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귀하신 이름은 SK텔레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2.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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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00대 기업 브랜드 가치 공개
SK텔레콤이 삼성전자를 눌렀다. 기업 규모나 매출,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보면 SK텔레콤이 삼성전자를 앞지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브랜드앤컴퍼니 산하 브랜드자산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국내 상장사 및 코스닥 기업 브랜드 자산 순위에서는 SK텔레콤이 1위에 올랐다. 브랜드자산연구소에 따르면, SK텔레콤의 브랜드 자산은 14조3천5백여원으로 13조9천2백여원인 삼성전자보다 많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궁금증은 두 기업의 순자산 대비 영업이익률을 보면 쉽게 풀린다. SK텔레콤은 순자산 6조원으로 24조원의 시장 가치를, 삼성전자는 19조원으로 49조원의 시장 가치를 창출했다(2001년 말 기준). 두 기업의 영업 이익은 2조원대로 비슷하다. 적은 자산을 가진 SK텔레콤이 삼성전자보다 영업 이익을 더 낸 셈이다. 과거 10년 동안 삼성전자는 SK텔레콤보다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왔지만(표 참조), 2001년에는 매출액이 줄고 원가는 상승해 자산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SK텔레콤은 고가 정책과 매출 신장세에 힘입어 영업 이익이 늘었다.


SK텔레콤이 고가 정책을 쓰면서도 매출을 늘릴 수 있었던 데에는 브랜드 마케팅 전략이 크게 기여했다. SK텔레콤 표문수 사장은 “우리는 브랜드가 앞서야 마케팅에서도 앞설 수 있다고 판단해 기업 브랜드와 각 사업 브랜드를 전략적으로 육성해 왔다”라고 말했다. 티티엘·유토·카라·팅과 같은 새로운 세그먼트 브랜드를 출시하거나 네이트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 브랜드를 앞세워 이동통신을 넓혀간 것이다.


한편으로는 고객에게 자부심을 주는 고가 브랜드를 키우는 데 주력했다. 고객은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차별 이미지를 산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다. ‘011은 말하지 않아도…’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는 힘’ 같은 광고나 캠페인도 그런 전략에서 나왔다.


10위권에 든 기업 가운데 눈에 띄는 곳은 KTF이다. KTF는 2000년에 7위였는데, 2001년에는 네 계단을 뛰어올랐다. KTF는 후발 사업자이지만, 선발 기업이 찾아내지 못한 시장을 먼저 찾아냈다. 이동통신 최초의 여성 브랜드인 ‘드라마’를 선보였고, 모바일 상거래 서비스인 ‘K커머스’와 10대 이동통신 서비스인 ‘비기’를 내놓았다. 이미지보다는 구체적이고 경제적인 이점을 내세운 마케팅 전략으로 젊은층을 사로잡았다.







100위권 밖에서 12위로 뛰어오른 현주컴퓨터


이와 함께 기업 브랜드를 적절하게 넣고 빼는 광고 전략도 구사했다. 예컨대, 드라마를 출시할 때에는 고급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광고에 기업 브랜드를 일절 넣지 않았다. 한국통신프리텔이라는 기업 이미지가 좋지 않은 데다 ‘PCS=나쁘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상태에서 기업 이름을 넣으면 소비자를 유인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기’를 출시할 때도 2등 회사의 서비스라는 것이 알려지면 불리할 것 같아서 회사 이름을 감추었다. 그러나 올 4월에 출시한 ‘K커머스’에는 서비스 이름에까지 아예 회사 색깔을 담았다. 그만큼 KTF라는 기업 브랜드에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10위권 밖에서는 현주컴퓨터의 약진이 눈에 띈다. ‘조립 PC 메이커’ 정도로 알려진 현주컴퓨터는 2001년 말을 기점으로 브랜드 자산 1조1천4백여억원을 쌓아 12위에 올랐다. 2000년에는 100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다.
2000년 10월, ‘아이 프랜드’라는 브랜드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덕이 크다. 현주컴퓨터 관계자는 “저가 PC 이미지를 벗고 브랜드 PC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라고 설명했다. 현주컴퓨터는 ‘중소기업은 애프터 서비스를 못한다’는 인식을 불식하기 위해 6개월에 한번씩 고객만족도를 조사해 부족한 점을 보완했다. 광고에서도 애프터 서비스를 잘하는 기업 이미지를 부각했다.


