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금융이냐, 투기 자본이냐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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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인수 나선 ‘서버러스’에 시선 집중…제일은행 지분 보유 의혹도 제기돼



서버러스(Cerberus)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지옥문을 지키는 대가리 셋 달린 개의 이름이다. 최근 조흥은행 민영화 입찰에 뛰어든 컨소시엄의 이름이 바로 서버러스다. 신세이 은행·뉴브리지캐피탈·서버러스펀드라는 세 개의 머리를 단 서버러스 컨소시엄이 신한금융지주회사와 함께 2파전을 벌이고 있다. 조흥은행 노조 박태윤 정책국장은 “서버러스는 벌처 펀드(투기 자본)다. 선진 금융기법 도입과는 무관한 세력이다”라고 말했다. 노조는 이익을 내고 있는 조흥은행을 부실 은행과 똑같이 처리해서는 안된다며, 서버러스뿐만이 아니라 신한이 인수하는 것도 반대하고 있다.



서버러스 펀드는 지난 10월 서울은행 민영화 입찰에 뛰어들었던 론스타펀드와 여러 모로 닮은 점이 많다. 처음 론스타펀드가 서울은행을 인수할 의향을 밝혔을 때 금융계에서는 하나은행의 들러리가 될 뿐이라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막판까지 치열하게 경합했다. 조흥은행의 경우도 신한측이 인수하는 것이 대세라고 여겼지만 의외로 서버러스 컨소시엄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우선인수협상자 선정이 빠른 시일 내에 결정될 것 같지는 않다.



조흥은행 건이 세인의 눈길을 모으면서 서버러스라는 이름이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지만 막상 서버러스 펀드의 실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다. 미국 뉴욕 파크애비뉴에 있는 서버러스 본사는 “우리는 대중을 상대하는 회사가 아니므로 언론 취재에 협조하기 힘들다”라고 답했다.
서버러스는 부실 채권 전문으로는 미국에서 론스타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유명한 펀드이다. 소수의 부자가 모여 투자하는 사모 펀드이며, 대표는 스티븐 A. 파인버그다. 1985년 설립된 이 펀드는 자본금이 65억 달러(7조8천억원)에 이른다. 1999년 9월 서울 광화문빌딩에 서버러스코리아라는 자회사를 세웠다. 체이스맨해튼 은행 기업담당 매니저와 ABN암로은행 본부장을 거친 최현재씨가 한국 대표다. 국내에 프로몬트리아 등 관계 회사도 3∼4개 거느리고 있다.



론스타와 마찬가지로 서버러스는 한국에 넘쳐나던 부실 채권 정리 사업에 뛰어들어 재미를 보았다. 세 차례에 거쳐 자산관리공사와 광주은행·한국종금·대투증권·대농으로부터 부실 채권을 인수했다. 대개 모건스탠리나 골드먼삭스 등과 함께 컨소시엄을 꾸려 입찰에 참여했다. 최근 들어 국내 부실 채권 정리가 마무리되어 수익 매력이 떨어지자, 금융기관 인수로 눈을 돌린 것도 닮은꼴이다.
서버러스가 국내에서 직접 자본 참여 사업에 나서는 것은 조흥은행 인수 건이 처음이다. 최현재 서버러스코리아 대표는 “앞으로 가계 부실 채권 시장에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서버러스는 최근 활발하게 아시아 금융을 공략하고 있다. 여기에는 댄 퀘일 고문의 역할이 컸다.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부시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부통령을 지낸 퀘일은 서버러스가 신규 시장을 공략할 때면 항상 현지에 나타나 로비를 펼치곤 했다.
댄 퀘일이 서울을 찾은 것은 2000년 2월이었다. 당시 허경만 한국자산관리공사 부사장 등 서버러스의 업무 상대자들을 만났다. 그는 아시아 시장 가운데서도 한국과 일본에 18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댄 퀘일 전 미국 부통령, 로비스트로 맹활약



서버러스는 최근 한국 금융기관 인수에 신경쓰는 것과 동시에 일본 은행 인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2002년 11월 말에는 일본 아오조라 은행을 인수하려다 실패했다. 이미 아오조라 은행 지분 20%를 가지고 있는 서버러스는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보유하고 있던 아오조라 은행의 지분 49%를 인수해 대주주가 되려고 했다. 손정의 회장은 신규 인터넷 통신 서비스 확장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지분을 매각하려 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좌절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5일 스미토모 은행은 소프트뱅크가 가지고 있던 아오조라 은행 지분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일본 은행이 또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는 꼴을 보기 싫었던 정치가들과 규제 당국이 서버러스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라고 썼다.



손정의라는 이름은 조흥은행 매각 작업에도 등장한다. 최근 손정의씨가 뉴브리지가 가지고 있던 제일은행 지분 15%를 매각했고 이를 서버러스가 인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버러스가 뉴브리지의 대주주라는 보도도 잇달았다. 제일은행 코헨 행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서버러스라는 회사는 제일은행에 어떠한 지분도 가지고 있지 않고 단지 뉴브리지에 투자하는 회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혼란에 대해 서버러스 코리아 최현재 대표는 “뉴브리지와 직접 지분 관계는 없다. 다만 조세 회피 지역에 소재한 뉴브리지 모회사의 지분 15%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라고 정리했다.



조흥은행 매각소위원회는 12월23일 회의를 열어 논의를 계속한다. 헐값 시비 등 몇 가지 논란이 있어 공적자금위원회가 차기 정권에 가서야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서버러스 컨소시엄은 조흥은행 지분의 51% 인수를 내세웠고, 신한은 정부가 가지고 있는 82% 지분 전량 인수 의사를 밝혔다. 가격은 주당 5천∼6천 원대로 정부 예상보다는 낮은 편이다.
론스타와 마찬가지로 서버러스도 미국계 자본이라는 점이 인수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반미 감정이 한국 정부로 하여금 서버러스에 조흥은행을 맡기는 데 주저하게 만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흥은행 매각 작업이 서울은행 매각 건과 차이가 있다면 토종 은행 대 외국 자본과의 대결이 아니라 유럽 자본과 미국 자본의 대결이라는 점이다. 신한금융지주회사의 대주주는 유럽계 자본인 BNP파리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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