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소송 줄 잇는 ‘조세 법정’
  • 신호철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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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심판원, 언론사 과세 등 판결…이재용씨 증여세 문제도 곧 결정



국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황재성씨가 7월4일 마침내 사표를 제출했다. 그가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겸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 지 사흘 만의 일이었다.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보와 세 여동생은 지난 5월27일 국세청의 증여세 부과(6백억원 추정)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황재성씨는 이 사건을 담당하는 심판관은 아니지만, 언론의 자격 공세에 부담을 느낀 듯하다.


국세심판원 27년 역사를 통틀어 요즘처럼 세간의 눈길을 끈 적은 없다. 무엇보다 국세심판원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언론사 세무 조사 건이었다. 지난 5월 국세심판원은 국세청이 일간지 언론사에 탈세 혐의로 부과한 세금 6백88억원이 잘못 매긴 것이라고 결정했다. 엄청난 세금 때문에 노심초사하던 일간지들은 기뻐했지만 가뜩이나 정치적인 세무 조사라고 비난받던 국세청은 타격을 받았다. 삼성그룹 이재용씨에 대한 증여세 부과도 유사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이다.


중대 사안은 합동회의 거쳐 결론 내


국세심판원은 1975년에 생긴 재경부 산하 조직이다. 국세청이 징수한 세금에 대해 이의가 있는 납세자가 구제 신청을 하는 곳이다. 국세심판원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1동 4층에 있다.
흔히 국세심판원은 조세 분야의 법정으로 불린다. 재경부 세제실이 입법부, 국세청이 행정부라면, 국세심판원은 사법부인 셈이다. 당장 국세심판원 사람들을 만나보면 ‘또 다른 사법부’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한정기 국세심판원장은 “국세심판원은 법원과 비슷한 조직이다”라고 말하고 강정영 상임심판관도 “심판관은 판사와 같다”라고 말한다. 기피·회피·제척 제도 등 사법 절차에서 볼 수 있는 제도가 심리 과정에 다 있다. 심판관 임기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사법부와 비슷하다.


국세심판원의 인력은 원장 이하 상임심판관(2∼3급)과 비상임심판관이 핵심이다. 그밖에 조사관 10명(4급) 등 90여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임심판관 5명은 국세심판원에서 내부 승진한 사람이 3명, 재경부에서 건너온 사람이 2명이다.
비상임심판관은 12명으로, 내국세 담당 10명(조세 전문가 2명, 변호사 4명, 대학 교수 4명) 관세 담당 2명(세법학자 1명, 전직 관료 1명)이다. 비상임심판관은 심판원장 추천으로 재경부장관이 임명한다. 문제가 되었던 황재성씨는 2000년 1월 임명되었다. 비상임심판관은 회의에 출석할 때만 과천 청사에 얼굴을 내밀며, 한 회의당 20만원 보수를 받는다.


사실 황재성 심판관을 둘러싼 논란은 2000년 3월 그가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추천될 때부터 진행되었다. 그 해 3월6일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삼성전자와 삼성SDI가 전 지방국세청장 출신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것은 사외이사 제도의 근본 취지에 위배된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사외이사를 로비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사외이사 임명을 강행했다.





국세청의 세금 부과가 옳으냐 그르냐를 판결하는 심판은 심판관회의(1차)와 합동회의(2차)라고 불리는 두 차례 회의에서 결정된다. 심판관회의에는 상임심판관 2명과 비상임심판관 2명이 참석한다. 2 대 2 동수로 의견이 갈리면 결정을 다음으로 미룬다. 판례를 뒤집거나 국세 행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은 심판관회의뿐만이 아니라 합동회의까지 거친다. 합동회의는 상임심판관 5명, 비상임심판관 10명과 국세심판원장이 참석한다.


심판관회의가 매주 열리는 반면 합동회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린다. 6월18일 통과된 건설업체 법인세 감액 청구 건은 합동회의를 거친 대표적 사례다. 이 심판은 적게는 100억원(국세청 추산)부터 많게는 8천억원(건설업계 추산)까지 국세청이 환급해야 한다고 분석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었다. 당시 합동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논란 끝에 한 표 내지 두 표 정도의 아슬아슬한 표차로 건설업계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기억했다.


국세심판원 행정과장 이당영씨는 합동회의를 거치는 사건은 1%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그보다는 훨씬 많다고 말했다. 아무튼 90% 이상은 심판관회의만으로 통과되는 셈인데, 여기에는 언론사 세무 조사 사건도 포함된다. 언론사의 무가지 배포를 접대비로 볼 것인가 광고비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여야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주시하던 사건이었지만 ‘국세 행정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합동회의를 거치지는 않았다.


한 비상임심판관은 “나는 언론사에 대한 접대비 과세는 정당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만약 합동회의를 거쳤으면 결정이 달라질 수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건을 합동회의에 부여할 권한은 국세심판원장에게 있다.


국세심판원 홈페이지(ntt.go.kr)는 정부 홈페이지 중에서도 꽤 많은 자료가 정리되어 있는 우수 홈페이지로 손꼽힌다. 심판 결정례가 4만여 건 있어서 납세자가 청구 전에 조회할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언론사 세무 조사 심판 결과 자료는 빠져 있다. 이당영 행정과장은 “너무 유명한 사건이어서 해당 언론사의 사실이 적시되기 때문에 뺐다”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이재용씨 증여세 건은 어떻게 처리될까. 한정기 원장은 아직 조사에 들어가지도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미 주심 상임심판관과 부심 심판관은 배치되어 있다. 한 심판관은 합동회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한 해 세금 6천54억원 환급





국세심판원은 2001년 한 해 6천54억원을 납세자에게 돌려주었다. 2000년 2천3백54억원에 비해 환급액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활동이 활발해진 이유를 국세심판원측은 청구 절차가 간소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세무서·국세청의 이의 신청·심사 청구를 거쳐야만 국세심판원에 청구할 수 있었지만, 2000년부터 바로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상하 관계에서 수평 경쟁 관계가 된 것이다. 채수열 상임심판관은 “아무래도 국세청은 부과 기관이고 우리는 전문 기관이니까…”라며 국세심판원에 청구하는 편이 더 믿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국세심판원과 국세청과의 미묘한 관계에 비유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4월27일 국세심판원과 국세청은 에버랜드에서 축구 시합을 했다. 국세청 축구대회 번외 경기로 열린 이 시합에서 국세심판원이 1-0으로 국세청을 이겼다. 실제 국세심판원은 국세청과 축구 시합을 할 정도로 친한 조직이지만, 최근 몇 차례 결정적인 청구 심판에서 국세청에 패배를 안겨주고 말았다. ‘이재용 축구공’의 향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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