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스스로 무덤을 팠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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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 시위’로 우호 세력 잃어…“정치권·수구 언론의 음모” 항변
7월 말까지만 해도 한총련과 정부는 허니문이었다. 검찰이 한총련 수배자 79명에 대해 불구속 수사 방침을 밝힐 때만 해도 한총련의 이적성 논란이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허니문은 거기까지였다.

불화는 8월7일 오후 4시55분, 몸에 태극기를 두른 대학생들이 경기도 포천군에 있는 미군 2사단 로드리게스 종합사격장 안으로 뛰어들면서 시작되었다. 한총련 소속 대학생 12명은 훈련장 안쪽으로 2백m 넘게 진입해 성조기를 태웠다. 그리고는 막사 인근에 있던 N2 브래들리 장갑차에 올라가 ‘전쟁 반대’ ‘미군 철수’ 구호를 외쳤다. 한총련 소속인 한 대학 총학생회장은 “이번 시위는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전쟁 연습을 하는 미군 스트라이커 부대를 대외에 알려 전쟁을 막아보자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형태의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군 훈련 장면과 미군 장갑차 위에 올라간 대학생들의 모습이 그대로 언론에 보도되자 주한미군이 발끈하고 나섰다. 주한미군은 성명을 통해 “한국 당국이 시위 가담자들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강력하게 처벌해 줄 것을 기대한다”라고 촉구했다. 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도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에게 “학생들이 점거한 장갑차에는 실탄이 장전돼 있었다. 오발 사고라도 났다면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일어났을 것이다”라며 항의했다.

미군의 처벌 요구를 받자, 정부를 비롯한 정치권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고 건 국무총리는 관련자 엄중 처벌을 강조했고, 이어 주한미군 지휘관 초청 만찬 간담회를 열어 정부의 단호한 의지와 경비 대책을 설명했다. 그동안 한총련에 포용정책으로 일관하던 노무현 대통령도 “동맹국한테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라며 엄정 처리를 지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유감 성명 발표 직전까지 갔다. 외교부·국방부·검찰·경찰도 분야 별로 한총련을 질타했다. 한 발짝 나아가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최근 한총련 ‘통일선봉대’에게 지구당 현판을 빼앗기거나, 현판이 ‘망나라당’ ‘당나라당’으로 바뀌는 등 치욕을 당한 터였다.

이에 한총련은 정치권과 수구 언론이 한총련 죽이기에 나섰다고 항변하고 있다. 미군 기지에 들어가 성조기를 불태운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이를 크게 문제 삼는 것은 8·15 민족 공동체 행사의 의미를 훼손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총련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대학생들이 병사들과 민간인의 생명을 위협했다는 주한미군의 주장은 궤변 중의 궤변이다. 대북 전쟁 준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제16기 범청학련 ‘통일선봉대’ 총대장을 맡고 있는 황 선씨도 “전쟁터 같은 훈련장에 뛰어들어 중화기를 맨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 절박함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론은 한총련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운동권 선배인 386 의원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한총련을 비난하고 나섰다. 심지어는 통일운동 세력조차도 6자 회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가 한총련에 이적 단체라는 주홍 글씨를 새긴 1997년 ‘이 석씨 프락치 사건’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총련은 분명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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