다.


역할 면에서 보면 이상득 사무총장-이강두 정책위의장-임태희 제2정조위원장 그리고 유승민 소장으로 이어지는 정책 라인의 역할이 눈에 띈다. 공조직을 중시하는 이총재의 성격상 이들은 대선 국면까지 당의 경제 정책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다. 이상득-이강두 라인은 이총장이 정책위의장 시절 이의장이 제2정조위원장을 맡는 등 일찍부터 ‘찰떡 궁합’을 과시해 왔다.


친척 관계로 얽히고 영남 출신 많아


이 가운데 유소장은 남달리 주목되는 존재이다. 이총재의 연설문을 전담하는 그는 단순한 정책 자문을 넘어서 각계 인맥을 이총재에게 연결하는 중책을 수행하고 있다. 교수나 국책연구소 등에 있는 사람은 물론 재계의 소장파 인사들과도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그는, 최근 외부에서 돕는 사람들을 조직화할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


이밖에 시니어 그룹을 이총재에게 연결하고 있는 김만제 의원과 중견 인사들을 담당하고 있는 이한구 의원, 미래 비전을 수립하고 학계 인사들을 묶는 일을 맡은 이명박 전 의원의 역할이 주목된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평소 김만제 의원·이상득 사무총장·유승민 소장이 현안에 대해 토론하며 방향을 잡아왔기에 역할의 변화는 있을지라도 정책의 큰 틀이 바뀔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회창식 경제’를 그려가고 있는 한나라당의 경제통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친인척 관계인 경우가 많다. 김용환 국가혁신위원장과 이한구 의원은 동서간이다. 임태희 제2정조위원장은 권익현 고문의 둘째 사위이고, 이명박 미래경쟁력분과위원장은 이상득 사무총장의 친동생이다. 유승민 소장은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이다.


또 영남 지역 출신이 많다. 김만제·이한구 의원과 유승민 소장은 경북고 선후배 사이이고, 이상득 사무총장·이명박 위원장·박종근 의원도 TK(대구·경북) 출신이다. 이강두 정책위의장, 나오연 의원, 최근 입당한 강만수·표세진·박청부 씨 등은 PK(부산·경남) 출신이다. 충청 출신인 김용환 위원장과 경기 출신인 임태희 의원 정도가 비영남권 인사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에서는 너무 영남권에 편중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기업 활동의 자유와 성장을 중시하는 시장경제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기업이 살아야 하기에,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는 각종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등이 이들에게 각종 논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청와대 수석 등 거물급 막후에서 맹활약”


그러나 유승민 소장은 “드러난 인사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혹 불이익을 받을까 봐 이름이 밝혀지기를 원치 않는 상태에서 이총재를 돕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혁신위 관계자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거물급 인사들이 막후에서 당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이총재가 아직 경제특보를 임명하지 않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총재 주변에서는 오래 전부터 경제특보를 임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으나 아직 진전이 없다. 이유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인을 임명할 경우 불거질 내부 잡음을 염려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경제통들이 주목되는 이유는 한나라당이 집권한다면 현재 이들이 그리는 그림이 정부 정책의 골간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원내 1당으로 국정 운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도 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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