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장, 머리카락 보인다
  • 나권일 기자 (nafrsisapress.com.kr)
  • 승인 2003.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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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사장+노조 출신 부사장 임명설’ 퍼져…내부 발탁 가능성도
한국방송공사(KBS) 사장 인선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지난 3월14일, KBS는 임시 이사회를 열어 3월19일까지 각계에서 추천을 받아 사장 후보를 결정키로 했다. KBS 사장을 이사회가 단독 결정하지 않고 공개 추천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BS 사장은 이사회(이사장 지명관)가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대개 정권이 ‘낙점’하면 이사회가 ‘추인’하는 형태로 선임되어 왔다.

사장 선임 방식이 바뀐 것은 KBS 노조(위원장 김영삼)가 “해직 언론인 서 아무개씨가 사장에 내정되었다”라며 ‘낙하산 인사’를 비판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KBS 노조가 밀실 인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자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신문 게시판에는 KBS 노조를 ‘개혁에 저항하는 방송계의 평검사들’이라고 꼬집는 글이 올라왔다.
시민단체들은 KBS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3월11일,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과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등 시민단체 인사들과 KBS 노조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사회가 시민단체와 언론학자 등을 포함한 ‘사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사장을 선임하라고 요구했다. KBS 사장은 아무리 개혁적인 인사라고 할지라도 절차의 정당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사회는 결국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은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문호 개방’을 결정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KBS 사장 후보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10명 안팎이다. 해직 언론인으로는 서동구 전 한국언론재단 부이사장과 정태기 전 교보정보통신 사장,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 등이 거론되었다. 사내 사정에 밝은 인사로는 이형모 전 KBS 부사장, 최동호 전 KBS부사장, 이춘발 전 KBS 도쿄 특파원, 황규환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사장, 노동운동가인 김금수 현 KBS 이사가 물망에 올라 있다. 네티즌 일부는 정연주 <한겨레> 논설고문과 강준만 전북대 교수를 꼽았다.
시민단체 인사들과 노조는 신임 사장의 조건으로 개혁성·도덕성·전문성을 들고 있다. 특히 1998년 노사가 합의해 <이제는 말한다>라는 개혁 프로그램을 제작해 놓고도 끝내 방영에 실패했던 노조는 정치권에 휘둘렸던 임원들에 대한 ‘인적 청산’을 감행할 후보를 고대하고 있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현재 KBS 신임 사장이 누가 될지는 불투명하지만 크게 두 가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외부 개혁 인사(사장)+내부 임원(부사장) 구도이다. 이사회가 사장 추천제를 도입했지만 방송에 대한 전문성과 능력을 고루 갖추어야 할 사장 대상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이기 때문에 이미 이사회가 청와대의 분위기를 파악해 한두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방송계 일각에서는 KBS 이사회와 노조가 서로 교감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개혁 사장+노조 간부 출신 내부 부사장 정도로 이미 교통 정리를 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KBS 노조는 이같은 주장을 부인했다. 김영삼 노조위원장은 “노조는 특정인을 염두에 둔 적이 없다.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바람직한 사장 후보 여러 명을 선정하고 검증해 이사회에 추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 안팎에서는 ‘ㅅ사장+ㄱ 부사장’ 등 다양한 사장·부사장 조합이 흘러다니고 있다.

다른 하나는 현직 인사가 발탁될 가능성이다. 3월14일 정찬용 인사보좌관은 공기업 인사에서 정치권 인사를 철저히 배제함을 기본 원칙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업무 추진 능력과 개혁성을 갖춘 사람이 해당 기관에 있을 경우 내부에서 발탁하겠다는 얘기다. KBS 일각에서는 내부에 사장을 맡을 만큼 개혁적인 인물이 없고, 내부 인사를 사장이나 부사장으로 발탁하더라도 대선 기간에 정치권에 줄대기를 했던 ‘정치 기자’들은 제외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네티즌들은 KBS 사장 선임 논란을 거치면서 공영 방송 노조의 권력화를 우려하는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KBS 노조원인 ㄱ씨는 “권력도 손을 떼어야 하지만 ‘권력화한 노조’가 경영진 선임에 지나치게 개입해서도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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