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광고, ‘명당’ 값 5백억?
  • 신호철 (eco@sisapress.com)
  • 승인 200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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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 공식 후원사, 하프라인 부근과 골대 뒤편 ‘에이보드’ 자리 싸움 치열

1999년 7월11일 미국 여자 월드컵 결승전. 미국 대표 채스테인은
결승골을 넣자 기쁜 나머지 웃옷을 벗어 던지는 ‘선정적인’ 골 세레모니를
펼쳤다. 이 요란한 장면은 세계 각국 뉴스 시간에 방영되었고 덕분에
그가 입고 있던 나이키 스포츠 브래지어는 유명세를 탔다. 덕 본 기업은
또 있었다. 채스테인은 마침 현대자동차 광고판 앞에서 옷을 벗고 달렸다.
이 바람에 현대자동차 로고가 전세계에 알려졌다.


현대자동차 조래수 차장은 “처음 국제 축구 경기에 광고판을 설치할
때는 광고 효과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미국 여자 월드컵이
끝난 뒤 현대자동차 브랜드의 미국내 인지도는 그 석달 전에 비해 10%
상승했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이 ‘사건’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국제 축구 경기를 꼬박꼬박 후원하고 있다.


월드컵 에이보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물


흔히 ‘에이보드’라 불리는 축구 광고판은 스포츠 마케팅의 꽃이다.
특히 시청자 10억 명의 눈을 한곳에 모으는 결승전에서는 더 그렇다.
후지필름 고승훈 실장은 “월드컵 마케팅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광고 수단은 에이보드다. 그 다음이 딸린 행사다”라고 말했다. 월드컵
에이보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물이다.



2002년 월드컵에는 에이보드가 39개 경기장 주변을 둘러싼다. 15개
공식 후원사가 2개씩, 6개 공식 공급업체가 1개씩 차지하고, 나머지
3개는 대회를 주최한 국제축구연맹 개최 도시의 몫이다. 이들 에이보드는
중계석 쪽을 제외한 나머지 3면을 채운다. 에이보드 광고판 배치 순서는
이미 공식 후원사 계약 당시부터 정해져 있다. 이 순서는 서울 개막전부터
요코하마 결승전까지 64경기 내내 변하지 않고 고정된다. 단 일본에서
열리는 시합의 경우 KT가 있던 자리에는 NTT 도코모가 들어선다.


에이보드 자리에도 ‘명당’이 있다. 전통적으로 중계석 맞은편 하프라인
부근이 가장 좋은 자리로 꼽힌다. 텔레비전 노출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엔씨네트워크 오정수 팀장은 “현대 축구는 미드필드를 강조하는 압박
축구가 대세다. 자연히 대부분의 플레이가 하프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여기 설치된 에이보드가 카메라에 가장 많이 잡힌다”라고 말한다. 경기장
정중앙 자리는 개최 도시 홍보 보드가 설치될 예정이다. 그 양 옆에
아디다스와 도시바가 자리 잡는다.


하프라인 부근에 놓인 에이보드는 텔레비전 화면에 자주 노출되기는
하지만 넓은 화면에서 잡히기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골대 뒤쪽이 더 좋은 자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디다스 관계자는
“골대 뒤가 하프라인보다 더 좋은 자리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뉴스
하이라이트와 일간지 사진 자료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경기가 끝난
후를 생각하면 오히려 하프라인보다 더 자주 노출된다는 분석이다. 슬로비디오
기술이 발달하고 동원되는 카메라가 많아지는 것도 골대 뒤쪽을 선호하는
이유다. 질레트·JVC·코카콜라·맥도널드·아디다스가
이 노른자위를 챙겼다.


하프라인과 골대 다음으로 광고주들이 좋아하는 곳이 코너이다. 여기로
선수가 공을 몰고 가면 화면이 확대되기 때문에 집중도가 높아진다.
코너킥을 차는 선수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 자리에 광고판을 설치한
야후(Yahoo)는 기뻐할 것이다.


33억명에게 1분40초 동안 CF하는 효과


가장 좋지 않은 자리라면 중계석쪽 구석이다. 여기에는 국내 공식
공급업체 에이보드 6개가 위치한다. 국내 공급업체들은 공식 후원사에
비해 몇 가지 제한을 받는다. 자리도 자리지만 보드판 크기도 가로 5m,
세로 0.7m로 공식 후원사에 비해 가로 길이가 1m 작다. 또 한국에서
열리는 시합에만 에이보드를 설치할 수 있고 영어는 쓸 수 없다. 일본에서
열리는 시합에는 일본 회사 에이보드가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자리마다 희비가 엇갈리기 때문에 공식 후원사들 사이에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국제축구연맹 공식 후원사들
사이에서도 먼저 계약하는 쪽이 유리하다. 선착순인 셈이다. 코카콜라·아디다스
같은 국제축구연맹 터주 대감들은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 뒤늦게 계약하는
업체들은 국제축구연맹과 가격 협상을 하며 자리를 구한다. 한 공식
후원업체 관계자는 계약을 늦게 했기 때문에 남은 자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코카콜라는 2006년 독일 월드컵 광고판 자리까지 미리 예약했다.


‘내 광고판 옆에 어느 회사 광고가 붙느냐’는 것도 신경전을 벌이는
대목이다. 유사한 모양의 광고가 이어지면 광고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버드와이저 로고는 하얀 바탕에 붉은 색깔이어서 코카콜라와 비슷하기
때문에 되도록 코카콜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잡았다.


4천만 달러(약 5백20억원) 이상을 월드컵에 투자한 공식 후원사들은
‘에이보드 효과’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 광고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광고 전문가들은 월드컵 공식 후원사 로고가 한 경기당 평균
12분 정도 노출된다고 말한다. 이를 가격으로 환산하기 위해서는 같은
날 방영되는 하프 타임의 1분당 광고 단가에 12를 곱해주면 된다. 1999년
열린 미국 여자 월드컵의 경우 시청자가 1억3천만명이었는데, 현대자동차는
대회 전체를 통틀어 3억 달러(약 4천억원) 정도 광고 효과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이보다 시청자가 30배 가까이 많은 2002년 월드컵에서 에이보드
광고 효과는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텔레비전 광고와 달리 경기 중에는 시청자의 시선이 에이보드
광고판이 아니라 선수와 공에게 쏠린다는 반론도 있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들은 축구 시합 중에 7분 노출되는 광고판은 텔레비전 CF로 1분
노출된 것과 비슷한 효과를 준다고 말한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에이보드
광고 효과는 약 33억명으로 추산되는 월드컵 시청자에게 1분40초 동안
CF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2002년 월드컵 에이보드는 영국에 있는 한 회사가 일괄적으로 제작한다.
가격은 하나에 50만원 정도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컵 대회 때는 이
회사 직원들이 개막 1주일 전 한국에 와서 그림을 그렸다. 전자식 보드
같은 최첨단 에이보드가 유행하고 있지만, 월드컵 광고판은 나무에 페인트칠을
하는 전통적 방식이 쓰인다.


축구 광고판을 에이보드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워진 모양이 ‘A’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설과 Advertising(광고)의 약자라는 설이 있다. 에이보드는
스포츠 마케팅의 에이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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