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쉰다는 말은 우리 사전에 없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2.08.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고경영자들의 실속 여름 휴가 백태



최고경영자(CEO)들은 어떤 휴가를 보낼까. 최고경영자 중에는 특별한 휴가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특히 외국계 기업 최고경영자들은 휴가를 이용해 봉사 활동을 한다든가 특별 이벤트를 즐긴다.



라파즈코리아나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최고경영자에게는 여름 휴가가 곧 봉사 활동 기간이다. 라파즈코리아 실뱅 가르노 사장(시멘트 부문)과 이창명 사장(석고 부문)은 휴가 기간 내내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가해 땀을 흘린다. 자원한 직원들과 함께 봉사 활동에 나선 이창명 사장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동시에 임직원들이 대화를 나눌 귀중한 기회이다. 아울러 신입 사원들은 우리 제품이 어떻게 쓰이는지 산 교육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랑의 집짓기 행사장에서 보내는 휴가가 일석삼조의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에릭 닐슨 사장도 지난해부터 사랑의 짓집기 현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다. 지난해에는 아산에서 망치질을 했고, 올해에는 대구 경산 지방에서 땀을 흘린다. 에릭 닐슨 사장은 “우리 회사가 지금처럼 성공한 데에는 지역 사회의 도움이 가장 컸다. 그 고마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고 휴가 기간을 이용해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라고 말했다.



일과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최고경영자도 있다. 한국 맥도날드 공동 대표인 신언식 사장과 김형수 사장은 휴가를 시장 조사와 벤치마킹 기회로 삼는다. 이들은 휴가 기간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나라의 맥도날드 매장을 돌고, 짬짬이 여행도 즐긴다.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를 찾아다니며 현지 매장 인테리어와 서비스를 꼼꼼히 살핀다. 물론 현지 맥도날드 사장들과의 만남도 갖는다. 두 사장이 휴가 기간에 모아오는 사진과 자료들은 상품 개발과 매장 배치 등에 응용된다.



BMW코리아 김효준 사장도 여름 휴가를 시장 조사와 현장 체험 기회로 활용한다. 김사장은 전국 각지의 BMW 전시장을 방문해 딜러들과 만난다. 공식 미팅에서는 속내를 털어놓기 힘들지만, 휴가 때 딜러들을 만나면 생생한 현장 체험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들만 특별한 여름 휴가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태평양 이해선 전무는 여름 휴가를 휴식보다는 업그레이드 기회로 활용한다. 그래서 지난 3년 내내 하버드 비즈니스 코스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코스에서는 세계 각국의 기업체 임원을 대상으로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새로운 흐름을 교육한다. 올해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교육했다.


태평양도 최근 중국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는 터여서 이해선 전무는 이번 강좌에서 실질적인 정보와 지식을 꽤 얻었다. 이해선 전무는 “1주일 내내 밤낮없이 공부하느라 코피까지 쏟는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를 얻고 각국에서 온 비즈니스맨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어 휴식보다 훨씬 값지다”라고 말했다.



일과에 쫓겨 평소에 하지 못하던 취미를 살려 독특한 이벤트에 참가하는 최고경영자도 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웨인 첨리 사장은 매년 휴가 때마다 ‘지프 잼버리’ 축제에 참가한다. 지프 잼버리는 지프 차 오너들이 미국 전지역을 돌며 황무지와 산악 따위 오프로드를 탐험하는 지프 마니아들의 축제이다. 올해에는 8월21일부터 25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루비콘 트레일 레이크 타호에서 열린다. 웨인 첨리 사장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프를 타고 자연을 달리다 보면 한 해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모두 해소된다”라고 말했다.



정원 가꾸는 일이 취미인 ING생명 주스트 케네만스 사장은 휴가 때면 ‘정원사’로 변신한다. 고국 네덜란드 고향집에서 휴가를 보내며 한동안 돌보지 못했던 꽃과 식물을 보살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원 가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휴가 때만이라도 취미를 살린다.



‘일 중독’ CEO들은 휴가 대신 출장 계획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자나 임원들은 ‘일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해 아예 휴가 계획을 잡지 않거나, 출장으로 휴가를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최고경영자들도 자택에서 쉬며 독서를 하겠다는 계획이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휴가를 미룬 채 일본으로 한달간 장기 출장을 떠난다. 달러화가 흔들리는 요즘 같은 때에 일본 금융기관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벤치마킹하고, 일본의 장기 불황 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회장은 출장을 다녀온 뒤 자택에서 쉴 예정이다.
신라호텔 허태학 사장도 이번 여름 휴가는 출장으로 대체한다. 올 봄 에버랜드에서 호텔로 복귀한 허사장은 8월 중에 미국 내 특급 호텔을 돌며 모범 사례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계획이다.



LG 구본무 회장도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며 밀린 독서를 할 계획이고, SK그룹 손길승 회장과 SK(주) 최태원 회장은 아예 휴가 계획이 없다. 한동안 세파에 시달렸던 포스코 유상부 회장은 이번 휴가만큼은 ‘푹’ 쉬겠다는 계획이다. 생태나 우주에 관심이 많아 이번 휴가를 이용해 관련 책과 비디오를 실컷 보겠다고 한다.



현대자동차그룹 최고경영자들은 다른 대기업 대표들과는 조금 다른 휴가를 보낸다. 정몽구 회장은 휴가를 이용해 제주도에서 열리는 현대·기아 자동차 신입사원 수련회에 참가한다. 현대모비스 박정인 회장은 강릉에서 열리는 신입사원 수련회에,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이계안 회장은 오대산 신입사원 수련회에 참석한다. 신입사원과의 벽을 허무는 현장 경영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들의 이런 휴가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이어온 전통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