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갈래 길 앞에 선 노사모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3.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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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 대선 이후 시민단체·개혁정당·지역모임에서 ‘따로 또 같이’ 활동
지난 3월31일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사무실 전화기가 끊임없이 울렸다. 이 날 오전 ‘문짝’ 문성근씨가 탈퇴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명짱’ 명계남씨도 오후에 노사모를 떠났다. 노사모 홈페이지 게시판은 동반 탈퇴하겠다는 글과 두 사람을 비난하는 글로 술렁였다.

노사모 정체성에 대한 논란도 다시 점화하고 있다. 지난 1월16∼18일 온라인 투표에서 과반수가 노사모 조직 유지를 지지했지만 해체론자도 37%에 달했다. 최근 노사모가 파병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노사모 회원 3명의 대선 전후 행보와 요즘 생각을 통해 노사모의 앞날을 내다보았다.

황명필씨(31)는 노사모를 계기로 인생 항로를 바꾼 사람이다. 그가 노사모에 처음 가입한 것은 2000년 봄. 노무현 후보가 총선에서 떨어진 후 노무현 홈페이지에 격려와 회한의 글이 넘쳐날 때 황씨는 ‘다시 노무현씨가 일어설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라는 글을 남겼다. 2년 뒤 민주당 국민 경선 때 떠오르는 노무현씨를 보고 황씨는 예전의 약속을 되새겼다. 창원의 한 증권사 지점에서 일했던 그는 일과 이후 틈틈이 지역 노사모 활동에 참여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전국 유세장을 누볐다. 12월19일 선거 당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서울 광화문에 와서 동지들과 함께 개표 방송을 지켜보며 감격했다.

대선이 끝난 지 100일. 황명필씨는 4월19일 출범을 앞두고 있는 시민단체 ‘국민의 힘’에서 정치개혁분과 간사를 맡고 있다. “선거가 끝나고 뭘 할까 고민했다. 지역 감정·언론 개혁 문제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데 노사모라는 이름 밑에서는 일을 추진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노사모 해체 여부를 묻는 온라인 투표 때 해체 쪽을 지지했다.

국민의힘에는 옛 노사모 지역 대표를 비롯해 노사모 회원 다수가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황명필씨는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보면 국민의힘 회원 가운데 40%는 비노사모 회원이라며 국민의힘과 노사모를 동일시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김연홍씨(32)는 대선 이후 정당 활동에 나선 경우다. 그도 황명필씨처럼 2000년 여름 노사모에 가입해서 2002년 민주당 경선 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노사모 홈페이지를 만든 사람 중 한 명이 김씨다. 벤처 회사 대표이사인 그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 8만명이 넘는 노사모 회원 데이터 베이스를 관리했다.

올해 2월 말 김씨는 개혁적 국민정당(개혁당)에 가입했다. “노사모의 정체성은 역시 팬클럽에 있다. 구체적인 정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아무래도 정당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는 서울 구로 을 지구당 건설을 위해 애쓰고 있다. 10명이 모이면 지구당을 만들 수 있는데 지금까지 7명이 모였다. 김연홍씨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냉전·보수적인 사람들이 권력 일선에서 물러나는 모습이 제일 보기 좋았다”라고 말했다.

김연홍씨는 노사모는 팬클럽으로 계속 남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문성근씨와 명계남씨가 노사모를 탈퇴한 것에 대해 “노사모와 다른 사회운동이 대립되는 것이 아닌데 굳이 탈퇴까지 했어야 하나”라며 비판했다. 오영근씨(42)는 대선 후에도 노사모에 정을 붙이고 있는 사람이다. “노사모가 나에게 준 것이 두 가지 있다. 정다운 사람들, 그리고 인터넷 사용법이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음식점 주방장인 그는 2001년까지만 해도 완벽한 컴맹이었다. 2002년 민주당 광주 경선을 보고 PC방 아르바이트생에게 부탁해 노사모에 가입했다.

오씨는 1987년 6월 항쟁 때 거리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지만 그 후 특정한 소속이 없어 자신의 정치성을 표현할 통로를 찾지 못했다. 오씨는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노무현 의원에게 반했다. 이 때부터 노무현 팬이 된 오씨에게 노사모는 정치적 희망을 풀어주는 수단이자 목적이었다.

4월3일 오씨는 서울 송파 지역 노사모 새내기 환영회에 참석했다. 40명 가까이 모인 회원 가운데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온 가족도 꽤 보였다. 이 날 처음 얼굴을 선보인 새내기 회원이 6명이었다. 이 날 모임의 화제는 정치적인 이야기보다는 가벼운 담소가 주를 이루었다. 오영근씨는 다음날에는 강남 지역 노사모 정기 모임에도 갔다. 다음주에는 체육대회도 있다고 한다. 오영근씨는 “처음에는 노무현이 좋아서 노사모에 가입했는데, 지금은 노사모 회원들을 보기 위해 모임에 간다. 모임에 나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사모 존폐 투표 때 존속에 표를 던졌다.

문성근·명계남 씨가 노사모를 떠난 표면적인 이유는, 노사모가 홈페이지에 배너 광고를 싣는 수익사업을 펼친다는 계획 때문이었다. 현재 노사모는 한 달에 1천5백만원 가량 지출한다. 하지만 대선 이후 회비 납부율이 떨어져 요즘은 한 달에 9백만원 정도 걷히고 있다. 노사모는 사무실을 지금(38평)보다 절반 가량 작은 곳으로 옮겨 임차료 부담을 줄일 계획이다. 상근 직원 1명도 그만둔다.

노사모 차상호 대표는 “언론이 마치 대대적인 수익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도했지만 대기업 배너를 유치할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단지 벼룩시장 같은 것을 계획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차대표는 “광고 문제가 있기 전부터 두 분(문성근·명계남)은 탈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노사모 서울동부 대표일꾼(아이디:아라치)은 “노사모가 가지고 있는 8만 풀뿌리 대중의 에너지는 다른 조직이 도저히 흉내 내기 힘든 장점이다. 국민의힘이나 개혁당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나는 여기에 남기로 했다. 그들과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노무현 사랑은 견고하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노사모 회원 대다수는 이라크 파병에 대해 ‘나는 반대하지만 국가 지도자 처지인 노무현을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언론과의 갈등이나 인사 문제도 노무현 편을 들었다. 한 노사모 회원은 KBS 사장 인선을 왜 노조가 막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노사모의 앞날과 정체성에 대해 차상호 대표는 “노사모는 저수지와 같은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대선 이후에는 중앙보다 각 지역 중심으로 조직이 굴러가고 있다고 한다. 요즘 노사모는 ‘예비군’과도 같다. 평시에는 술자리와 등산대회로 전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동원령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다시 뭉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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