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덕에 ‘대박’ 나팔 부는 PPL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4.08.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리의 연인> 등 PPL 상품 ‘불티’…간접 광고, 영화·게임에도 적극 활용
LG패션은 요즘 드라마 <파리의 연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파리의 연인> 주인공 박신양씨에게 의상 20벌을 협찬했는데, PPL 효과로 인해 매출이 17% 늘었기 때문이다. 박씨가 5년째 모델을 하는 마에스트로 홈페이지 접속자도 4배 증가했다. 서영주 LG패션 과장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다. 신사복 고객인 30~50대가 보수적 구매 행태를 보이는데, 이 정도까지 PPL 효과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PPL(Product Placement)은 광고주가 제작진이나 배우에게 일정한 대가(비용·물품 지원)를 지불하고, 영화나 드라마 등에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를 드러내 상품을 홍보하는 판촉 전략이다. 외국에서도 초창기에는 소품 협찬 정도였는데, 영화 에서 외계인이 먹는 초콜릿 과자가 영화 개봉 3개월 만에 매출이 65%까지 늘어나면서 기업의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1991년 개봉한 <결혼 이야기>에 삼성전자가 가전제품 일체를 제공하고 영화표를 구입한 것이 최초로 알려져 있다.

최근 기업들이 활발하게 PPL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최근 팬택앤큐리텔도 PPL 마케팅으로 재미를 짭짤하게 보았다.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씨가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하면서 일명 ‘한기주 폰’이 하루 천개가 넘게 팔리고 있다. 7월 휴대전화 내수 시장이 6월과 비교해 10.2% 감소했는데, 팬택앤큐리텔은 PPL 효과로 점유율이 소폭 상승했다. 휴대전화 출하 대수도 6월과 비슷한 1백40만대를 유지했다. 팬택앤큐리텔 관계자는 “매출 상승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 브랜드가 회자되는 효과도 중요하다. PPL이 텔레비전 광고보다 효과가 큰 것 같다”라고 말했다.

CJ는 인삼 건강음료 ‘한뿌리’가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드러나면서 PPL 효과를 보았다. 그 프로그램에서 ‘국민 약골’ 이미지인 개그맨 이윤석씨가 이 음료수를 마시고 대결에서 이기는 장면이 1회 나왔는데, 이후 시음 행사에서 “이게 이윤석씨가 마신 음료수입니까?”라고 묻는 손님들이 늘었다. CJ의 마케팅 담당 정성문씨는 “PPL 이후 매출이 많게는 50%까지 늘었다”라고 말했다.

현재 뉴질랜드에서 촬영 중인 <남극일기>의 주인공 송강호씨의 오른쪽 가슴에는 아시아나항공 로고가 붙어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제작진 1백20~1백30명의 항공료 50%, 수화물 비용 전액을 지원했다.

자동차 시장에서 PPL 효과는 막강하다. 볼보는 <파리의 연인> 이후 후속 드라마가 연달아 히트를 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미 주인공 강동원씨가 볼보 자동차를 타는 것으로 예약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PPL의 경우, 외제차는 주인공에게, 국산차는 주인공의 아버지 등 주연급 조연들에게 배치되는 포트폴리오를 짜는 경우가 많다. 외제차 업체는 한 대로 도드라지게 보이고 싶어하고, 국내 자동차 업체는 여러 차종을 여러 번 드러내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볼보만 해도 드라마 <회전목마>에 차량 협찬을 했는데, 방송 이후 한 해 판매 예상분이 전부 예약되었다. 볼보 홍보를 담당하는 한수아씨는 “PPL을 하면 딜러들이 전화가 많이 온다며 좋아한다. 일본에서도 <겨울연가>에서 배용준씨가 타고 나오는 포드 익스플로러가 대박이 났다. 경쟁사가 하는 이상 PPL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게임에서도 PPL을 볼 수 있다. 기능성 음료 ‘비타 500’을 만드는 광동제약은 7월6일부터 8월3일까지 온라인 게임업체 (주)그라비티와 PPL 마케팅을 벌였다.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에 ‘비타 500’ 병뚜껑을 숨겨 놓고, 유저들이 이 병뚜껑을 마치 게임 아이템처럼 수집하게 만드는 이벤트를 한 것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10~20대를 대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현대오일뱅크는 게임 <시티레이서>(www. ctracer.net)에서 PPL을 한다. 이 게임은 서울 시내를 배경으로 한 자동차 레이싱 게임인데, 게임 안에서 현대오일뱅크 주유소와 플래카드를 볼 수 있다. 유저는 게임 도중 현대오일뱅크 주유소에 들어가 기름을 넣어야 한다.
PPL 마케팅이 활발하다 보니 PPL을 대행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PPL 전문 대행 업체 ‘PPL&COMPANY’의 김동수 대표는 “재작년만 해도 대행사가 10개 안팎이었는데 현재는 40개 업체가 활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국내 PPL 시장은 비용 기준으로 방송 대 영화가 90 대 5 비율이다. 방송쪽 PPL 비용이 영화보다 훨씬 비싸다. 나머지 5%는 뮤직비디오와 게임이 차지하고 있다.

가전·이동통신·의류·음료·주류·자동차·아파트(건설) 쪽의 PPL 경쟁이 심하다. 물품을 지원하는 가구 협찬도 경쟁이 심한 편이다. 경쟁사가 PPL을 하면 방어 차원에서라도 뛰어드는 회사가 많다. 각 방송사의 드라마에 나오는 벽지와 장판도 PPL 상품이다.

김동수 대표는 “그동안 시청률이 50% 이상 올라갔던 드라마가 <허준> <야인시대> 등 시대물이었는데, 오랜만에 현대물이 히트했기 때문에 <파리의 연인>의 PPL이 주목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대표는 “PPL이 뜬다니까 광고주들이 노골적으로 제품 설명을 하기를 원하지만, 결과는 다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파리의 연인>에서 한 휴대전화 업체 PPL을 대행했는데, 여자 조연이 휴대전화 사용법을 구구절절 설명한 휴대전화가 아니고, 박신양씨가 ‘말없이’ 사용하던 휴대전화가 대박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한국 PPL 시장도 성장기에 들어섰다. 기업도 무작정 따라 하지만 말고, 차분하게 PPL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파리의 연인> <황태자의 첫사랑>이 간접 광고로 중징계를 받으면서 무분별한 PPL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PPL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PPL을 소화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조연에게 제품을 설명하게 해 ‘PPL 전문 배우’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풀하우스>에서는 가을 신상품을 겨냥한 듯 폭염 속에서 배우들이 긴팔 옷을 입고 나온다. 상대적으로 제작비 부담이 큰 외주 제작사들이 PPL을 위해 ‘재벌 2세’나 부유층 주인공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예종석 교수(한양대·경영학부)는 “PPL은 특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효과가 높다. 최근 한 드라마를 보니까 녹차 가루를 시아버지에게 타주면서 건강에 좋다고 권하는 장면이 있던데, 이건 오버다”라고 말했다. 시청자가 PPL을 광고라고 느끼는 순간, 효과가 떨어지고 오히려 반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