포스코의 브랜드 자산(18위)도 2001년에 크게 올랐다. 포스코처럼 (비)금속 업종은 총자산 가운데 유형 자산의 비율이 높아 브랜드 자산 가치가 높게 나오기 어렵다. 포스코는 총자산 17조원 가운데 유형 자산이 9조원이나 된다. 유형 자산이 전체 자산의 52%나 차지하는 것이다. 포스코는 또 제철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어 무형 자산 비중이 높다. 무형 자산 비중이 높아도 브랜드 자산 가치는 떨어진다.





하지만 포스코는 2000년 가을에 민영화하자마자 새로 만든 기업 이름을 알리는 데 각별히 공을 들였다. 고객 중심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단순화·표준화·통합화하는 한편, e비즈니스를 정착시켰다. 아울러 광고를 통한 브랜딩 전략에도 적극적이었다. 제철 회사라는 딱딱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라는 주제로 광고 시리즈를 내보냈다. 자전거 타고 가는 부자를 등장시켜 ‘철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멈춰버릴지도 모릅니다’라거나, 막 태어난 아기를 모델로 해서 ‘철은 따뜻한 생명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식이었다.


하위권 브랜드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기업들이 있다. 100위권 안에도 들지 못하다가 1년 사이 65 계단 이상 뛰어오른 신도리코나, 59 계단 앞지른 행남자기가 대표적이다.
신도리코는 지난해 굴뚝 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하이테크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사력을 다했다. 복사기를 생산 판매하는 데 안주하지 않고, 프린터 쪽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새 사업에 뛰어들자마자 프린터를 미국에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 결과 주식 가격이 두 배로 상승했다.


행남자기는 1999년부터 경영 혁신 운동을 펼쳤는데, 지난해부터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도자기 업계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서도 행남자기는 내수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을 늘렸다. 직영점을 확대하는 유통 구조 개선으로 영업이익을 높였고, 수입품에 맞서는 고가 제품을 출시해 내수 성장을 도모한 것이다.





“은행 이름이 워리(근심)가 뭔가?”


미국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는 크래프트라는 식품 회사를 인수하면서 장부가의 4배가 넘는 1백29억 달러를 지불한 바 있다. 크래프트가 가진 브랜드 가치 때문이었다. 브랜드앤컴퍼니 이상민 사장은 “경쟁이 치열해 품질과 가격이 비슷해지고 차별화가 어려울수록 브랜드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브랜드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브랜드 파워나 전략은 아직 ‘우물 안’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제품 브랜드만 단기적으로 관리하다가 매출이 줄면 새 브랜드로 바꾸어 그동안 쌓아놓은 브랜드 자산을 0으로 돌려놓는다거나, 엄청난 돈을 들여 기업 이미지를 바꾸었는데 엉뚱한 결과를 낳는 식이다. 한 브랜드 전문가는 “외국인들은 한 은행의 영문 표기인 ‘WOORI’를 보고 비웃는다.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은행이 ‘워리(근심) 뱅크’라고 이름을 지으면 누가 그 은행을 찾겠냐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100대 글로벌 브랜드에 낀 기업이라고는 달랑 삼성전자 하나뿐인 것도 국내 기업 브랜드 파워의 슬픈 현실을 말해 준다(딸린 기사 참조). 브랜드자산연구소 박문기 소장은 “브랜드 자산은 주가와도 밀접하게 연동된다. 시장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브랜드에 전략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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