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 더럽힌 ‘성역 없는 성폭행’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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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교단에서도 사례 빈발…성서 자의적 해석·목회자 권위 앞세워 신도 유혹
사단이 난 곳은 시드니였다. 30대 여성 이 아무개 집사가 당한 일은 이른바 혼인빙자간음이다. 호주에 살고 있던 이집사는 호주에 선교사로 파견된 윤 아무개 목사의 집요한 ‘구애’에 시달렸다. 윤목사는 아내가 사명감이 없어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호소하면서 이씨에게 “하나님이 불행한 나를 위해 너를 두 번째 아내감으로 보내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꼭 맞추어 너를 만들어 놓으신 것 같다”라고 애원했다. 그는 또 부인과 사별할 위기에 처한 것처럼 이씨에게 말하기도 했다.

이런 윤목사를 안타깝게 여긴 이씨는 남편과 합의 이혼을 준비하는 등 윤목사와의 결혼에 대비했다. 그러나 차마 성적인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윤목사는 교단의 ‘사모용 스카프’ 등을 활용하며 결혼할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더니 급기야 2002년 2월 주일 예배 중에 이집사와의 혼인에 대해 간접적인 발언을 한 뒤, 그 다음날 성관계를 유도했다.

하지만 성관계를 맺고 나자 윤목사의 말이 달라졌다. “성혼서약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남편이 다른 아내를 두지 않겠다는 서약은 없더라. 너도 내 아내이고 사모도 내 아내이다.”

이후 이씨는 윤목사가 ‘단 한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던 자신의 말과 달리 다른 여성에게도 비슷한 행태를 보여왔음을 주위 증언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른 피해자가 “윤목사가 회개했다고 해서 용서하고 사건을 덮어두었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생겨 무섭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씨는 처음 호주연합교단에 문제를 제기했다.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윤목사가 한국으로 들어가자, 이후 이씨는 한국 교단과 경찰에 윤목사를 고소했다. 윤목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씨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며 이씨의 주장은 모두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씨 부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 초기에 양측의 고소는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기각되었다.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은, 이씨가 윤목사의 정액이 묻은 속옷을 찾아내고부터였다. 윤목사는 2003년 4월 말 구속되었고, 지난 6월27일 서울지검에 의해 강제 추행·혼인빙자위계간음죄·명예훼손·무고 등 네 가지 혐의로 기소되었다.
기소가 이루어진 지난 6월27일 이씨는 “성범죄보다도 그 일을 은폐하려는 것이 더욱 소름끼친다”라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윤목사는 이렇게 호언했다고 한다. “큰 교회 목사들은 여자 문제 한두 번은 기본이다. 김 아무개 목사 봐라, 장로들이 다 막아줬다. 어디 한국에서 해볼 테면 해봐라. 호주하고 다르다.”

실제로 한국의 교단은 피해를 호소하는 이씨에게 울타리가 되지 못했다. 교단측은 ‘사회법에 고소한 사건은 교단이 나서지 않는다’는 내규를 들어 결정을 유보했고, 급기야 검찰이 초기에 이씨의 고소를 기각하자 이를 좇아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교단에 사건 조사를 의뢰할 때부터 이씨를 도운 기독교여성상담소(소장 박성자)측은 지난 6월27일 ‘교회내 성폭력 예방 지침서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열어 이씨 사례를 포함해 그동안의 상담 사례를 공개했다. 상담소에 따르면 1998년 개소 이래 올해 6월 말까지 접수된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은 모두 91건.

이 가운데 목회자가 연관된 성폭력은 84건으로 강간이 50건, 성추행이 30건이었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이 가운데 고소가 이루어진 것은 모두 9건(교단 고소 3건 포함). 경찰에 고소한 경우 오히려 여성들이 명예훼손으로 맞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놀라운 사실은 정통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상담소 내 성폭력문제연구반 김상임 대표는 “오히려 사이비 교단의 사례는 2~3건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이른바 정통 교단에서 일어났다”라고 지적했다. 범행 장소는 당회장실·예배실·기도실 등 교회 안이나 기도원, 피해자의 집(심방), 여관 등 다양했다.

겉보기에 ‘화간(和姦)’ 형태를 띤다는 점도 특징이다.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종교 행위를 빙자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얼떨결에 말려들기 일쑤이고, 사후에도 성범죄를 당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강했다. 상담소에 신고한 이들은 그나마 문제 의식을 가진 경우이지만, 대부분 공소 시효가 지났거나 미처 증거를 챙기지 못한 상태였다. 유혹하는 논리는 다양했다. 안수 기도를 해준다며 성추행하기도 하고, 자신이 영적 아버지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주는 것이라며 “딸아, 딸아” 라고 부르면서 강간한 경우도 있다. 죄를 씻기 위해서는 거룩한 목회자와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사명을 받기 위해서는 첫 열매(처녀막)를 바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담임 목사에게 충성을 맹세케 한다며 목사의 와이셔츠에 입술 도장을 찍으라고 하기도 했다. 성관계한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한 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며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강요한 파렴치한 목회자도 있었다.

이들은 절대적인 목회자의 권위를 이용해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신도들을 유혹했다. ‘야곱이 사랑한 사람은 둘째 부인 라헬이었다. 너는 라헬처럼 목사를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듯 가장 소중한 것을 주의 종(목회자)에게 바치라.’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말이 교회 바깥에서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목회자를 주의 종으로 여기는 절대적인 신뢰 관계에서는 쉽게 거역하기 어려운 논리라고 지적한다.

기독교여성상담소는 교회 내 성폭력 사례와 예방책을 담은 지침서를 7월 말까지 마련해 배포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통 교단이 이를 수용할 만큼 문제 의식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김 아무개 목사는 “제대로 된 목사가 이렇게 자의적으로 성서를 해석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폭로하듯이 일을 진행하면 교회 전체가 선정적인 언론에 의해 거칠게 매도당한다”라며 사뭇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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