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용 백신 주사 따라 수은이 흘러든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3.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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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부제인 티메로살에 함유…식약청 “부작용 단정 못해”
서울 서대문에 있는 한 병원의 소아과 주사실. 이곳은 언제나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아이들 때문에 소란하다. 막 태어난 아기부터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주사를 맞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간호사와 부모 들은 진땀을 뺀다. 그래도 주사실 앞에는 예방 접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김선희씨(29)는 “애가 태어난 지 넉 달 되었다. 늦기 전에 접종해야 한다고 해서 생후 1주 만에 B형 간염 백신을 맞혔고, 지금도 종종 접종하러 병원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병원을 출입하는 부모 가운데 중금속이 자폐증의 원인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다. 현재 아기에게 투여되는 거의 모든 백신에는 중금속에 해당하는 수은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물질은 바로 티메로살(thimerosal)이다.

티메로살은 에틸 수은이 49.6% 함유된 일종의 방부제다. 백신은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것이 중요한데 티메로살은 용액이 오염되거나 부패하는 것을 막는다. 티메로살은 콘택트 렌즈 보존액으로도 잘 쓰인다. 현재 소수 수입품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개발되는 백신 가운데 티메로살이 함유되지 않은 것은 없다.
백신에 티메로살을 섞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사회문제화한 것은 최근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자폐증 급증 문제가 의학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지난 4년 동안 자폐 어린이가 매년 2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15년 사이에 634%가 늘어난 것이다. 애틀랜타 시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자폐 어린이가 10배 이상 증가했다. 왜 이렇게 자폐아가 늘어나는 것일까? 여러 설이 있지만 최근 대두하고 있는 가설은 수은 중독이 자폐증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백신을 맞는 아기는 생후 18개월까지 237.5㎍(마이크로그램)의 수은에 노출된다. 199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유아들이 맞는 백신의 수은 함유량이 성인 기준치보다 높다고 경고했다.

2002년 4월 미국 조지아 주에서 자폐증 환자를 둔 열여덟 가족이 백신 제약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올해 5월5일 미국 로욜다 대학에서 열린 자폐증 학술대회에서 켄터키 대학 화학과장 보이드 헤일러 박사는 티메로살이 자폐증의 원인이라고 단언하면서 정부가 관리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폐증의 원인으로 수은 중독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수은 중독자의 증세와 자폐증 환자의 증세가 유사하다는 점을 꼽는다. 또 수은 함유 백신 사용량 증가 추세와 자폐증 환자 증가 추세가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자폐증 환자들은 중금속을 체내에서 처리하는 MT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자폐증 환자 월 레드우드 군(9)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처음 태어났을 때는 정상 어린이였다가 다섯 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그의 머리카락을 조사해 보니 하루 허용치보다 1백25배가 많은 수은이 발견되었다. 그는 살면서 수은에 노출될 기회가 없었다. 단지 생후 2개월 때부터 백신을 맞은 것을 빼고는.

아직 수은 중독과 자폐증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100% 밝혀진 것은 아니다. 중금속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 몸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인과 관계를 빠른 시간 안에 밝히기가 힘들다. 현재 미국 의회는 자폐증 어린이가 급증하는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백신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상정해 놓고 있다. 이미 미국소아과학회는 1999년에 ‘(티메로살이 유아에게 해롭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티메로살을 백신에서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미국 몇몇 주에서는 티메로살 사용을 아예 금지했다.

미국 법정과 의회에서 티메로살 사용이 논란이 되고 있는 반면, 미국보다 티메로살을 더 많이 쓰고 있는 한국은 조용하기만 하다. 서울 방배동에 살고 있는 최 아무개씨는 몇 개월 전 아이를 출산했다. 티메로살의 위험성에 대해 들은 최씨는 ‘내 아이에게는 수은 없는 백신을 주겠다’고 작정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의사들이 권하는 모든 백신에는 티메로살이 함유되어 있었다. 소아과 의사는 티메로살의 성분조차 몰랐다. 최씨는 인터넷을 뒤지고 아는 의사에게 수소문하는 등 ‘맹모삼천지약(藥)’ 끝에 겨우 수입 백신 ㅋ 제품을 입수해 아이에게 접종했다. 와중에 몇 번은 수은이 함유된 백신을 맞혀야만 했다. 최씨는“티메로살이 든 백신을 아이에게 주기 싫어서 생후 100일 동안 주사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더 버틸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서대문의 한 병원 주사실에서 만난 김선희씨는 “백신에 수은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내 아이에게 맞히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걱정했다.유아는 생후 1주부터 16세에 이르기까지 B형 간염·BCG·DTaP·폴리오·일본 뇌염 등 15차례 가량 백신 주사를 맞는다. 소아용 백신 종류는 스물여덟 가지이며, 시장 규모만도 2001년 기준으로 1천5백9억원에 달한다. 티메로살 함유량은 제품에 따라서 다양하다. 예를 들어 VZIG 같은 수두용 백신에는 1mg 당 0.1mg의 티메로살이 들어 있다. 식약청 이승훈 사무관은 “현재 국내 백신의 티메로살 함유량은 평균 0.01%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티메로살이 아예 없거나 0.0004%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과 유럽은 티메로살을 전면 금지하지는 않지만 절반 이상으로 줄이는 분위기이다.
현재 ㄴ 제약회사에서 티메로살이 함유되지 않은 간염 백신을 개발해 식약청 안전성 검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경쟁사인 ㅇ회사에서도 티메로살이 섞이지 않은 약품을 연구 중이다. 다른 제약회사의 한 관계자는 “약품 개발이나 마케팅에는 사회적 압력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요구가 있으면 안 만들 리 없지만 아직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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