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은 못 믿겠다 통합 특별법 제정하라”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3.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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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피학살 민간인 유족들 무기한 농성
노무현 대통령은 5월1일 텔레비전 토론에서 언론관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토론회는 전반적으로 뜨뜻미지근했으나 언론 논쟁만은 불꽃 튀는 공방전을 벌인 결과이다. 나는 토론회를 통해 드러난 노대통령의 언론관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조·중·동 길들이기’는 사실과 다르다. 나(노대통령)는 언론을 박해할 수단을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둘째, 내가 언론의 박해를 받았다. 선거 전날 정몽준 후보와의 공조가 파기되자 <조선일보>는 이를 보도한 무가지를 어마어마하게 뿌렸다. 일부 언론이 어느 정권에 대해서 지금처럼 비판한 적이 있나. 대통령 대접을 한 일 있나. 얼마나 나를 괴롭혔느냐.

셋째, 신문은 더 이상 국민과 법 위에 군림하고 특권을 누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신문고시는 공정거래법상 신문만 예외적인 특권을 누리고 있어 언론 개혁 차원이 아니라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넷째, 방송을 편애하는 것이 아니다. 5공 청문회의 스타로 떠오른 것 등 영상 매체의 위력이 없었으면 노무현이 어려웠으리라는 점을 말한 것이다. 다섯째, 나는 기자실을 폐쇄하고 공무원의 언론 접촉을 금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유력 언론을 중심으로 한 기자단을 해체하고 인터넷 언론까지도 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대통령의 언론관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인터넷 매체’에 대한 애착일 것이다. 그가 인터넷 언론이 출입할 수 있도록 유력한 언론 중심의 기자단을 해체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인터넷 공중(公衆)인 네티즌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이 출입기자제를 ‘기자 등록 신청제’로 바꾸면서 인터넷 매체를 특대한 것은 이에 연유한다.

신청 자격자는 ①한국신문협회 ②한국방송협회 ③한국기자협회 ④인터넷신문협회 ⑤인터넷기자협회 ⑥한국사진기자협회의 회원사가 추천하는 기자로 한정하고 있다. 온라인 관련 단체인 인터넷신문협회와 인터넷기자협회가 일거에 편입된 것은 형평상 예외적인 배려이다.

인터넷은 언론학에서 보면 아직 낯선 것이 많은 존재이다. 어떤 학자는 인터넷이 지배하는 ‘불확실성의 법칙’을 말한다. 그 미래의 불가해함을 가리켜 ‘인터넷의 미궁’이라는 말도 쓴다. 미국 언론학자 데이비브 에이브러햄슨은 인터넷의 진화가 ‘보이는 손’에 의해 좌우된다고 가정했다.

‘보이는 손’은 인터넷 속성을 압축한 말이다. 기존 경제학은 인간의 욕망은 무한정하나 재화는 부족하다는 점을 전제한다. 인터넷 경제학은 이와 정반대 내용이다.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내려받기를 해도 자원(정보)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는 인터넷의 장래는 고도의 경제 집중과 정부의 규제 감소로 나아갈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과연 인터넷 뉴스는 일방적으로 기존 매체에 영향을 미칠까. 아직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인터넷 뉴스가 기존 매체의 뉴스 형태나 내용을 따라 가는 현상은 없는가 하는 물음이 나온다. 미국 켄트 대학 정보디자인연구소(IDL)는 인터넷 시대에 오프라인 신문의 ‘문서 기반 뉴스’가 인터넷의 ‘이미지 기반 뉴스’보다 경쟁력이 있음을 발견했다. 인터넷 뉴스의 가독성은 이미지 중심의 정보를 전개하는 것보다 형식으로 정보를 줄 때 훨씬 높다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 뉴스가 신문 뉴스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신문 뉴스 방식을 채용한다는 말이다(김사승 논문 ‘인터넷이 신문저널리즘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 연구’ 참조).

