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천국’의 요지경 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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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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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국가 왕족·고위 공직자, 기업 스폰서 노릇은 ‘기본’


정치인이 특정 기업을 잘 봐달라며 청탁 전화를 걸면 게이트가 된다. 정치인 친척 이름이 벤처 기업 이사 명단에 오른 것이 밝혀지면 정경유착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중동에서는 웬만한 기업치고 배후에 유력자가 없는 경우는 드물다. 이 유력자는 왕족이거나 고위 공직자인데, 흔히 ‘스폰서’라고 불린다.


벤처 회사 컴캐스트는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의 네트워크 업체 애드시스템과 2백만 달러어치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애드시스템의 스폰서는 현직 총리로 알려져 있다. 컴캐스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M사와도 거래한 적이 있는데 이 회사의 스폰서는 현직 외무장관이다.


휴맥스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방송사 오르비트와 2억 달러 규모의 셋톱박스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 오르비트라는 방송사는 사우디 왕족 소유인 마와리드 그룹의 계열사다. 윤태식 게이트로 물의를 빚었던 패스21은 지난해 10월 A.F.E.C.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A.F.E.C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사우드 왕자가 회장으로 있는 그룹의 계열사이다.




이들 기업은 계약 협상 과정에서 은근히 스폰서를 밝히곤 한다. 우리로 치면 ‘백’이 있다고 과시하는 것이다. 와중에는 허풍을 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스폰서 이름을 박아놓는 기업도 있다.
현직 유력자가 뒤를 봐주면 특혜를 받게 마련이지만, 국민은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어차피 사회주의에 가까운 경제 구조여서 자유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또 권력과 금력이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정경 분리가 어렵다. 권력자가 아니면 기업을 후원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스폰서들은 대주주로 나서기보다 대부분 기업 뒤에 숨어서 후원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왕자들 중에는 경제 활동에 직접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는 국제 금융계의 큰손으로 유명하다. 그가 투자하거나 돈을 회수하면 전세계에 즉각 보도되고 해당 기업의 주가가 변한다. 형제 간에 왕위를 계승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왕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천명도 넘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외무장관은 사우드 알 파이잘 왕자이고, 부총리는 압둘 아지즈 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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