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정보팀을 누가 막으랴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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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불똥 막기’ 전방위 활약…“검찰 발 묶을 시나리오도 준비”



2월14일 SK 임원이 검찰에 소환되었다. SK그룹은 참여연대 고발에 따른 의례적인 수사라고 생각했다. 17일 오전 10시30분. SK 본사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경비원에게 수갑을 채우고 나서야 SK는 큰일이 터진 줄 알았다. 삼성은 SK 임원이 소환되자 재벌 개혁의 신호탄이 올랐다고 직감했다. 14일 평검사 회의에서 검찰 개혁 목소리가 나오자 검찰의 칼날이 삼성에까지 미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삼성 정보팀은 서초동 법조 타운과 여의도를 중심으로 부산하게 움직였다.


SK 정보팀은 언론 보도를 뒤따라가기 바빴다. 이에 비해 삼성 정보팀은 한 발짝 빨리 움직였다. 검찰의 행보를 미리 탐지해냈고, 삼성에 불이 번지지 않도록 방화벽을 쌓았다. 19일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 만난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영감(국회의원) 반, 삼성맨 반이다”라고 말했다.
이미 삼성은 검찰의 칼날을 피할 대비책이 섰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한 정보기관원이 밝힌 시나리오는 대강 이렇다. “우선 SK 수사에 검찰의 발을 최대한 묶어둔다. 신정부측과 채널을 개설해 검찰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검찰 인사에 영향력을 미쳐 검사들을 분산시킨다. 수사 라인에 있는 검사는 승진을 시켜 지방이나 한직에 보낸다. 그리고 삼성에 우호적인 인사를 수사부에 투입해 수사를 마무리한다.


동시에 벌금을 내거나 장학재단 기부라는 큰 선물 보따리를 풀어 일을 마무리한다.” 우연인지 몰라도 검찰은 손대지 않겠다던 SK의 분식 회계를 수사하고,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은 정보통신부장관 임용 제의를 받아들였다.
삼성이 가동하는 정보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 기업의 정보맨은 “삼성은 교과서다. 삼성에 비하면 다른 대기업은 참고서 수준에도 못 미친다”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금융실명제를 비롯해 김일성 주석 사망·황장엽 비서 망명 소식 등을 먼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삼성그룹의 막강한 정보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정보의 사령탑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내의 전략지원팀이다. 전직 국정원 출신 ㅂ전무가 팀장으로 있고, 10여 명이 정보 수집을 전담한다. 팀원 가운데는 전직 정보기관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맥이 두텁고 사교력이 있는 공채 출신들이다. 이들은 정·관계는 물론이고 언론·학계·검찰·경찰·군·국정원 등 사회 전분야에서 정보를 훑는다. 최근 삼성 정보팀은 시민단체와 인터넷 언론에 대한 취재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검사 출신 주축으로 사전 정보 수집 주력


구조조정본부에 속한 기획팀·홍보팀·법무팀이 정보팀을 다각 지원한다. 최근 두드러지는 것이 법무팀의 활동이다. 법무팀은 검찰 내 고급 정보를 탐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법무팀에 소속된 변호사 7명은 대부분 검사 출신이다. 법무팀장인 김용철 전무는 서울지검 특수부 출신이며, 이현동·엄대현·김연호·이기옥 변호사도 검찰 출신이다.


삼성 계열사 정보팀도 일상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한다. 계열사 별로 2∼3명씩 정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 등에서 스카우트된 관료 출신 삼성맨들이 위기 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이밖에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 정책 등 굵직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때로는 보고서를 통해 여론을 삼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삼성그룹 정보팀이 경계 경보를 발하면 구조조정본부 내 대외협력단이 움직인다. 일종의 로비 전담 조직이다. 형식적으로는 팀장 밑에 10여명을 둔 조촐한 조직이지만, 전 계열사 임원급 간사와 차·부장급 1∼2명이 뒤를 받치고 있다. 대외협력단 총인원은 2백50∼4백명 수준이라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전언이다.


대외협력단의 힘은 삼성 특유의 ‘관리’에서 비롯한다. 삼성은 1년에 한 번씩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상대로 인맥 조사를 한다. 정치인·공무원·법조인·언론인 등 친분이 있는 사람을 써내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정보 라인을 찾기 위한 방법이다. 이 시스템은 현재 현대·SK·한진 등 대부분의 기업이 차용하고 있다. 인물 데이터 베이스를 바탕으로 삼성은 평소에 꼼꼼하게 인맥 관리를 한다.


인수위 경제분과에서 활동한 한 청와대 행정관은 “민주당 선배가 식사나 하자고 해서 갔더니 삼성 정보맨이 나와 있었다. 그가 며칠 후 생일이라고 도서상품권을 보내왔다”라고 말했다. 한 재경부 고위 관리는 삼성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서기관 시절 미국에 유학 갔을 때 조깅을 하다 만난 중년 남자가 내 유학 생활에 여러 번 도움을 주었다. 유학에서 돌아와 몇 년이 지난 후 그 삼성 직원은 내 담당자가 되어 회의에서 가끔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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