한국의 네티즌 세력화는 세계 초유의 수준이라는 평가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른바 인터넷에 연결된 ‘로그인 대통령’(영국 <가디언>)이다. 노대통령은 온라인 매체를 오프라인 매체와 동렬에 세워 정보 공급 평준화를 꾀한다. 노무현식 ‘인터넷 언론 개혁’은 아직 실험 단계이다.
"내가 집권하면 민간인 학살 문제는 반드시 그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유족들과 가진 면담에서). “그 문제는 개별적인 처리보다는 통합 특별법을 제정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강금실 법무부장관, 취임 직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전후 국가 공권력이 전국 각지에서 불법으로 저지른 민간인 학살 사건들에 대해 노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갖고 있는 사태 인식의 한 자락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문제는 새 정부에서 쉬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백만 유족과 관련 시민·인권 단체 인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무엇보다도 국회가 무성의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해결 의지에 대해서도 반신반의다. 과거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다가 고작 개별 특정 사건에 대한 특별법 처리로 전국 각지의 유족들에게 깊은 상처만 안겼다는 것이다. 1996년과 1999년에 각각 제정된 거창양민학살사건 관련 특별법과 제주 4·3사건 관련 특별법이 그것이다. 전국의 학살 사건 유족들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가 노대통령 취임 직후인 2월27일부터 국가인권위원회 11층에 들어가 통합 특별법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시사저널>이 1993년에 발굴해 보도한 문경 석달동 양민학살 사건 유족회장 채의진씨(67)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비슷한 시기에 국가 공권력에 의해 혈육을 잃은 전국 각지의 유족들과 함께 농성하고 있는 채씨는 역대 정부와 국회의 태도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본다.
문경 석달동 민간인 학살은 주민 86명이 대낮에 길 가던 군인들에게 집단 학살당한 사건이다. 1949년 12월24일 저질러진 이 만행으로 젖먹이 5명을 포함해 남녀노소 86명이 즉사했다. 사건 직후 이승만 정부는 신성모 국방부장관을 현지에 보내 겉으로는 위로한 뒤 공비들이 나타나 총살한 것으로 둔갑시켰다.

역대 정부는 줄곧 외면해 왔지만, 유족들은 사건의 진상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마침내 1998년 말 기밀이 해제된 미군 극동군사령부 문서를 확보함으로써 당시 사건을 저지른 군부대와 지휘관 명단이 <시사저널>을 통해 최초로 공개되었다. 1999년 국방부 실무자가 현지 답사까지 해 문경 석달동 학살 사건을 해원해 주어야 할 사건이라고 보고했지만, 정부는 끝까지 모르쇠였다.

그러나 정부는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제주도 4·3사건에 대해서는 개별 특별법을 제정했다. 끔찍한 학살 현장에서 일가족을 잃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채의진씨는 당국의 불합리한 법 처리를 지켜보면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10여 년간 진상 규명 운동을 벌이면서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유족이 너무도 많다는 것도 알았다. 한국전쟁 전후 야만적인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비무장 민간인은 전국에 걸쳐 약 100만명. 현재 연락이 닿는 유족들은 천여명이다.

이들은 통합 특별법만이 한국전쟁이 남긴 비극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며 시민·인권 단체 인사들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도움으로 2000년에 통합 특별법안을 만들었다. 국무총리 소속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고 광역자치단체 별로 진상규명실무위원회를 구성하여 한국전쟁 전후 지역 별로 발생한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한 조사와 진상 규명,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명예 회복을 추진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격이다. 국회의원 47명이 공동 발의한 이 법안은 국회 행자위에 제출되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정기국회에서 행자위는 법안 처리를 국회 운영위에 떠넘김으로써 회기를 넘겼다.

이같은 국회의 무성의한 태도에 분노한 유족들은 새 정부와 국회가 말만이 아니라 실천으로 적극 나서 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유족과 함께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범국민위 이창수 상황실장은 “의문사 관련 특별법이 유가협 부모들의 4백여일에 걸친 거리 농성의 결과물이었듯이, 피학살자 유족들이 50여년 만에 자기 문제를 스스로 사회 이슈화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유족들의 움직임에 대해 최근 민변과 전국 법과대 교수 단체는 각각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성명을 냈다. 민변은 ‘극한 대립 상황 또는 전쟁 시기라는 이유로 정당한 법 절차 없이 100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법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범죄 행위’라면서, 국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실체를 밝혀 다시는 그런 범죄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 법대 교수 단체인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소속 교수 71명도 성명을 내고 “국회는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통합 특별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각 시민·사회 단체와 인권단체들도 유족과 범국민위의 인권위 농성을 지지하며, 각계 인사 1천인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53년 동안 남한 내부에서 곪을 대로 곪아온 상처를 노무현 정부가 제대로 치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전쟁 전후에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혈육을 잃고 살아온 유족은 약 5백만명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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